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민하 칼럼]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상당히 하락하였다고 한다. 일부 전화면접조사에선 30%대 벽이 다시 한 번 깨졌다고도 한다. 보수 유권자들마저 지지 유보층에 편입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뭘까? 외교 안보 문제다. 미국이 도청을 활용하여 생산한 정보 문건들이 대량으로 유출된 사태에 대하여 자기 할 말을 못한 모습을 보인 게 주요 이유이다. 물론 혹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공개된 내용이 그렇게까지 치명적인 내용도 아니고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다소 저자세인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닌데 새삼스럽게 이런 이유로 보수유권자층까지 유보 의견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평가하는 게 합리적일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치적 결과는 ‘맥락’이 좌우한다는 거다. 똑같은 사건도 ‘맥락’이 뭐냐에 따라 유권자들의 판단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3월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3월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만일 윤석열 정권의 대외전략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면 이번 도청 파문은 ‘해프닝’ 비슷하게 끝났을 거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미 일본과의 관계를 푸는 방식을 통해 이 정권 대외 전략의 실패를 예감했다. 우리가 컵에 물을 반 채우면 일본이 나머지 반을 채우리라는 게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피해를 국익의 걸림돌 취급한 이 정권의 논리였다. 실제 그렇게 됐다면 유권자들은 그래도 ‘다 계획이 있었구나’ 했을 거다.

그러나 지금 보면 알 수 있듯 일본은 컵을 본 적도 없다는 태도다. 여기서 유권자들은 ‘망친 게 맞구나’하는 거다. 그런 상황에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없는 국가안보실장 경질 등이 이어지자 이 정권의 대외전략은 ‘외교 무능’의 맥락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니 ‘도청 저자세’는 지지율 하락의 방아쇠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신호를 줬건만 변하는 게 없으니 마음이 떠나는 거다.

국민의힘도 같은 상황에 빠지고 있다. 자기 편한 데로만 기울어지며 오로지 남탓만 하는 양당의 전형적 정치에 질린 유권자들은 국민의힘이 뭔가 변화를 시도하는 거 같아 거기에 힘을 실어줬다. 정권교체의 비결이다.

그러나 ‘윤심 전당대회’와 ‘전광훈 소동’을 거치며 국민의힘은 퇴행적 정치로 다시 되돌아가고 있다. 수도권이냐 영남이냐 하는 논쟁보다 이게 더 치명적이다. 그동안 여당 소속의 주요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좀 무리수를 두더라도 상대편에 ‘사법리스크’가 있는 한 어느 정도는 방어할 여력이 유지된다고 봤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한계에 도달했다. 유권자들은 이미 상당한 양의 신호를 보냈다. 제대로 응답하지 않으면 보수적 유권자들도 등을 돌리는 사태가 현실이 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연합뉴스) 

유권자 입장에서 정말 답답한 것은 더불어민주당 역시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와 기소로 고조됐던 위기감은 윤석열 정권과 여당의 혼란상 덕에 어느 정도 수습됐다. 상대편의 연이은 실책을 핑계로 들며 ‘굳이 변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고 커튼 뒷편에서 다시 말하기 시작한 게 그렇다.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면 현재 상황을 유지하더라도 뭔가 총선 대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분위기가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돈봉투 전당대회’ 의혹은 그러한 안이한 태도로는 역시나 안 된다는 걸 보여준다. ‘돈봉투 전당대회’라는 일은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언론에 익히 언급된 바 있듯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사례가 있다. 때문에 방점은 “어떻게 이런 일이?”가 아니라 “아직도?”에 찍힌다. 민주당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돈봉투 전당대회’라는 시대착오는 일부 정치인에 국한되느냐 당 전체가 그렇게 규정되느냐가 달라진다는 거다.

요 며칠간 유권자들은 지켜봤다. 만일 ‘돈봉투 전당대회’가 상상할 수 없는 이례적 사건이라면 민주당은 화들짝 놀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며 이리 저리 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본 것은 역시나 ‘정치보복’ 타령을 하며 검찰의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말하면서 자기를 겨냥한 의혹에 대해선 입을 닦아 버리는 전형적 모습이다. 이런 식의 대응은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이 시대착오적 정치행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게 사실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혹자는 그런 주장도 할 것이다. 지지율 하락 조짐은 없지 않는가? 조국 전 장관 논란이나 ‘추윤갈등’ 때도 비슷한 얘기들을 했었다. 하지만 결국 이 사건들은 민주당의 정권 상실에 일조했다. 당장 윤석열 정권과 여당도 한일정상회담 직후 지지율이 예상만큼 하락하지는 않았다고 자평하지 않았던가. ‘돈봉투 전당대회’에 대한 안이한 대응이 변하지 않는 민주당, 혁신 의지가 없는 민주당이라는 맥락을 강화하는 핵심 요인으로 굳어지면 이후 어떤 사건을 방아쇠로 해서건 지지율 붕괴라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과 리더십이다. 대표가 자기 직을 걸고 이 사건에 연루된 모든 이에 대한 제재나 불이익을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그렇잖아도 부실한 당내 기반의 추가 유실을 우려하거나 반대파의 반격 소재로 활용되는 것을 걱정할 수는 있을 거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이런 우려나 걱정은 오히려 배부른 소리였다는 걸 깨닫게 될 수 있다. 지금 민주당은 스스로 위기에 빠진 줄 모르는 집단처럼 보인다. 예고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라는 말이 있는데, 뒤집어 말하면 위기는 그게 위기인 줄 모르는 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결말이 뻔한 데도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그거야 말로 무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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