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장제원 의원이 결국 불출마를 시사했다. 그야말로 전방위적 여론의 압박에도 꼼짝않던 그다.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기에 갑작스레 결단을 내린 것인가?

언론의 분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볼출마 자체는 이전부터 결심하고 있었지만 등 떠밀려 선언하는 모양새를 피하기 위해 혁신위가 공식적으로 활동을 종료하는 날짜를 택해 결단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 함께 부산을 찾아 떡볶이 등을 시식한 날 모종의 논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그날 부산 현역 의원 중 장제원 의원이 유일하게 윤석열 대통령의 돼지국밥 오찬에 함께했는데, 그 자리에서 뭔가 교감이 이뤄지지 않았겠냐는 거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장제원 위원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위원들이 7월 3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직접 고른 해산물로 식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장제원 위원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위원들이 7월 3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직접 고른 해산물로 식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진실은 당사자가 밝히지 않는 한 정확하게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집권 세력 내 구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점은 흥미롭다. 언론은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시사로 김기현 대표 역시 불출마 결단 시점을 앞당길 가능성을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혁신위가 사실상 무력화 된 이후에야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김기현 대표, 장제원 의원 등은 인요한 혁신위에 힘을 실어줄 마음이 전혀 없었고 그것은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는 거다. 불출마라는 결론이 같다면 달라지는 것은 인요한 혁신위가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뿐이기 때문이다.

만일 인요한 혁신위의 성과로 연쇄 불출마가 이뤄졌다면, 이후 국면은 김기현 지도부가 주도권을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가령 김기현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했는데도 총선 전망이 어두운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도부가 통제할 수 없는 혁신위가 추가 쇄신책으로 지도부 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속수무책일 것이다. 김기현 지도부와 친윤 인사들이 혁신위에 지도부를 흔들지 말라며 날을 세워온 이유도 그러한 차원일 것이다. 혁신위 내부에서 자신들은 김기현 체제 유지를 위한 시간끌기용이라며 정체성(?)을 새삼 재확인하는 발언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혁신위의 김을 빼고 사실상 주저 앉히는 데 성공한 김기현 지도부로서는 공천관리위원회를 조기에 구성해 공천 국면을 조성하는 것으로 당내 이견을 잠재우려고 시도했다. 아마 별 일이 없었다면 그렇게 됐을 수도 있다. 놀라운 건 꺼져가는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게 조선일보였다는 사실이다. 혁신위가 조기 종료를 공식화 한 다음 날인 8일 서울 49개 지역구 중 6개에서만 확실한 우세라는 내용의 판세 분석 보고서를 당 지도부가 보고를 받고도 숨겼다는 취지의 기사를 지면에 실으면서다.

조선일보의 이 기사 때문에 국민의힘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수도권을 비롯한 격전지에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인사들이 들고 일어나 김기현 대표 사퇴를 다시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밖에서는 이준석 전 대표가 거들고, 안에서는 다시 안철수 의원이 받는 기현상도 펼쳐졌다. 11일 최고위까지 분열 양상을 보이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수도권 원외인 김병민 최고위원이 “인요한 위원장이 혁신은 100점 아니면 0점밖에 없다고 했는데, 총선을 앞둔 우리 당의 혁신 성적표는 100점과 0점 중 대체 어디에 속해 있느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지도부 중 어느 누가 혁신위의 희생에 대한 요구에 답을 내놓았단 말이냐”고 발언하면서다.

조선일보 [단독] 與, 서울 49석 중 우세 6곳뿐… 당 내부에선 알고도 쉬쉬 보도 화면 캡처 
조선일보 [단독] 與, 서울 49석 중 우세 6곳뿐… 당 내부에선 알고도 쉬쉬 보도 화면 캡처 

결국 이날 ‘양남’(강남과 영남)에 속하는 초선들이 진압작전(?)에 동원되면서 김기현 지도부의 반격이 시작됐다. “내부 총질”, “자살특공대”와 같은 거친 어휘들이 김기현 대표 사퇴를 요구한 인사들을 비난하기 위해 동원됐다. 앞서 당이 자체 분석을 한 결과 우세한 서울 6개 중 한 곳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배현진 의원은 ‘실력 없는’ 비윤계 인사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사들을 수도권에 공천하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는데, 사실상 ‘윤심 공천’을 시사한 것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시사는 이런 아수라장 속에 나왔다. 이게 ‘팀플레이’의 일환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게 대통령과 당내 주류에 좋은 명분이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주류는 희생을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비주류 역시 불이익을 받아도 수용해야 공정하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팀플레이’로 본다면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는 결국 조선일보가 이끌어낸 게 되는 셈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을 조선일보는 어떻게 평가할까? 12일자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당 혁신과 체질 강화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초선 의원들이 오히려 기득권 수호에 앞장선다. 이 의원들은 대부분 영남 등 국민의힘이 강세인 지역 출신이다. 현 지도부가 그대로 있어야 자기들 공천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은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후 민심을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엑스포 유치전 참패 후에도 자기 잘못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자책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연결되는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도 했다.

조선일보의 12일자 지면에서 또 눈길이 가는 것은 김대중씨 칼럼의 일부 표현이다. 김대중씨는 혁신위 제안 중 ‘작은 국회’로 요약 가능한 정치개혁을 공약할 필요성을 주장하며 이러다 민주당이 다수인 국회를 다시 한 번 보게 될까 걱정이라는 취지의 한탄을 했는데, 글의 마지막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김대중씨는 칼럼의 말미에 “이 모든 뒤틀린 와중에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윤 대통령의 태평(太平)이고 김기현 당대표의 무사(無事)다. 정권이 백척간두에 섰는데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선거에 패배할 준비를 마쳤다는 뜻인가?”라고 썼다.

그러니까 이 신문은 윤석열 대통령, 김기현 대표, 친윤-주류가 모두 기득권을 지키느라 변화를 거부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총선에서 크게 지게 생겼다고 보는 거다. 따라서 이들을 정신차리게 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쓰는 와중인 것이다.

앞의 사설과 칼럼은 장제원 의원이 불출마를 시사한 정세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비춰진다. 따라서 다음 날은 논조가 달라질 수 있다.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조건만 충족된다면, 얼마든지 변화 혁신 개혁을 윤색해내고 치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걸 바람직한 언론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게 조선일보의 힘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한때의 정권 실세도 예외일 수는 없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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