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는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연속 특별기고 'SDGs 시대, 지역 지속가능발전 현장을 가다'를 총 24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1992년 Rio 국제회의의 결과인 '의제21'의 권고를 바탕으로 지방정부가 설치한 전국협의체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UN ECOSOC) 특별협의기구입니다.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지자체별 Governance의 확산·발전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를 구현하고 대한민국의 지속가능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연속 특별기고는 전문가 기고와 실제 지속가능발전 정책이 실행된 지역 사례로 구성됩니다.  이번 사례는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1번 목표 사례에 해당하는 것으로, 김가영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 담당관이 집필하셨습니다.

[미디어스=김가영 칼럼] 우리 동네에는 ‘공유냉장고’가 있다. 식당 앞,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 앞, 카페 앞, 녹색가게 옆, 전통시장 상인회 공영주차장 옆 ‘공유냉장고’란 이름을 붙인 냉장고가 365일 24시간 돌아가고 있다. 누군가 냉장고를 열어 안에 있는 먹거리를 하나 가져가고, 또 누군가는 먹거리를 챙겨와 냉장고를 채운다.

투명하게 속이 보이는 냉장고 유리문이 여닫힐 때마다 먹거리가 분주하게 주인을 찾는다.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냉장고에 오고 가는 손길이 쌓이면서 정이 듬뿍 담긴 이웃의 목소리 또한 냉장고에 쌓인다.

공유냉장고는 누구나 음식물을 넣고 누구나 음식물을 가져가 먹을 수 있는 냉장고다. 이웃과 음식을 나누면서 사회가 어려운 이웃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잉여 먹거리의 폐기를 줄여 자원순환과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하는 공유 프로젝트다.

공유냉장고에 이웃이 남긴 감사인사 쪽지/ 공유냉장고를 관리하고 있는 운영자
공유냉장고에 이웃이 남긴 감사인사 쪽지/ 공유냉장고를 관리하고 있는 운영자

공유냉장고 프로젝트는 지속가능발전의 관점에서 식량 낭비 감소, 먹거리 복지 사각지대 해소, 먹거리 접근성 보장, 지역 먹거리 종합 전략 푸드플랜 실현 등의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디딤돌 정책으로서 2017년에 기획됐다. 2015년 193개국이 만장일치로 결의한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수원시는 2017년 “수원시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시민과 행정이 함께 수립했다. 수원시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실천하고, 시민의 삶 속에서 이행하는 프로젝트로서 기획된 것이 바로 “공유냉장고”이다.

수원의 공유냉장고는 독일의 ‘거리냉장고’ 사례를 참고하였다. 독일 시민들이 먹거리의 50%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는 현실을 자각하면서 ‘쓰레기를 맛보자(Taste the Waste)’라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된다. 이 다큐멘터리를 시작으로 거리에 먹거리를 공유하는 냉장고, 잉여 먹거리를 요리하는 식당 등이 생겨났다. 독일에서 시작된 먹거리 공유 운동(Foods Sharing)은 세계 240여 개 도시에서 운영되고 있다.

공유냉장고는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를 중심으로 중간지원조직(수원시자원봉사센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청년바람지대)과 시민단체 및 사회적경제기업, 시민, 학생과 협의를 통해 시작되었다. 수원 공유냉장고는 독일의 사례를 바탕으로 서울 등의 공유냉장고 현장을 답사하였다. 공유냉장고 이외에 공유부엌, 공유식당 등 먹거리 공유 체계 전반을 참고하였다.

공유냉장고는 이용자와 운영자가 직접 ‘규칙’을 만들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공유냉장고는 모두가 주인입니다. 마을이 공동으로 관리합니다. 그러나 규칙은 있으며 규칙에 동의하시는 주민들만 이용 가능합니다.

2. 반드시 안전하고 위생적인 음식물을 공유해주세요. 음식물 공유조건에 부합하는 음식물만 넣어주세요.

