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는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연속 특별기고 'SDGs 시대, 지역 지속가능발전 현장을 가다'를 총 24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1992년 Rio 국제회의의 결과인 '의제21'의 권고를 바탕으로 지방정부가 설치한 전국협의체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UN ECOSOC) 특별협의기구입니다.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지자체별 Governance의 확산·발전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를 구현하고 대한민국의 지속가능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연속 특별기고는 전문가 기고와 실제 지속가능발전 정책이 실행된 지역 사례로 구성됩니다.  이번 전주시 사례는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5번 목표 사례에 해당하는 것으로, 강소영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이 집필하셨습니다.

[미디어스=강소영 칼럼] 지진이나 화산폭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의 협동으로 사라진 공간이다. 사라져가는 공간을 재생하고 살리기 위해 에너지를 모으고 예산을 투자하는 것이 익숙해진 시대에, 공간을 '지우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전주의 선미촌에 대한 이야기이다.

선미촌은 전주시청과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었다. 번화한 도심 한복판에 버젓이 있었던 선미촌은 2021년 11월 최종적으로 그 기능을 멈췄다. 시간이 사라지는 것과 달리 공간은 사라지더라도 그 흔적을 남긴다. 선미촌도 사라진 지 1년이 지난 지금 성매매 집결지였던 예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진=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진=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60여 년이 넘는 동안 여성의 인권을 착취하며 성구매가 이뤄졌던, 불법적인 공간이었던 선미촌은 2013년부터 시작된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새로운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성매매집결지 소위 집장촌이라고 불리는 이 공간은 우리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여성들이 자본과 폭력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한 상징적 공간이다.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 이후 성매매는 불법적 행위로 규정되었고 전국의 여성단체들은 지역 내 성매매집결지 폐쇄 및 반성매매운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다. 그러나 성매매는 역사 이래 누구도 근절시키지 못한 인류 본능의 문제라는 이상한 통념 등에 갇혀 사회적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성매매집결지 폐쇄 문제를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도시의 문제로 바라보고 이를 해결해 보자는 여성단체 제안이 지역사회에 던져졌다.

이 전략은 성공했고 민관협력을 통해 다양한 주체들과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의제로 ‘선미촌 성매매집결지 폐쇄’가 선정되었다. 몇달 후 민관협의회가 구성되었고, 성매매집결지를 여성인권의 시선을 넘어 도시의 문제로 규정하자 동참자들이 많아졌다.

사진=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진=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첫 번째는 성매매집결지라는 낙인으로 피해를 받아왔던 인근 마을 주민들이었다. 그 다음 선미촌 인근 고등학교 학부모들과 선미촌 때문에 발목잡혔던 도시재생사업 전문가들, 경찰과 소방서 등 선미촌 문제로 인해 골치를 앓고 있던 다양한 주체들이 모였다. 그리고 언론과 시의회, 전주시청이 더해지며 민관협의회가 꾸려진 것이다.

성매매집결지 폐쇄를 성공시킨 경험이 없는 우리 사회에서 이 일을 해나가기 위해 협의회가 처음 시작한 일은 ‘공동학습’이었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성산업의 역사, 선미촌 공간의 구조, 선미촌 인근 주민들의 삶, 선미촌 내 성매매 여성들의 실태, 과거 지자체의 노력 등 다양한 주제들이 함께 학습했다. 공동학습을 통해 우리 사회가 보호하고 지켜야 할 대상이 무엇이며, 벌하고 지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사진=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진=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먼저 선미촌에서 탈출하는 여성들에게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는 조례가 만들어졌고, 선미촌 인근 주민들의 정주 여건을 개선할 도로정비 사업과 도시재생 사업이 선정되었다. 소방서, 지자체는 불법 증개축 등으로 시민안전이 사라진 건물들에 개선명령을 내렸고, 경찰은 불법성매매 영업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전주시는 집결지폐쇄를 위한 전담팀을 구성하여 선미촌 내에 사무실을 설치했다. 선미촌폐쇄정비민관협의회는 이런 활동으로 하나둘씩 불이 꺼져 가는 성매매집결지의 기능을 전환하기 위한 실험을 함께 해나갔다.

오랜 세월 도심 속에 있었지만 성구매하는 남성들 이외에는 누구도 들어가지 못했던 선미촌에 예술가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그것을 필두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선미촌에 시민들의 발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이 일은 전주시가 매입한 6개의 공간에 시티가든, 새활용센터, 뜻밖에 미술관, 독립서점 물결서사, 여성인권플랫폼 성평등전주, 주민커뮤니티센터가 만들어지면서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여성인권 운동가들의 기막힌 전략의 전환이 도시재생과 만나면서 ‘민관협력’을 통한 성매매집결지 폐쇄라는 첫 사례가 탄생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