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생각해보면 애초 ‘윤핵관’이란 단어는 이준석 대표가 고안한 거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 익명 인터뷰를 통해 대표인 자신을 흔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윤핵관’이란 단어는 그 대상으로 지칭된 인사들에게 상당한 정치적 득이 되었다. 최근의 ‘민들레 논란’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표적인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주도하는 듯했던 민들레 모임은 여의도 정치의 문법으로 봤을 때 뻔한 용도다. 이준석 대표가 윤석열 정권 핵심부와 완전히 코드가 일치하는 인물은 아니니, 지도체제 바깥에서 인위적으로 주류를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당권과 공천권을 장악하는 그림이다. 다소 주변적 사실이지만 무슨 뜻인지 모를 ‘민들레’라는 이름 자체(심지어 ‘민심 들어 볼래’라는 무성의한 작명이 원본이다)가 이 모임이 뭘 내세우는 것인지는 별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가 우려를 표하면서 장제원 의원은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이럴 거면 왜 시작했느냐”는 얘기가 나올만한데, 그보다는 “왜 그만뒀느냐”가 핵심일 듯하다. 일부 언론은 내년 5월까지 임기를 남겨 놓은 권성동 원내대표 입장에서 이준석 대표 체제가 조기에 무너지면 당권에 도전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윤핵관’의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이것뿐일까? 용산의 윤심이 민들레 모임을 밀어주는 쪽으로 움직였다면 결코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크라이나에서 돌아온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간 회동 자리에서 오간 얘기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현지 상황에 지대한 관심을 표했고 이준석 대표를 두고 “특사로 갔으면 더 큰 일을 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당내 갈등이라는 점에서 이 발언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직전까지 정진석 의원과 이준석 대표 간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진석 의원 주장의 핵심은 이준석 대표의 우크라이나행은 윤석열 정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이며 자기정치라는 거였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오히려 이준석 대표의 우크라이나행을 정당화하는 것에 가깝다. 애초 정진석 의원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러시아 문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 주장도 그 자체로서는 있을 수 있는 얘기지만 과연 이게 윤석열 정권의 대외정책 코드와 맞는 것인지에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미국이 무기 지원의 필요성까지 거론하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내세우는 자유민주적 가치에 기반한 외교라는 측면까지 보면 오히려 이준석 대표의 우크라이나행은 미국의 요구에 면피를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 아닌가?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 대접견실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석 대표, 윤 대통령, 권성동 원내대표. (연합뉴스)

결국 용산의 윤심은 여의도가 좀 조용하기를 바랄 뿐 ‘윤핵관’의 움직임에 호응하며 당내 갈등 구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쪽은 아닌 셈이다. 이준석 대표는 장제원 의원이 권성동 원내대표와의 갈등을 바라지 않는다며 민들레 모임 참여를 포기한 것에 대해서도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해 판단했다고 말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라고 했는데, 이런 흐름만 보면 오히려 ‘윤핵관’은 이준석 대표 같기도 하다.

물론 용산의 윤심은 언제든 필요하다면 이준석 대표 체제를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준석 대표도 자신의 행보, 가령 공천 개혁이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권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명분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틀에서 보면 윤석열 정권에게 이준석 대표, 권성동 원내대표, 장제원 의원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크게 봤을 때는 중요도가 거기서 거기인 ‘여의도 사람들’이다. 식구라고 하면 식구일 수도 있으나 ‘먼 식구’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어서 진정한 ‘식구’는 익히 알려졌듯 검사 출신들이다. ‘윤석열 사단’의 말석을 차지했던 이복현 검사를 사표낸 지 두 달 만에 금융감독원장 자리에 앉힌 걸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검사 출신이 금감원장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무리한 인사인 것은 분명하다. ‘금융감독’이란 개념이 반드시 ‘범죄’를 상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사는 수사기관이 하면 된다. 금융감독기구로서는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시건전성 감독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2022년 업무계획만 봐도 이 점은 확인된다. 아무리 뛰어난 검사라도 적임은 아니다. 군 사이버사령부 출신이 과기정통부 장관의 적임자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점에서 이복현 신임 금감원장 인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같은 맥락에 있다. ‘윤핵관 중의 윤핵관’은 이들 검사들인 것이다. 이준석 대표가 여의도 사람들과는 아웅다웅하면서 한동훈 장관은 추켜 세우는 것은 이를 반영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윤석열 정권에서의 측근 문제는 여의도의 ‘윤핵관’이나 민들레 모임이 아니라 검사 출신 고위직들에서 터질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보인다. 검찰공화국은 검찰이 아니라 검찰 밖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런 상황을 바로잡을 수 없다. 개혁을 말하는 이준석 대표조차 이 대목에선 충성 경쟁에 나선다. 이를 먼저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국민적 신뢰를 회복해 대안적 세력으로 거듭나야 할 더불어민주당은 애초 검찰공화국을 막을 수도 없으면서 논란만 키운 ‘검수완박’에 매달리다 선거에 지고 지금도 지지자들만 알아 듣는 ‘수박논쟁’ 갈은 걸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이러니 윤석열 대통령에겐 야당 복이 있다고들 하는 것이다. 수준 미달의 공직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를 기다리고 있으나 이대로라면 청문회도 없이 임명 강행이 가능하다. 많은 국민들은 이것을 ‘적대적 공생’과 ‘무책임’으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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