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께서 여론이 왜곡되는 상황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우려에 타당성이 있다"-10월 3일 대통령실 관계자 발언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정부가 포털 '다음'의 아시안게임 응원페이지 여론조작 의혹과 관련해 '범부처 TF'를 구성하고 가짜뉴스 방지 의무를 포함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어뷰징(중복 전송)이 가능한 국민참여토론을 통해 정책 결정을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게 얼마 전 일이다.
4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 이동관)을 중심으로 '여론 왜곡 조작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범부처 TF를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한 총리는 "범부처 TF를 신속하게 꾸려 가짜뉴스 방지 의무를 포함한 입법 대책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말했다.

방통위는 이날 해외세력이 VPN(가상망, 우회접속시 활용)과 매크로를 악용해 중국을 응원하는 댓글을 대량생산했다고 긴급 현안 보고를 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뉴스타파 보도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대한민국의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공론의 장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또 보여줬다는 점에서 국민적 충격이 정말 크다"며 "지금 이것이 발전하면 국기문란 사태가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차이나 게이트' '북한 개입 의심' '좌파 포털 여론조작 숙주' '드루킹 뿌리의 망동 획책' 등 포털에 대해 압박을 쏟아냈다.
하지만 로그인 없이 중복클릭이 가능한 스포츠 경기 응원페이지를 빌미로 정부여당이 포털과 언론, 온라인상 표현물을 압박하는 게 합리적이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관련기사▶다음 '매크로 응원' 논란 물 만난 '가짜뉴스 대응' 고삐)

앞서 대통령실은 어뷰징 논란이 제기되는 국민참여토론을 통해 얻은 결과를 근거로 TV수신료 분리징수, 집회·시위 제재 강화 등을 권고하고 '이것이 국민 여론'이라고 내세웠다. 대통령실은 본인인증을 거치고 있고 드루킹과 같은 대규모 어뷰징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민참여토론은 중복 추천과 중복 의견 게시가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6월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TV수신료 분리징수 국민참여토론 6만 3886개의 댓글 중 1만 6486개(25.8%)가 중복 이용자의 댓글로 추정됐다. 4개 중 1개 꼴이다. 한 이용자가 62개의 댓글을 작성한 경우도 있었다.
이른바 '세몰이' 정황도 나타났다. 장예찬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3월 29일 100만여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배승희 변호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TV수신료 분리징수 국민참여토론 투표를 독려했다. 장 최고위원은 "법원과 방송국이 민노총 손아귀에 넘어가잖아요. 죽었다 넘어가도 선거 못 이겨요"라며 찬성 투표를 독려했다. 3월 28일 1만 1천여표 수준이었던 찬성표는 4월 3일 4만여표로 급증했다.
지난 7월 경향신문은 집회·시위 제재 강화 국민참여토론과 관련해 "한국자유총연맹 관계자 등 현 정부에 우호적인 인사들이 소셜미디어에서 투표를 독려하면 국민참여 토론에서 추천 수가 급증하는 유형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실의 '국민제안' '국민참여토론'을 주도한 인물은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다. 지난해 6월 강 수석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폐지하고 국민제안 코너를 신설했다며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 국민제안규정, 청원법 등 법에 따른 비공개 원칙을 준수하고 여론을 왜곡하거나 매크로를 방지하기 위해 100% 실명제로 운영한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어뷰징' 사태가 발생해 국민제안이 무효처리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은 국민제안 10개 안건을 두고 온라인 투표를 진행, 득표가 많은 순으로 3건을 선정해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10개 안건 모두 50여만 표를 받아 변별력이 없는 결과가 도출됐다. 지난해 12월 강 수석은 '국민참여토론'을 신설하며 "실명인증제 방식으로 진행해 어뷰징을 예방할 것"이라고 했다.

언론의 이중적 태도도 문제다. 대통령실 국민참여토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언론사 중에 다음 응원페이지 논란을 고리로 '포털 여론조작 방지'를 촉구하는 언론사가 적지 않다.
조선일보는 현재 "국내 인터넷 공론장은 드루킹 사건에서 드러났듯 여론 조작에 매우 취약한 구조"라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4일 사설에서 "인터넷 공간에서 여론을 조작하는 사이버 심리전은 국가 안보에 중대한 사안"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북한 등을 상대하기 위한 사이버 역량 강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7월 6일 사설에서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진행한 국민 참여 토론에서 KBS 수신료 강제 징수 폐지 찬성 의견이 96%를 넘은 것을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서울신문은 지난 7월 5일 사설 <불법집회·폭력시위 엄단, 이게 국민 뜻이다>에서 "찬성 의견이 반대의 두 배를 넘긴 가운데 마무리됐다. 집회·시위 문화를 개선하라는 국민 다수의 여론이 확인된 것"이라며 "일부 언론과 야권은 '인기투표로 시행령을 개정하려 한다'며 진작부터 딴죽을 걸고 있지만 소음과 도로 점거의 기준 등이 강화될 것이라니 기대가 크다"고 했다.
서울신문은 5일 사설 <총선 여론조작 막을 범정부 대책 서둘러라>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중국과 북한이 국내 친중·친북 세력과 결탁해 얼마든지 해외 IP로 여론을 조작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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