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몇몇 검사들이 정부의 ‘평검사 전보’ 방안에 반발해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뭘 잘했다고?’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검사들의 선택적 무력 시위는 식상하다. 사의를 표명한 두 명의 검사장들은 검찰총장 대행 등과 ‘기수’를 맞춰봤을 때 어차피 그만둘 시기가 왔다고 볼 수도 있는 이력이다. 그러나 이걸로 끝인가? 우리 정치의 문제는 언제나 ‘구도’의 형성에서 시작된다는 걸 잊으면 곤란하다.

갑자기 툭 튀어 나온 집단 항명에 대한 정부의 ‘평검사 전보’ 검토 소식은 정치 뉴스를 다루는 입장에서 보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앞서도 짚었지만 검찰 조직의 선택적 반발에 대한 지적에는 많은 유권자들이 공감한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실제 어떤 조치를 취하게 되면 반드시 절차적 문제를 따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럴 경우 조치의 기준과 효과를 놓고 지엽적 논쟁이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17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17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가령 이런 식이다. 첫째, 어디까지를 ‘항명’으로 볼 것인가? ‘평검사 전보’ 대상으로 지목된 검사장들이 요구한 것은 항소를 하지 않기로 한 법리적 근거에 대한 설명이었다. 설명해달라는 것을 ‘항명’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언론 보도에 의하면 법무부는 이번 일을 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고 한다. 국가공무원법 66조에는 공무원이 노동운동이나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는데, 검사장들이 자신의 공무가 아닌 타청의 업무에 관여한 것이 ‘공무 외’ 행위이고 공동명의의 입장을 낸 것은 ‘연판장’으로서 집단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러면 ‘공무’란 어디까지고 ‘집단행위’란 무엇인지에 대한 법리 논쟁이 펼쳐진다. 당장 전교조가 국가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집회를 한 경우 집단행위 금지 규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본 헌법재판소의 결정 사례가 인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논쟁이 이번 일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둘째, 공무 외의 집단행위라 보더라도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은 행위인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쟁점을 다루게 된다는 게 문제다. 단적인 예가 ‘윤석열 정권 때 김건희 불기소 건에 대해 검찰 집단이 반발했다면 그것도 항명으로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실제 검찰은 반발한 바도 없지만, 만일 검찰이 반발했는데 윤석열 정권이 집단 항명이라며 눈을 부라렸다면 이를 잘하는 일이라고 평가할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법무부 입장에서 보면 대장동 민간업자들에 대한 항소 여부를 신중히 판단토록 한 것은 부당한 지시가 아니라는 논리를 펼 수 있을 것이다. 이러면 두 가지가 문제가 될 것인데, 첫째는 외압이 있었느냐에 대한 진실게임의 문제고 둘째는 ‘항소를 하지 않아 대장동 민간업자들이 거액을 챙기는 일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는 평가다. 도돌이 표 같은 논쟁을 되풀이 하면서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지금 정권과 여당은 검찰 집단을 기득권으로 묘사한다. 검찰뿐만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규정된 사법부, 언론 등을 향한 구도도 다 마찬가지 문법을 따른다. 개혁이 기득권과 싸우는 것이라면 최대한 많은 우군을 확보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그러려면 ‘일반 시민 대 기득권’의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최선이다.

더불어민주당 문금주·백승아·김현정 원내대변인(오른쪽부터)이 14일 국회 의안과에 검찰청법 개정안·검사징계법 폐지법률안을 제출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문금주·백승아·김현정 원내대변인(오른쪽부터)이 14일 국회 의안과에 검찰청법 개정안·검사징계법 폐지법률안을 제출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현 집권 세력은 거의 항상 ‘민주당 대 기득권’의 구도에 천착한다. 검찰, 사법부, 언론이 개혁 대상인 이유는 이재명 정권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비치는 것이다. 이런 설명 방식은 ‘반발하니 찍어 누르더라’는 서사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항명했으니 징계해야 한다’는 논리는 ‘독재 프레임’이라는 함정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거다.

문재인 정권 당시 윤석열에 대한 징계는 이유가 있었다. 윤석열 징계에 대한 1심 판결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후 윤석열 정권의 법무부가 ‘패소할 결심’을 하면서 최종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해졌지만 말이다. 그러나 윤석열에 대한 징계 국면이 일부 검사 집단의 부당한 행태를 바로잡는 시도가 아니라 ‘추미애(집권세력) 대 윤석열’이라는 정치적 대립 구도로 번역되면서, 이 사건은 윤석열이라는 괴물이 정권을 잡는 계기가 됐다.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언론 보도만 탓해서 될 일이 아니다. 언론 보도도 결국 정치적 구도 형성의 문제가 절반 이상이기 때문이다. 떳떳치 못한 검사들이 정의로운 척 사표를 던질 수 있게 된 것에는 지금 집권 세력의 대응이 일조했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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