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언론인 출신으로 5선의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을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을 통해 정진석 비서실장 인사를 발표하고, 1년 5개월 만에 기자 질의를 받으면서 일부 언론에서 윤 대통령의 '소통 의지'가 부각되는 모양새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정진석 신임 비서실장이 언론 관계에 기여할 것이라는 조선일보 보도도 이어졌다.
그러나 정 비서실장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이른바 '보수 참칭 패널'을 낙인찍고, 방송 출연을 막아달라고 방송사에 공문을 보냈다. 정 실장은 ▲'친윤' '반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 ▲대통령을 공격하면 즉각 제재하겠다 ▲당심이 민심이다 등 보수진영 안팎의 비판을 멀리했다.

22일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을 두 차례 찾았다. 오전에는 정진석 신임 비서실장 인선을, 오후에는 홍철호 신임 정무수석 인선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직접 인사를 발표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정 비서실장에 대해 "용산 참모진들뿐만 아니라 내각, 여당, 야당 또 언론과 시민사회 모든 부분에 원만한 소통을 함으로써 직무를 아주 잘 수행해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과 여권은 윤 대통령의 브리핑과 정 비서실장 인사에 대해 '소통'과 '협치'에 방점을 찍었다. 대통령실과 여당 관계자들은 언론에 정 비서실장에 대해 "소통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는 22일 기사에서 정 비서실장에 대해 "국회 부의장을 지낸 5선 중진으로 청와대 정무수석, 옛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을 지내 정무 감각과 인맥, 경륜을 두루 보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또 언론인 출신으로 언론 감각을 갖춰 대언론 관계 조율에도 기여할 것이란 평이 있다. 아울러 윤 대통령과 친분도 두터워 주요 현안마다 가감 없는 조언도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3일 기사 <참모 “정무수석 발표 땐 질문 안 받아도...” 尹 “아니다, 받겠다”>에서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위해 1층 브리핑룸에 내려올 때 한 참모가 ‘기자들 질문을 2개 이상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느냐’라고 하자 '그러지 뭐'라고 했다고 한다"며 "오후 정무수석 인선 발표 때도 ‘오전에 질문을 받았으니 굳이 안 받아도 될 것 같다’고 하자 '아니다. 질문을 받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사설 <정진석 실장 임명과 기자 문답, “이제 정치하겠다”는 尹>에서 "총선에 진 뒤 비로소 정치를 하겠다니 만시지탄"이라며 "정진석 실장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대통령께 객관적인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겠다'고 했다. 비서실장이 이 말을 지키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나라와 사회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대통령이 직접 소개한 비서실장, 가감 없이 민심 전달하길>에서 "정 실장은 기자 출신으로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관록의 정치인"이라며 "관료 출신 실장의 한계로 꼽힌 ‘예스맨’을 탈피해 과감히 ‘레드팀’으로 대통령실을 바꿔야 한다. 윤 대통령 역시 경청의 자세로 바뀌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사설 <하루 두 번 브리핑룸 찾은 윤 대통령… 이렇게 소통해야>에서 정 비서실장의 경력에 대해 "대통령이 야당뿐 아니라 여당과도 소통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을 풀어가야 하는 비서실장에게 꼭 필요한 경력"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 비서실장의 과거 이력은 소통·협치에 강점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정 비서실장은 같은 진영의 비판도 참지 못했다. 방송 패널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에 대한 태도가 대표적이다. 지난 2022년 12월 당시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12개 방송사에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보수 패널'을 출연시키지 말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 제목은 '패널 구성 시 공정성 준수 요청의 건'이다.

