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은 예상치 못했다. 단식 중인 이재명 대표가 사실상 부결을 요구하는 글을 SNS에 올릴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정치는 유권자의 허를 찌를 때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허를 찔렸다는 걸 겸허히 인정한다. 문제는 이게 좋은 의미는 아니라는 거다. 허를 찌른 이유가 똑같은 정치를 똑같이 계속하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그렇다.

표결 이후 빛의 속도(?)로 사퇴한 박광온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부결은 방탄, 가결은 분열”이라고 했다. 만일 이재명 대표가 직접 가결을 요청했다면, 결과가 가결이든 부결이든 방탄과 분열의 리스크는 최소화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굳이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건 우선순위다. 영장실질심사를 피하는 것과 방탄과 분열의 굴레를 벗는 것 중 이재명 대표에게 더 중요한 건 뭐였을까? 얘기가 이렇게 되니 구속이 그렇게 두려웠느냐는 식의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가결은 예상하기 어려웠지만 가결 이후 국면은 예상대로다. 원내지도부 붕괴와 최고위의 ‘해당행위’ 규정 이후 당내 주류는 내전도 불사할 태세다. 오히려 이번 국면을 기회로 삼아 주류의 통제력을 확장하고 공천과 총선 전략까지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밀어 붙이겠다는 거다.

비주류는 일단 주춤하는 기색이지만 영장실질심사 이후를 노리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실제 구속되면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거다. 이러니 한쪽에선 비주류가 공천을 노리고 이재명 대표 체제 흔들기에 나선 것이라는 ‘기획설’을 말하고, 다른 한쪽에선 ‘구속 불가피설’을 주장하는 극한 대립으로 갈 수밖에 없다.

24일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강서구청장 후보자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기각 탄원서에 서명하고 있다(연합뉴스) 
24일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강서구청장 후보자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기각 탄원서에 서명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제부터는 안 봐도 뻔하다. 다들 자기 입장에 맞춰 한쪽 얘기만 할 것이다. 가령 이재명 체제로는 중도를 설득할 수 없어 이대로 갈 수는 없다는 비주류의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중도는 없다’는 식의 얘기를 꺼내는 거다. 중도가 없는데 잡을 필요가 있겠는가?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시대정신이 아니라 탄핵 여파로 보수가 분열된 덕이다. 2022년 이재명 후보의 대선 패배는 ‘우리 편’이 뭉치지 않아서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를 바꾸는 비전을 내놓는 것보다 상대방과 싸우는 과정을 계속 이어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 배신자는? 서둘러 처단해야 한다.

똑같은 눈으로 윤석열 정권을 평가한다면 어떤가? 중도는 없으므로 굳이 통합적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공산전체주의’ 드라이브는 야권 전반과 싸우는 과정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중도를 잡기 위해 국정 방향을 바꾸자고 말하는 놈들은 배신자이므로 그저 몽둥이가 약이다.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아전인수도 이제 난무할 것이다. 최근까지 평론가들은 전화면접조사와 ARS 조사와의 차이에 대해 지금 시점에 중도층 응답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ARS 조사에 중도적 유권자층이 덜 응답한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와 국민의힘 대비 더불어민주당의 유의미한 우위가 동시에 확인되는 ARS 조사 결과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은 이것뿐이다.

그러나 이제 ‘중도는 없다’는 전제에 맞추려면 이론은 수정돼야 한다. ARS 조사에서만 응답하는 ‘샤이’ 지지층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차이가 난다고 하는 거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실제 선거 결과에 가까운 것은 전화면접조사가 아니라 ARS 조사일 거고, 이러한 조사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와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잡히므로 양쪽 모두 안심해도 된다.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거다.

윤석열 정권이 당연한 걸 하고 있다면 비난할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비난하는 사람이 반대편에 속해 있기 때문. 이게 양쪽이 공히 공유하는 정치관이다. 그러니 배신자 소리만 한다. 여기서 무슨 변화를, 무슨 바람직한 정치를 기대하겠는가? 하던 대로 하겠다는데.

중도층이라는 것은 기성 정당에 덜 조직된 유권자를 말한다. 이념 지향이 중도적이거나 모든 사안의 중간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국민의힘에도 더불어민주당에도 지지 강도가 강한 지지자와 약한 지지자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중앙 정치가 밀어 붙이는 대로 따라갈 수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후자는 종종 각자의 이유로 스윙보터가 되기도 한다. 이들을 얼마나 투표장에 끌어 내느냐가 성패의 갈림길이다. ‘중도를 잡아야 한다’는 것과 ‘지지층을 최대로 결집시켜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선거 전략에선 상충하는 목표가 되지 않아야 한다.

서로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정치로 일관한다는 것은 이번 총선을 ‘침대축구’로 치르기로 양당이 모두 작정했다는 얘기나 다름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총선은 여야의 정치게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정치로 되겠는가? 이게 바람직한 민주주의인가?

총선은 그렇다 치고, 대선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법정의 논리도 유리한 걸로 확인된다면 이재명 대표는 여전히 유력한 대권주자일 것이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이번 국면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한 ‘이재명의 민주당’이 노정한 정치관은 수권세력으로서의 자격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미 입이 아프고 손이 아픈 얘기다. 이번에는 좀 다른 방향에서 허를 찌르는 정치를 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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