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지난달 23일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AI 행동 계획(America’s AI Action Plan)’을 발표했다. 이 계획 안에 있는 3개의 행정 명령 중 하나인 "깨어있는 AI(Woke AI)"에서는 기업이 연방 정부에 AI를 납품할 때 "이념적 의제를 위해 진실성과 정확성을 희생하는 모델을 조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편견 없는 AI 원칙"에 따라 개발된 AI만 납품할 수 있다고 명시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AI 정책 의제의 핵심 우선순위를 담고 있는 AI 행동 계획은 연방 정부 차원의 AI 개발과 활용 지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문서로, 공공 부문에서 AI가 특정 정치 성향이나 사회적 편향을 드러내지 않도록 규제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깨어있는 AI에서 규정한 두 가지 원칙 중 하나인 ‘이념적 중립성’ 관련해서는 찬반 논란이 존재한다. 찬성하는 쪽은 AI가 의도치 않게 특정 정치 이념을 강화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중립 의무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 측은 중립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정치적이며, 정부가 이를 강제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기술 발전의 창의성을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기술 전문가들과 인권 단체들은, 인공지능의 학습 데이터가 이미 사회적·역사적 편향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중립을 인위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AI 행동 계획(America's AI Action Plan) (이미지 출처=AI Insider)
미국의 AI 행동 계획(America's AI Action Plan) (이미지 출처=AI Insider)

사실 ‘중립’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중립은 흔히 객관성과 공정성을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시각과 가치관 속에서 정의된다. ‘중립’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며, 정치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변형되고 재해석된다. 어떤 발언이 자신의 입장과 다르더라도 부드럽고 공격적이지 않으면 ‘중립’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같은 내용이 다른 상황에서는 편향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즉, 중립은 현실 속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기준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중립’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중립’은 하나의 정치적 전략, 나아가 이데올로기라고 볼 수 있다.

AI의 본질은 창조자가 아니라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수집가에 가깝다. 인공지능이 내놓는 결과물은 대부분 기존 데이터와 기록을 학습하고, 이를 분석·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그런데 그 데이터 자체가 이미 시장의 흐름, 여론의 기류, 사회의 문화·정치적 편향을 담고 있다. 결과적으로 AI는 중립적이라는 기대와 달리, 그 사회가 가진 트렌드와 불균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를 무시한 채 ‘중립’이라는 이상을 억지로 구현하려는 시도는 기술의 본질과 데이터의 속성을 오해한 것이다. 결국 AI를 ‘무색무취’하게 만들겠다는 발상은 현실과 데이터 환경의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모호하고 무미건조한 ‘중립’적 입장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원한다. 정치든 언론이든, 심지어 기술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 편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fact)에 기반하여 주장하고, 그 주장에 대한 합리적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다. AI 역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검증 가능한 근거와 통찰을 제공할 때 가치를 인정받는다. 무조건적인 ‘중립’보다는 근거 있는 주장과 명확한 설명이 더 큰 신뢰를 얻는다. AI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결과물의 중립성 여부가 아니라, 사실에 기초한 체계적 정리에서 나온다. 정리의 결과가 특정 이념적 성향을 보여주는 것은 그다음 문제다. 

AI (PG) (연합뉴스)
AI (PG) (연합뉴스)

AI도 시장에서 유통되는 하나의 상품이라서 기업마다 경쟁력 있는 AI 상품을 출시하고 있고, 이미 전 세계 AI 시장에서는 서로 다른 성격과 색채를 지닌 인공지능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어떤 AI는 기술적 성향이 강하고, 어떤 AI는 사회·문화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특정 시각을 제공한다. 사용자는 각 AI의 성향과 장단점을 파악한 뒤, 자신의 필요와 목적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언론사들이 공존하는 환경과 유사하다. 다양한 정보원과 시각이 존재할수록 사회는 균형을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공론장의 질도 높아진다. 결국 AI의 다양성은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장치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념적 중립성’ 강제 방침은 기술의 본질과 사회의 다양성을 모두 간과한 무모한 발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은 AI를 억누르고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이 자유롭게 표현되고 경쟁할 수 있는 공정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공평한 사회가 먼저 마련된다면, AI 역시 그 환경을 자연스럽게 반영하게 된다. AI에게 중립을 강요하는 것은 현실도, 해법도 아니다. 미 행정부의 액션이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좋은 솔루션이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AI 역시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 미래지향적 선택이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