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추석 연휴를 앞두고 나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드라마틱한 장면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단기적으로는 최선의 시나리오다.

‘이재명 없는 더불어민주당’을 기대할 유인이 사라졌다는 평가를 내놓는 사람도 있지만, ‘이재명 체제’는 현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이재명 대표가 등장해서 더불어민주당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재명 대표가 등장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재명 대표가 없어진다고 더불어민주당이 거듭나지도 않는다. 그게 가능한 정당이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되지도 않았다.

체포동의안 표결 직후 반대파 공격에 온 힘을 쏟고 ‘충성맹세’까지 시켜가며 주류끼리만 원내대표를 선출한 더불어민주당 상황은 이 사실을 정확히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표가 구속되느냐 마느냐는 한국 정치의 발전과는 별 상관이 없다. 이건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 ‘사법리스크’를 주제로 한 공격의 영향이 반감된다는 게 중요한 문제다. 누가 ‘사법리스크’를 언급하면 “구속영장 기각되지 않았느냐”라는 할 말이 생긴 셈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7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민주당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의왕=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7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민주당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의왕=연합뉴스)

물론 반박은 있을 수 있다. 구속영장이 발부 여부에 따라 유무죄가 갈리진 않는다. 구속되었어도 재판에서 무죄가 나오는 경우가 있고 불구속됐어도 유죄가 나오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나 적어도 이 시점에 검찰 수사가 제대로 된 상태인가, 영장을 청구할 만한 사안이었는가를 평가한다면 그렇지 않았다는 게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증명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수사가 장기화된 상태였던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오버’까지 더하면 정권이 이재명 대표의 수사에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같은 사람들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다 걸기’ 하다 본전도 못 찾을 지경이 됐다는 취지의 평가를 내놓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제 이재명 대표는 ‘영수회담’을 주장하고 있는데, 정권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와만 만날 수는 없으니 다른 정당 대표들과도 협의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면 거부할 명분은 없다. 여당은 또 방탄 타령을 하는데, 영수회담이 왜 방탄인가? 그런 공격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의미 없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나가는 자리가 아니면 야당 대표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단 한 번도 만들지 않았다. 국회를 방문했을 때 원내대표들은 만날 수 있다고 하면서 굳이 대표들을 만날 수 없다는 건 결국 이재명 대표를 만나기 싫어서라는 해석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를 만나면 수사기관에 ‘시그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식으로 국회에서 답변하였는데, 이런 식의 설명은 자충수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재명 대표가 직을 내려놓거나 감옥에 갇히지 않는 한 대통령은 어떤 야당 대표도 만날 수 없는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정치적 선택지를 스스로 제한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시그널론’을 철회하고 정당 대표들을 만나 협조를 구하는 등의 방향 전환을 하는 게 최선으로 보이는데, 정권에 그럴 의지는 없어 보인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치르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국민의힘은 강서구로 몰려가 또 ‘다 걸기’하는 모양새다. 안철수·권영세 의원, 나경원 전 의원까지 선대위에 합류하는 걸 보면 서울시장 선거처럼 치를 기세다. 그러나 당내에서도 과연 이게 맞느냐는 의문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렇잖아도 유권자 구성이 불리한 지역이므로 ‘조용한 선거’ 기조로 치러 패배 시의 리스크를 줄이는 게 맞다는 거다. 선거를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거다.

지금처럼 했다가 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총선 앞두고 크게 치른 선거의 패배는 당연히 지도부 리더십의 위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걸 뻔히 알면서 국민의힘이 이해가 어려운 방향으로 내달리는 이유는 뭔가? 김태우 후보 공천은 대통령이 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점과 떼어 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뜻이 실렸는데 지금의 여당이 조용한 선거를 치르자며 그걸 외면할 수는 없다. 보통은 후보도 자기 선거가 ‘조용한 선거’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생리가 그렇다. 그러니 방침과 선거 전략은 이미 윗선에서 정한 거나 다름없고, 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건 그 조건 하에서 열심히 뛰는 것밖에 남지 않게 된 거다.

국민의힘 김태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가 28일 오전 발산역 인근에서 연 선대위 출정식에서 참가자들이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왼쪽부터 구상찬 전 의원, 김기현 대표, 김태우 후보, 나경원 전 의원, 김성태 전 의원. (서울=연합뉴스)
국민의힘 김태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가 28일 오전 발산역 인근에서 연 선대위 출정식에서 참가자들이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왼쪽부터 구상찬 전 의원, 김기현 대표, 김태우 후보, 나경원 전 의원, 김성태 전 의원. (서울=연합뉴스)

이런 정치가 지속가능할까? 대통령은 된다고 보는 모양이다. 대통령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론에 ‘고관여층 투표론’을 얘기하고 있다. 여론조사 상 중도층에서 정권 지지율이 낮은 건 사실이지만 어차피 투표에 나서는 것은 고관여층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고, 고관여층만 대상으로 조사를 할 경우엔 대통령 얼굴로 선거를 치를 수 있을 만큼의 지지율은 나온다는 거다.

이게 전형적인 강성 지지층만 챙기고 가겠다는 식의 정치관이다. 정권이 기대하는 고관여층을 연령과 지역으로 다시 나눠보면 어떻게 되겠나? 영남과 60대 이상이다. 전통적인 강성 지지층의 분포와 일치할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 사람들은 과거엔 더불어민주당의 팬덤정치를 비판하는 걸로 자기 정치의 정당성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똑같은 문법으로 정치를 사고한다는 게 이런 지점에서 드러나고야 만다.

간신배 같은 참모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것일까? 대통령실과 여당은 대통령이 누구의 말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늘 강조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판은 대통령 자신이 주도한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은 과거 검사 시절에 그랬듯 고집이 세고 웬만하면 태도를 바꾸지 않는 사람이다. 특히 자기 뜻대로 한 끝에 대선을 승리한 경험을 갖고 있다면 더 그렇다. 그러니, 재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은 대통령이 아니라 김기현 대표가 지게 될 것이다. 승패와 관계없이 검찰은 원없는 수사를 계속할 것이고 한동훈 장관은 체포동의안 표결 때마다 30분씩 연설을 하려 들 것이다.

바뀌어야 할 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3김 이후 대다수 정치세력의 리스크였다.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임기말이다. 같은 비극을 반복할 것인지, 이번에는 다르게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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