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박대형 기자] 23명의 사망 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내려진 최고 형량이다.
수원지법 형사14부(고권홍 부장판사)는 23일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산업재해치사) 위반,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건축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박 대표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대표의 아들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에게는 징역 15년과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박 대표는 지난해 6월 24일 경기 화성시 서신면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나 근로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화재 사고와 관련해 유해·위험요인을 점검하지 않고 중대재해 발생 대비 매뉴얼을 구비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박 총괄본부장은 화재 발생 대비 등 안전관리상 주의 의무를 위반해 대형 인명사고를 일으킨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화재 사고 발생에 대한 예견 가능성 ▲이틀 전 폭발한 전지와 같은 날 생산된 전지를 폐기하지 않은 점 ▲파견노동자에 대한 안전교육이 없었다는 점 ▲비상구 위치나 대피 경로를 알 수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참사와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아리셀 화재 사고는 예측 불가능한 사고가 아니라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예고된 인재였다"며 "그 이면에는 생산과 이윤 극대화를 앞세워 노동자 안전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우리 산업 구조 현실과 파견근로자의 노동현장 실체가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동안 산재 사고에서 가벼운 형을 부과했던 양형 경향과 산재의 빈번한 발생 현실에 비춰보면 형벌의 일반 예방 효과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인다"며 "이 사건과 같이 다수의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에서조차 경한 형이 선고된다면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고 높은 법정형의 처벌 규정을 둔 의의가 무색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유족과 법률대리인 등은 재판 직후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량에 있어서 아쉬운 점은 있지만 이 판시 내용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곱씹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아리셀 참사 피해자 대부분은 이주노동자·불법파견 노동자였다"며 "참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위험의 이주화·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아리셀 참사를 끝까지 기억하고 투쟁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김태윤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오늘 재판장에서 박 대표를 계속 바라봤다. 본인이 선고를 받을 때 비로소 얼굴이 굳어졌다"며 "1년 3개월이 되도록 아파하고 거리에서 싸웠던 유가족들한테 아직까지 단 한마디 사과도 없다. 사과는커녕 '합의 도장 찍으면 사과한다', '합의하지 않으면 손해배상 소송하겠다'고 막말을 했던 게 박 대표"라고 지적했다.
유가족 최현주 씨는 "재판 과정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김앤장은 철저하게 죽은 사람들과 유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2·3심도 새로운 것 들고 나올 것"이라며 "앞으로 얼마나 더 유가족을 모욕하고 능멸할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힘들다"고 토로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양형기준 조속히 마련해야"
신하나 법률지원단장은 "재판부는 양형과 관련해 파견노동자·이주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취약한 노동자들이 희생됐음을 중대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판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피해자와의 합의가 양형 요소로 크게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재판부는 "회사가 막대한 자본을 들고 합의를 요구하면 피해자들은 소송 이행에 대한 부담감과 생계 등의 이유로 합의할 수밖에 없다"며 "회사가 안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사고가 나면 합의금을 쥐어주고 무마시키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그동안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에서 잇따른 솜방망이 처벌로 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며 "이번 판결은 안전관리를 소홀히 하는 사업주들에게 강력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3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양형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조속히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양형기준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록 검찰이 구형한 20년형에 미치지 못하지만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을 방기한 경영진에게 분명한 책임을 묻는 형량"이라며 "양형기준을 마련하고 현장에서의 철저한 안전관리와 노동자의 생명·안전을 최우선에 두는 사회적 인식이 정착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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