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여당 대표가 사퇴한 과정은 한편의 미스터리다. 이제 비대위원장을 누구로 할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데, 집권 세력의 한심함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국민들은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장제원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여당 대표가 두문불출하더니 왜 사퇴를 하는가? 장제원 의원 불출마와 대표직 사퇴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속사정을 모르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집권 세력의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여당 관계자’ 등을 인용한 언론 보도를 통해 사정을 가늠해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재계 총수, 국회의원들과 함께 분식을 맛보던 중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에게 떡볶이를 나눠주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재계 총수, 국회의원들과 함께 분식을 맛보던 중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에게 떡볶이를 나눠주고 있다.(연합뉴스) 

보도를 요약하면 그간이 과정은 이렇다. 여당이 서울에서 확고한 우세를 점하는 지역은 단 6석에 불과하다는 보고서를 지도부가 보고를 받고도 공개하지 않도록 했다는 조선일보의 [단독] 보도 이후 김기현 지도부는 초유의 위기를 맞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기현 대표 체제를 유지하되 김기현 장제원 두 사람의 지역구 불출마 선언으로 사태를 수습하자고 했으나, 김기현 대표가 오히려 대표직을 사퇴하고 지역구 출마 입장은 고수하면서 결국 장제원 의원만 불출마를 선언하게 되자 대통령이 ‘격노’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기현 대표 체제는 처음부터 용산의 의지에 의해 세워졌으므로 용산의 용인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퇴가 불가피해졌다는 게 대다수 언론의 분석이다.

궁금한 것은 김기현 전 대표가 지역구 출마를 고집한 배경이다. 이걸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여러 ‘설’만 제기된다. 크게 나누면 세 가지다. 첫째는 ‘욕심설’이다. 총선 성적이 뻔한 상황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대표직보다는 당선되면 자리가 보장되는 ‘5선 의원’이 되는 일을 우선한 것 아니겠느냐는 거다. 둘째는 ‘카드설’이다. 섣불리 불출마 선언을 했다가 그래도 내홍이 수습되지 않으면 결국 대표직도 내려놓게 될 수 있다는 거다. 둘 중 하나를 지키려다 둘 다 지키지 못하게 될 수 있으니 일단 둘 다 쥐고 있다가 천천히 결단해도 늦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는 거다. 셋째는 ‘공천갈등설’이다. 김기현 전 대표가 대표직 유지를 전제로 공관위 구성과 관련한 실질적 권한을 원했으나 용산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허울뿐인 대표는 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대표직 사퇴 및 지역구 출마 고수 입장이 나왔다는 거다.

그런데 어떤 경우든 대통령의 ‘격노’ 때문에 부자연스러운 당 대표 사퇴로 상황이 이어진 거라고 하면 누가 봐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욕심설’이나 ‘카드설’의 경우라면 당 대표가 스스로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비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그건 당 대표가 감당하면서 대응해야 할 성격의 일이다. 그런 이유를 들어 대통령이 ‘격노’를 하며 ‘당신 그만 두라’는 식으로 압박했다고 한다면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당 대표는 대통령의 부하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이명박 정권 때 여당 대표가 감사원장 후보에 자진사퇴를 요구하며 사실상 낙마시킨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청와대 대응은 한 달 동안 여당 지도부와 밥을 같이 안 먹는 정도였다. 그때도 여당이 할 일을 했는데 결국 청와대에 굴복했다는 둥 온갖 뒷말이 나올 정도였는데, 이 정권에서 그 정도로 그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소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등의 반협박조의 비난을 받거나 권력에 줄 서는 데 혈안이 된 초선의원들에 정치적 집단 구타를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만일 일부 언론 보도대로 ‘공천갈등설’에 가까운 사태라고 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용산 권력이 공천관리위 구성에 개입할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거꾸로 당 대표의 관여를 용산이 차단했다는 것 아닌가? 처음부터 허수아비 당 대표를 세워놓고 공천은 용산이 전부 주도할 생각이었다고 한다면,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다. 애초 김기현 지도부는 용산이 세운 지도부였다. 어차피 공천을 전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지도부인데, 그것에조차 만족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1997년 10월 22일 당시 이회창 전 신한국당 총재가 여의도 당사에서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1997년 10월 22일 당시 이회창 전 신한국당 총재가 여의도 당사에서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언론에 의해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은 죄다 윤석열 대통령이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걸로 잘 알려진 사람들이다. 아첨꾼들은 한동훈, 원희룡 장관 등을 거론하며 “과거 김영삼 대통령이 이회창 전 총리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그랬듯 차세대에게 당을 맡겨야 총선 구도를 유리하게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이회창 전 총리의 지지자들은 김영삼 대통령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화형식을 할 정도였다. 이명박과 박근혜 두 사람은 대선 후보 경선에서 사생결단하던 사이고 그때 나온 비리 의혹이 결국 서로의 발목을 잡은 케이스다. 정치적으로 완전히 대척점에 있던 인물이라는 거다. 따라서 차세대 운운 하는 그런 논리라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한동훈, 원희룡 장관이 아니라 신당 창당을 준비한다는 이준석 전 대표가 맡아야 할 것이다.

여당 대표가 의미불명의 사퇴를 하기까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서울 6석 보고서’ [단독] 보도를 한 조선일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도 이 과정에 대해서는 황당해하는 분위기다. 15일자 지면에서 이 문제를 다룬 사설 제목은 <대선 승리 정당이 1년 반 만에 3번째 비대위, 대통령 설명 듣고 싶다>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누가 비대위원장이 되느냐보다 이 모든 일을 결정하고 집행한 대통령으로부터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설명을 듣고 싶다. 어떻게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가장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임기 초반을 이렇게 보내면서 세 번이나 비상대책위를 구성해야 하는지 책임자인 대통령은 설명을 할 의무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희생하고 있는데 정작 윤 대통령 본인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떤 희생을 할 수 있는지 많은 국민이 궁금해하고 있다. 이제 대통령이 직접 답할 차례다”라는 주장이 핵심이다. 여당의 내홍과 관련한 사과 등 입장 표명과 배우자 등 가족 문제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뉘앙스다.

그러나 ‘윤심 비대위원장’이 탄생한다면 대통령이 무슨 얘기를 하든 유권자 입장에선 어떤 변화도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배우자와 일부 검사 출신 인사들은 감싸주고 아껴주고 챙겨주고 밀어주고 끌어주기 바쁘면서, 별 차이도 없는 것 같은 안철수 나경원 김기현 같은 인사들은 구박하고 밀어내기 바쁘다면 유권자는 어느 쪽에 감정이입을 하게 될까? 여당 사람들도 용산 권력에 장단을 맞출 때가 아니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한심한 정치를 그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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