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명승환 칼럼]

법 중심의 시대착오

우리의 공무원 시험은 여전히 법 중심이다. 헌법과 행정법을 축으로 한 과목 구조는 마치 공직사회가 법 해석만 잘하면 돌아가는 듯한 착각을 낳는다. 그러나 오늘날 행정은 법률 합법성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정책의 효과를 분석하고, 사회적 의제를 형성하며, 디지털 전환과 지역 거버넌스를 설계하는 능력이 함께 요구된다. 그럼에도 시험은 이러한 역량을 주변으로 밀어내고 법만 강조하는 시대착오적 구조를 고수하고 있다.

반쪽짜리 개편의 한계 

정부는 최근 7급에 PSAT을 도입하고 영어·한국사를 검정시험으로 대체하는 등 개편을 추진했다. 사고력 평가라는 점에서는 진일보지만, 정작 정책 설계, 데이터 활용, 사회적 소통 역량은 시험 체계에서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 결국 “법만 아는 관료”는 남지만, 현실 문제를 종합적으로 정의하고 AI·빅데이터를 활용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인재는 길러지지 않는다.

10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5 공직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공무원 모의시험을 치르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10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5 공직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공무원 모의시험을 치르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해외의 변화: 선발에서 교육까지 

세계 주요 국가들은 이미 공무원 채용과 교육을 법률 지식 중심에서 종합 역량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영국은 ‘패스트스트림(Fast Stream)’ 제도를 통해 지원자의 문제 해결, 협상, 리더십을 평가하고, 선발 후에도 다양한 부처 순환근무와 정책실험 과제를 수행하게 한다.

싱가포르는 공직자 채용 단계부터 정책 디자인·디지털 활용 능력을 중시하며, 국립행정대학을 통해 지속적인 재교육을 의무화한다.

핀란드는 대학·정부·시민사회가 함께 설계하는 공공서비스 혁신 교육을 운영하고, 실제 정책 프로젝트에 공무원을 참여시켜 데이터 기반 행정과 시민참여 역량을 실습하게 한다.

이들 사례는 공통적으로 법률 지식은 기본으로 유지하되, 데이터·정책 분석·소통·윤리 등 복합 역량을 강화한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한국의 대안: 시험과 교육의 대전환 

우리도 이제 단순한 과목 개편을 넘어, 시험과 교육을 동시에 혁신해야 한다.

법 과목 재개발: 단순 암기가 아닌 데이터 거버넌스·AI 규제·알고리즘 책임성과 결합

분석·설계 역량 강화: 정책 효과 분석, 의제 형성, 거버넌스 설계를 중심 역량으로

실습형 교육 혁신: 디지털 행정, 정책실험, 시민참여를 기반으로 한 실습형 훈련

AI·디지털 역량 신설: 데이터 분석, 정책 디자인, 사이버보안, 위기소통을 필수 평가 항목에 포함

교육훈련 연계: 권역별 공공인재개발원 설립, 인턴·순환근무·멘토링 제도화, 예비군 훈련에 사이버전·재난 대응 모듈 도입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필기시험이 치러진 4월 5일 서울 강남구 한 시험장으로 수험생이 들어가고 있다.  [인사혁신처 제공=연합뉴스]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필기시험이 치러진 4월 5일 서울 강남구 한 시험장으로 수험생이 들어가고 있다. [인사혁신처 제공=연합뉴스]

열린 인재 시스템으로

AI 시대 행정혁신은 더 이상 공직사회 내부만의 과제가 아니다. 모든 국민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상황에 따라 로테이션으로 투입되며, 기존 영역을 대체하거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는 공무원과 민간의 구분을 넘어서는, 사회 전체의 역량 동원이자 풀가동 체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대학•산업•민간•시민사회의 경계가 허물어져야 한다. 지식과 기술, 경험이 흐르고 공유되는 가운데, 공공의 문제를 해결할 융합적 사고와 대응능력이 자라난다. 공무원 시험 개편과 교육훈련 혁신은 그 출발점일 뿐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역량을 발휘하고 교차·대체·협력할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융합형 혁신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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