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권오석 칼럼] 국가폭력이라 하면 흔히 과거 군사정권이나 경찰의 과잉진압을 떠올린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제도와 법 집행의 이름으로 개인과 기업에 실질적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 총칼 대신 문서와 공문이 동원되고, 피 흘리는 대신 신용과 생계가 무너진다. 특히 사법적 피해와 조세행정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사법권력에 의한 국가폭력
물리적 폭력 피해자들 역시 제도적 한계 속에 고통을 겪는다. 불법 체포·가혹행위·과잉진압 등은 헌법상 명백한 권리침해이지만 피해자가 구제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국가배상 소송은 절차가 복잡하여 서민들의 접근성은 떨어지고, 실질적 배상액도 충분치 않다. 무엇보다 가해 공무원의 개인적 책임은 제식구 감싸기로 희석된다.
실질적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은 있으나 재량권의 뒤에 숨어서 직권남용죄나 불법감금죄로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는 드물고, 징계 역시 경징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피해자만 장기간 소송과 트라우마 속에 방치되는 것이다.

조세행정의 폭력성
우리 제도는 소송이나 불복 절차를 밟아도 세금 징수는 멈추지 않는다. 이른바 ‘집행부정지 원칙’ 때문이다. 납세자가 억울함을 호소해도 과세처분은 그대로 살아 있고, 세무서는 압류·추심·공매까지 진행할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별도의 집행정지를 법원에서 받아야 하지만, 그 문턱은 높다. 사실상 “일단 맞고 보라”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전적 불균형도 문제다. 국가는 세금을 잘못 부과해 환급할 때는 연 3.1%의 환급이자만 붙여 돌려준다. 그러나 납세자가 제때 내지 못하면 하루하루 연 8%가 넘는 납부불성실 가산세가 붙고, 체납이 길어지면 가산금·중가산금까지 더해져 수십 퍼센트의 징벌적 이자가 쌓인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싸게 갚고 비싸게 받는’ 구조를 제도화한 셈이다.
낮은 승소율과 회복 불가능한 피해
행정 불복 절차의 실효성도 크지 않다. 2024년 조세심판원의 인용률은 27% 수준에 불과하고, 법원 소송에서 납세자가 이기는 비율은 10% 안팎이다. 설령 승소한다 해도 이미 진행된 압류와 공매, 잃어버린 신용과 거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다. 국가폭력이 단순히 일시적 불편이 아니라 장기적 삶의 파괴로 이어지는 이유다.
선진국과의 제도 비교
미국의 경우, 납세자는 세무법원 제소 시 세금을 미리 내지 않고도 다툴 수 있으며,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강제징수는 정지된다. 영국과 독일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징수가 자동 보류되거나 법정 집행정지가 활성화되어 있다. 또한 미국 IRS는 환급이자와 연체이자를 대체로 대칭적으로 운영하여 최소한의 형평을 보장한다. 우리 제도는 징수유예나 체납처분유예가 있긴 하지만 재량적이고 불투명하여 납세자 권리 보호에는 미흡하다.

구제와 근절을 위한 대안
조세분야에서는 불복 제기 시 일정 요건 아래 자동으로 징수가 정지되도록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둘째, 환급이자와 가산세율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경제적 대등성’을 회복해야 한다. 셋째, 조세심판원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납세자보호관을 국세청 외부 옴부즈만으로 전환해 권고의 구속력을 높여야 한다.
형사분야에서는 최근 국회에서 법왜곡죄 신설 등 이의 예방과 행위자 처벌에 관한 입법이 고려되고 있으나, 피해자 지원 기금을 확충하고 국가배상제도를 간소화해야 한다. 동시에 위법행위를 저지른 공무원에게는 국가가 배상 후 구상권을 적극 행사하여, 조직 차원의 관행이 아니라 개인적 책임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국가폭력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조세행정에서의 불공평한 제도, 형사사법 과정의 권력 남용은 모두 국민에게 실질적 폭력으로 다가온다. 선진국 수준의 절차적 보장과 경제적 형평성을 회복하는 개혁 없이는 ‘국민을 위한 국가’라는 말은 공허하다. 이제는 제도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멈추고, 피해자 중심의 정의로운 구제와 행위자 책임의 실질화를 제도화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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