공유 되는 음식: 채소 및 식재료, 과일, 반찬류, 통조림 등 가공식품, 반조리식품, 냉동식품, 음료수, 빵, 떡, 간식류, 곡류, 음식점 상품권(쿠폰) 등

공유 안 되는 음식: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 주류, 약품류, 건강보조식품, 불량식품, 냉장고 장기보관식품 등

3. 음식물을 이용하실 때 육안으로 충분히 안전한지 판단하고 이용해주세요.

4. 음식물은 누구나 넣고 누구나 가져갈 수 있습니다. 1인당 1개의 음식물만 가져가 주세요.

5. 음식물을 담는 유리병과 다회용기는 공유자산입니다. 반드시 반납해주세요.

공유냉장고는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민간주도 비예산사업이다. 공유냉장고는 마을에 설치되어 24시간 365일 개방되어 있고, 각 공유냉장고별 전담 운영자 조직이 구성되어 있다. 최소 3인의 운영자(자원봉사자)가 냉장고를 관리하며 공유냉장고가 마을 안에서 작동되도록 한다. 2022년 9월 현재 수원에는 37곳의 공유냉장고가 설치되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그 활발한 운영의 핵심은 바로 ‘마을별 공유냉장고 운영자’이다.

수원 공유냉장고의 최대 성과와 특징은 일명 ‘착한 사마리아인’의 발굴이다. 수원 공유냉장고가 항상성을 유지하며 약 4년간 일관성 있게 운영되는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근본 요인은 공유냉장고 운영자들의 헌신과 기여다. 수원 공유냉장고는 ‘역시 사람이 답이다’라는 격언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을별 공유냉장고 운영자들은 아무런 대가나 보상 없이 일 년 365일 공유냉장고를 운영하고 있다.

공유냉장고는 누구나 넣고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냉장고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마을의 이웃 누구나 공유하는 먹거리 거버넌스가 실현되고 있다. 마을에서 코로나19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돌보는 ‘먹거리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 것도 공유냉장고의 큰 성과이다.

공유냉장고는 헌신적인 운영자들이 청결하고 위생적으로 관리해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공유된 먹거리가 1시간~3시간 정도면 모두 사라질 정도로 인기인 덕분에, 공유냉장고는 많은 시간이 ‘비어있는’ 상태다. 그만큼 먹거리를 필요로 하는 이웃과 먹거리를 공유하는 많은 이웃이 공유냉장고를 이용하고 있다.

공유냉장고 전단지(한글, 영어, 중국어)/ 공유냉장고에 먹거리를 공유하는 어린이
공유냉장고 전단지(한글, 영어, 중국어)/ 공유냉장고에 먹거리를 공유하는 어린이

마을의 먹거리 공동체를 마련하는 핵심 역할을 하는 ‘공유냉장고’는 시민의 자발적인 봉사 외에도 냉장고를 구입하여 기부하는 사회적기업 등 지역 기업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잉여 먹거리를 제공하는 식당, 생산공장과의 연계 또한 공유냉장고의 활발한 운영에 도움이 된다.

2022년 1월 공유냉장고 운영자, 시민사회,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모여 ‘수원공유냉장고시민네트워크’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비영리민간단체로서 보다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공유냉장고를 운영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네트워크 설립으로 시민주도성을 강화하고, 각 마을별 연대로 공유냉장고 활성화 및 내실화를 계획하고 있다.

네트워크는 보다 많은 이웃이 공유냉장고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공유냉장고를 널리 홍보하는 데도 열심이다. 운영자님들의 목소리로 공유냉장고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마을 라디오를 제작하고, 공유냉장고를 통해 ‘공유’의 가치를 교육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많은 이웃이 이용하기 쉽도록 안내 책자, 전단지도 제작하고 있다. 특히 전단지는 이주민 이웃을 위해 영어‧중국어로도 병기되어 있다.

앞으로 마을마다, 거리마다 공유냉장고가 설치되길 바란다. 더 많은 이웃이 먹거리를 나누는 문화를 만들어 지속가능한 우리 동네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공유냉장고의 내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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