공문에 시사·보도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 패널을 구성할 때 '진보·보수의 균형'이 아니라 '여야의 균형'을 맞춰달라는 요구가 담겼다. '일부 시사·보도 프로그램에서 보수 몫으로 정부여당의 입장과 배치되는 의견을 가진 보수 패널을 출연시키는 경우가 많아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전당대회 룰을 '당원투표 100%'로 바꿔 '친윤' 당대표를 만들기 위해 사전작업을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정 비서실장은 "당심은 곧 민심"이라고 말했다.
정 비서실장은 '방송패널 불균형의 시정을 요청한다'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을 올려 "대통령을 비아냥거리고 집권여당을 공격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수를 대변하는 패널인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보수 참칭 패널'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이후 다수 언론에서 정 비서실장이 언급한 '보수 참칭 패널'은 장 소장이라고 보도했다. 언론계에서는 방송법상 편성의 자유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공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관련기사▶'보수패널 공정성 준수' 공문, 방송사에 보낸 국민의힘)
당시 국민의힘은 장 소장에 대해 형사고소까지 진행했다. 장 소장이 정 비서실장의 공문을 '보수 패널 감별사' '블랙리스트' 등의 표현으로 비판하자 국민의힘 미디어국은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며 장 소장을 고소했다. 이에 장 소장은 정 비서실장과 국민의힘 미디어국장을 명예훼손·업무방해·방송편성 침해 등으로 맞고소했다.
정 비서실장은 지난 1월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서 '언행'에 대한 주의보를 내렸다. 정 비서실장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관리 책임자로서 몇 가지 드리는 요청'이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에서 "당 대표 출마자는 물론 당원들은 앞으로 '친윤' '반윤'이라는 말을 쓰지 말았으면 한다"며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계파가 있을 수 있겠나. 윤 대통령 당선을 위해 뛴 우리 국회의원 당협위원장들은 모두가 '친윤'"이라고 했다.
정 비서실장은 "이번 전당대회를 대통령을 공격하고, 우리 당을 흠집 내는 기회로 사용하지 말라"며 "이런 분들에게는 당과 선관위가 즉각 제재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이는 '반윤'을 자처하는 유승민 전 의원을 겨낭한 글로 해석됐다. 유 전 의원은 "대통령을 공격하면 제재한다고 협박한다"며 "지금이 일제시대, 군사독재시절이냐. 아니면 대한민국이 아니고 북한이냐"고 반발했다.

정 비서실장은 최근에도 총선 민심과 거리가 먼 윤 대통령 옹호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22대 총선에서 충남 공주·부여·청양에 출마한 정 비서실장은 국민의힘 충청권역 선대위원장으로서 지난달 27일 SNS에 "우리가 앞장서 윤 대통령이 국민들의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정 비서실장은 단합을 강조하며 "지금 윤 대통령은 적대 진영에서 날아온 불화살과 포탄으로 상처투성이"라고 했다. 정 비서실장은 "4년 전 총선에서 우리 당은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폐허 속에서 우리는 일어나 2022년 정권을 되찾아 왔다"며 "권력에 굴하지 않는 윤석열이라는 한 남자가 이뤄낸 기적이었다. 우리 진영은 그에게 너무나 큰 신세를 졌다"고 했다.
정 비서실장은 윤 대통령이 ▲굴종적 대북정책 종식 ▲최악의 한일관계 복원 ▲화물연대 파업 대응과 건설현장 폭력 근절 ▲노조회계 투명화 ▲R&D 예산 혁신 ▲사교육 카르텔 혁파 ▲의료개혁·의대증원 등 어려운 일들을 해냈다고 치켜세웠다. 정 비서실장은 "역대 이런 대통령이 있었나"라며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개혁의 전사로 계속 전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현재 정 비서실장의 페이스북 게시글은 모두 삭제됐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관련기사
- 여권도 "일방통행 선전포고" 비판한 정진석 비서실장 임명
- 정진석, 노무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6개월 징역 선고'
- KBC시사라디오 백운기·장성철 하차…"짐작하는 이유 맞다"
- 장성철, '보수 참칭 패널 공문' 정진석 맞고소
- '유최안 인터뷰' 문제삼는 정진석에 KBS 시청자위 "납득불가"
- 정진석 '보수패널 감별' 공문, '윤석열당' 논란에 기름
- "국민의힘 '당원투표 100%' 전당대회 룰 개정" 반대 50%
- '보수패널 공정성 준수' 공문, 방송사에 보낸 국민의힘
- 국힘 전당대회 룰 개악 조짐에 "축구하다 골대 옮기는 것"
- '보수 참칭' 떠올리게 하는 장동혁의 "패널 인증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