[미디어스=고성욱 기자] “방송작가가 글을 쓰지 않고 TV를 보지 않고 세상과 싸우면서 2년을 보냈다는 것은 정신적 식물인간 상태나 다름없다”
법원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MBC <뉴스투데이> 방송작가 A 씨의 발언이다. 14일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정용석)는 MBC가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을 취소해달라고 제기한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를 판결했다. 법원이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20년 6월 MBC <뉴스투데이>에서 10년간 일했던 두 명의 작가는 프로그램 개편과 인적 쇄신 등을 이유로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 이에 작가들은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다. 중노위는 원직복직과 해고 기간 임금상당액을 지급하라고 주문했으나 MBC는 이에 불복하고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약 1년간의 법정 투쟁을 벌여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등은 이날 판결 이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의 노동자성 인정은 사회적 흐름이라며 MBC는 시대의 순리에 역행하지 말고, 무의미한 소송전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방송작가 A 씨는 “MBC에서 마지막 퇴근을 한 지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쫓기듯 퇴사를 해서 그런지 아직도 제 시계는 2020년 6월 16일에 멈춰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MBC는 여러 차례 저희의 10년을 부정했고, 하루아침에 무능력자로 몰았다”면서 “저희를 직원처럼 부리고 지시했던 기자들은 침묵했다. 그러면서 본인들은 비정규직에 관한 보도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고 지적했다.
A 씨는 “MBC가 저희를 해고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너무도 궁금해서 이 힘든 싸움을 시작했다”며 “이제 법원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았으니 MBC로 돌아가 다시는 저희와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위해 적극적으로 이유를 밝힐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송작가 B 씨는 “해고되고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저와 제 동료 작가는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감내했다”며 “10년 다닌 직장에서 이유도 모른 채 나와야 했던 상황도 괴로웠지만, 왜곡된 사측의 서면을 받을 때마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스스로 증명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B 씨는 “MBC는 즉각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무모한 법적 공방을 여기서 멈춰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며 “비정규직에 대한 부조리를 보도하는 언론사로서 자사를 위해 헌신한 두 작가에게 지금이라도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방송작가들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방송작가에 대한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노동위원회 단계에서 방송작가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것은 대세”라고 강조했다.
윤 변호사는 그 이유로 ▲정규직 근로자들과 유기적인 결합을 할 수밖에 없는 업무 특성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방송사의 의도에 맞게 내용을 정하고, 수정하는 점 ▲방송사가 최종 결정권자인 점 등을 거론했다. 윤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온갖 고된 일을 하면서도 노동법을 적용받지 못했던 방송작가들에게 큰 힘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강은희 공감 변호사는 “MBC는 기일 직전에 서면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소송을 지연시켰고, 1년 넘게 무의미한 소송을 끌고 갔다”며 “소송을 지연시키는 MBC의 속내에는 방송작가지부의 단체 교습 요구에 불응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강 변호사에 따르면 MBC는 소송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10월 방송작가 지부의 교섭 요구를 소송을 이유로 거부했다. 강 변호사는 “오늘 법원이 방송작가는 MBC의 근로자임을 선언했으니, MBC는 더이상 방송작가 지부의 단체교섭 요구에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노조위원장 출신인 박성제 MBC 사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전대식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MBC의 박성제 선배, 당신 임기가 내년 초에 끝나는데 언제까지 ‘관행이다’, ‘시간이 흘러야 한다’, ‘여론을 살펴야 한다’ 등의 작태를 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전 수석부위원장은 “당신의 임기 동안 공영방송 지배구조보다 더 중요한 사안인 방송작가 해고,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확한 답을 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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