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하종삼 칼럼] 원고의 순서는 먼저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하 사전으로 표기함)의 목민심서 해설을 【】 안에 인용하고 이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호전은 농촌 진흥과 민생 안정을 큰 전제로, 전정·세법을 공평하게 운용하고 호적의 정비와 부역의 균등을 잘 조절하며 권농·흥산(興産)의 부국책(富國策)을 효과적으로 이끌어갈 것을 내세우고 있다. 전정의 문란, 세정의 비리, 호적의 부정, 환자[還上]의 폐단, 부역의 불공정은 탐관오리의 온상이 되었다. 따라서 수령은 이를 민생 안정의 차원에서 척결(剔抉)하고, 나아가 활기찬 흥농(興農)의 실을 거두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 문단은 호전을 설명한 글이다. ‘사전’의 목민심서 해설에 오류와 부적절한 표현이 차고 넘치지만 그중 가장 어이없는 것이 한자 해석을 정반대로 해놓은 병객(屛客)이었다면, 정말 화가 나는 부분이 이 문장이다. 얼핏 보면 호전을 설명하는 데 큰 오류가 없어 보일 수 있으나, 이 글에는 목민심서에 대한 집필자의 잘못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먼저 '호전은 농촌 진흥과 민생 안정을 큰 전제로, 전정·세법을 공평하게 운용하고 호적의 정비와 부역의 균등을 잘 조절하며 권농·흥산(興産)의 부국책(富國策)을 효과적으로 이끌어갈 것을 내세우고 있다'는 글을 살펴보자.

경세유표는 국가의 제도를 개혁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목민심서는 제도의 틀 내에서 백성을 구제하는 방안을 서술한 책이다. 수령의 자치권이 업무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이호예형병공 육전(六典)의 내용은 각 분야의 발전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업무로 인한 백성의 고통과 아전의 농간질 그리고 그에 대한 수령의 대처방안을 논의한 책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사진= 2012년 한국고서연구회 창립 30주년 기념 '대한제국 도서전', 연합뉴스)
정약용의 목민심서 (사진= 2012년 한국고서연구회 창립 30주년 기념 '대한제국 도서전', 연합뉴스)

호전 역시 마찬가지다. 호전 6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 전정에서는 조선의 양전(量田)법인 결부법의 잘못된 점, 이로 인한 국가재정의 잠식과 백성들 세액의 편중(偏重)을 말하고 있다. 제2조 세법(稅法)은 연분(年分)에 대한 글로 역시 전정과 비슷한 맥락의 글이다. 제3조 곡부(穀簿)는 환상에 대한 내용으로 빈민구제수단이었던 환자(還上)가 어떻게 세금화 되어 백성을 수탈하는지에 대한 원인분석과 대처이며, 제4조 호적은 모든 부세의 근원임에도 철저히 조사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제5조 평부(平賦)는 전세, 환자 이외에 세목과 수령의 권한에 속하는 민고 등 공평부과에 대한 내용이며, 제6조 권농은 농사를 권장하기 위한 세금의 감면 등이 중심 내용이다.

이 호전에는 목민심서의 모든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백성들의 가장 큰 고통인 삼정 중 전정(田政)과 환정(還政 곡부)이 여기에 있다. 중요한 내용인 만큼, 분량도 절대적으로 많다. 무려 한자 8만 자에 이르며 목민심서 전체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 호전에는 다산이 백성을 구제하는 모든 원칙이 들어 있다. 감히 말하건대 호전을 읽지 않으면 목민심서를 절대 이해할 수가 없다.

먼저, 정책 결정 과정에 백성들의 참여다. 전정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진전(陳田 묵은 땅)과 세법에서 가장 중요한 재결(災結)의 과정에서 주민 대표자들이 직접 조사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정책을 결정하게 하고 있다. 현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형식에 치우친 면이 있다면, 다산은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세액의 결정 과정에서 이미 직접민주주의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공정행정이다. 목민심서에서 다산의 문제해결 방식은 공정행정이다. 공정행정보다 나은 건 잘못된 세금부과체계의 개선이겠지만, 이는 수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가사무의 범위다. 그래서 수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세금부과에서 부당하게 빠져나간 권세가나 부자들을 다시 징세의 범위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목민심서는 이렇게 ‘공정행정’만으로도 백성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인류 최초의 역작이다.

세 번째는 ‘부자들에게 먼저 걷는 일’이다. 앞의 공정행정과 같아 보이나 다른 측면이다.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일관되게 견지하는 것은 국세의 범위에 속하는 세목은 먼저 부자들의 세액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국세는 수령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지만, 국세를 충당하고 남은 세액은 납부시기의 조정 등 수령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 공정행정 내에서의 ‘적극행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세 가지 사안이 호전에서 다산이 백성을 구제하는 방식 중 일부분이다.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 [연합뉴스 자료사진]

여기에 ‘농촌 진흥’‘흥산의 부국책’이 끼어들 틈이 없다. 이런 표현을 쓴 것은 다산이 왜 목민심서를 집필했는지 기본취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목민심서는 부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책이 아니다.

'농촌 진흥'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농촌문제가 대두된 것은 산업화 이후의 문제다. 이건 상식의 문제다. 흥산의 부국책 표현도 마찬가지다. ‘흥산’은 다산 시기 쓰던 용어가 아니었고, 또 쓰더라도 ‘~의 산지’라는 개념으로 사용했지 현재와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

‘부국책’이라는 표현은 더하다. 이 표현대로라면 다산이 호전에서 나라의 부국책을 얘기했다는 것인데, 호전에서 부국책이라고 할 만한 것은 농기계에 대한 약간의 거론, 농사 잘 짓는 농민을 기술직으로 채용하는 것, 목축‧양잠을 권하는 것 등이다. 이 표현은 이 정도 대안으로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다고 다산이 주장했다고 말하는 것인데, 이는 다산을 실정에 무지한 학자로 만드는 표현이다.

그래서 ‘활기찬 흥농’이라는 표현에 더 화가 난다. 터럭 하나도 부패하지 않은 것이 없어 당장 백성들은 죽어 나가게 생겼는데 ‘활기찬 흥농’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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