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노하연 기자]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을 촬영하다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로 기소된 정윤석 다큐멘터리 감독에 대해 영화계와 시민사회가 무죄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작성, 연명을 받고 있다.
정 감독은 지난 1월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부지법을 찾았다. 당시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구속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원에 난입했다. 지지자들은 법원 내부 시설물을 부수고 영장 발부를 결정한 차은경 부장판사를 찾아내자며 판사 사무실이 있는 5~7층까지 올라가 문을 강제로 열었다.
서울서부지검 전담팀(차장검사 신동원)은 서부지법 폭동에 가담한 혐의(특수건조물침입 등)를 받는 피고인 62명을 구속·기소하면서 정 감독을 불구속 기소했다.

영화계는 반발하고 있다. 지난 9일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8개 영화인단체는 <정윤석 감독의 무죄를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탄원서를 공개했다. 영화인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불법 침입이 아닌 기록의 윤리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중대한 사안임을 말씀드리고자 이 탄원서를 작성한다”고 했다.
영화인들은 “단언컨대 정 감독은 그날 폭도를 찍은 자이지, 폭도가 아니다”라며 “정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집단적 망각을 성찰해온 예술가”라고 밝혔다.
영화인들은 “그는 당시 JTBC 취재진과 함께 폭력적 상황에 침묵하지 않고 현장을 취재했으며, 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한 영상 기록을 수행 중이었다”며 “JTBC 취재진은 해당 영상으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반면 정 감독은 기소되었다. 이 간극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다. 정 감독측 변호인은 지난달 31일 열린 첫 공판기일에서 “정 감독이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 국회 등에서 촬영한 영상은 JTBC 요청으로 방송 소스로 사용됐다”고 변론했다.
영화인들은 “이번 기소가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예술가를 범죄자로 낙인 찍는 위험한 전례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며 “과거 블랙리스트 사태를 겪었던 우리 영화인들은 창작의 의도가 법적 판단의 고려 대상에서 배제될 때, 얼마나 많은 예술가가 침묵과 자기검열 속으로 내몰리는지를 직접 목격해왔다”고 했다.
이어 영화인들은 “예술가의 렌즈는 가해가 아닌 증언의 도구”라며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예술가를 처벌한다면, 앞으로 누가 재난의 자리로, 사회적 기록의 가치를 지닌 현장으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영화인들은 “수사 과정에서도 이러한 작업의도는 명확히 소명되었다”며 “이번 재판이 예술의 자유와 공공의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기준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법원에 무죄 판결을 촉구했다.

정 감독은 20년동안 광우병 촛불집회,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을 영상으로 기록해 왔다. 지난해 12월 4일 비상계엄 해제 당일부터 여의도 국회와 서부지법, 서울 여의도·광화문·한남동 탄핵 찬반 집회, 국가인권위원회를 촬영했다. 지난해 방영된 JTBC 다큐멘터리 <내란, 12일 간의 기록> 제작진으로도 참여했다.
영화계 동료 이송희일 감독은 10일 SNS에 “내가 알기로 그처럼 꼼꼼하게 공들여 한국 현대사 아카이빙을 구축한 감독도 드물 것이다. 당연히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그 동안 진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며 “황당하게도, 이런 감독이 서부지법 폭도로 몰려 기소됐다”고 적었다.
이 감독은 “서부지법에 들어가 촬영한 방송국 기자는 칭찬을 받고, 독립영화 감독은 졸지에 폭도로 몰려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심지어 극우 유투버들은 좌익 감독이라며 그의 신상을 폭로해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정 감독은 무죄다. 이런 이유로 유죄가 선고된다면, 과연 한국의 그 어느 예술가가 카메라를 들고 이 어처구니 없는 세상을 근접에서 기록하고 고발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영화인들은 오는 14일 오후 6시까지 영화인을 대상으로 공동 연명을 받는다. 16개 인권·노동·문화시민단체가 모인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21조넷) 역시 같은 날까지 무죄 촉구 탄원서를 받고 있다. 21조넷은 성명에서 “블랙리스트 사태에 비추어 볼 때 서부지법 폭동 현장에 있었다는 표면적 사실만으로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예술 창작 의도를 배제하고 창작자를 차별하는 것”이라며 “범죄자와 목격자를 분별하여 판단함으로써 법치를 수호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정 감독의 다음 공판은 16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다. 탄원서들은 해당 공판에 제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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