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 중 하나로 ‘마약천국’을 거론했다. 민주당이 마약범죄 단속을 위한 예산을 삭감하여 대한민국이 마약천국이 됐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도 야당이 마약 수사, 조폭 수사와 같은 민생사범 수사까지 가로막았다고 주장하며 반국가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윤석열 정부에서 마약 수사는 정말 ‘예산’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았을까?

지난 4일 MBC <PD수첩>‘5천억 마약 밀반입, 놓쳤거나 놔줬거나’ 편 (☞방송 보기)을 방송했다. 주진우 기자와의 공동 취재로 기대를 모았던 이날 방송에서는 제2의 채상병 수사외압 의혹 사건으로 거론되는 ‘5천억 마약 밀반입 사건’을 백해룡 경정 인터뷰를 시작으로 사건의 전모를 추적했다. 취재 이야기가 궁금해 해당 회차 연출한 김신완 PD와 6~7일에 걸쳐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MBC 〈PD수첩〉 ‘5천억 원대 마약 밀반입, 놓쳤거나 놔줬거나’ 편
MBC 〈PD수첩〉 ‘5천억 원대 마약 밀반입, 놓쳤거나 놔줬거나’ 편

‘5천억 마약 밀반입, 놓쳤거나 놔줬거나’ 편 방송 끝낸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묻혔던 이야기를 이제 조금 꺼낸 느낌입니다. 이 이야기는 긴 시간 동안 일어났고 또 여러 기관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취재하고도 풀어내지 못한 것들도 많아요. 그리고 더 알아내야 하는 것도 많습니다. 1시간 방송 한 편으로 끝낼 수 없는 사건이죠.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고 또 윤석열 정권 3대 미스터리라고도 불리는 건이니 앞으로 이 사안은 계속 따라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5천억 마약 밀반입 사건은 어떻게 취재하게 됐나요?

“주진우 기자와는 오랫동안 여러 작업을 해왔습니다. 근래 들어 공동 취재를 구상해서 어떤 아이템 잡을까 찾아왔고, 주진우 기자가 먼저 이 사건을 파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저도 묻혔던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 해볼 게 많은 건이라 생각해서 동의했고요. 주진우 기자는 이 건을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사실 조금 더 빨리 진행할 계획도 있었는데 그 사이 비상계엄과 탄핵 사건이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착수는 예상보다 조금 늦어지긴 했고요.”

주진우 기자와 공조 취재는 어땠어요?

“주진우 기자는 현장에 대한 이해가 높고 현장 취재력도 뛰어난 기자입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보여줬고 그것이 프로그램에도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그램을 어디로 가지고 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도 뛰어났습니다. 이 아이템은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보니 매 순간 취사선택이 고민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많은 것들이 의혹 상태로 있어 손대는 것이 쉽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때 무엇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협의를 많이 나눈 것이 가장 값진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MBC 〈PD수첩〉 ‘5천억 원대 마약 밀반입, 놓쳤거나 놔줬거나’ 편
MBC 〈PD수첩〉 ‘5천억 원대 마약 밀반입, 놓쳤거나 놔줬거나’ 편

‘5천억 마약 밀반입 사건이 무엇인지 방송 못 본 분들 위해 간략하게 소개해 주세요.

“영등포경찰서 백해룡 경정팀이 국제 마약 조직을 검거하고 윗선을 잡기 위해 타고 올라가던 중에 마약 조직을 ‘세관’이 도와줬다는 증언을 확보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수사를 세관 연루 의혹으로 뻗어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강력한 외압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수사는 힘을 잃었고 백 경정은 이후 지구대장으로 좌천됩니다. 반면 외압 행사 인물로 지목되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영전했고요.

그래서 수사로 전체 윤곽이 드러나다 멈춰버렸습니다. ‘제2의 고 채 상병 수사외압 사건’으로도 불리는데 수사 자체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외압에 앞서 수사 내용을 더 실체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한 경우입니다.”

취재하며 새롭게 알게 부분이 있나요?

“세관 연루 의혹의 핵심 쟁점은 세관이 직접 도와줬다는 마약 조직 운반책 증언의 신빙성입니다. 기본적으로 범인들의 증언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는 직관적 반론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우선 교도소에 수감 중인 범인들과 접촉했습니다. 그리고 제작진은 그들이 우리가 상상했던 조직원과는 달랐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범인 중 두 명은 여성이었는데 그중 위나 씨는 아이들을 여럿 키우는 싱글맘이었습니다. 통역사는 면회 후 위나 씨가 상당히 수준 높은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궁금한 걸 묻는 질문지를 보낸 후 답변받았는데 글씨가 상당히 정갈했습니다. 표현도 정확했고요. 범죄에 가담한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증언이 구체적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알게 된 것은 백해룡 경정팀에서 진행한, 범인들이 세관 공범 피의자를 지목하는 과정이 상당히 합리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방송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는데요. 그들이 범죄자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체계적 절차 속에서 특정인을 지목하다 보니 거짓으로 그 테스트를 통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과정에 대해 여러 전문가가 신뢰성이 높은 접근이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MBC 〈PD수첩〉 ‘5천억 원대 마약 밀반입, 놓쳤거나 놔줬거나’ 편
MBC 〈PD수첩〉 ‘5천억 원대 마약 밀반입, 놓쳤거나 놔줬거나’ 편

취재는 어떤 부분부터 시작했나요?

“취재 시작과 함께 공부부터 많이 해야 했습니다. 여행자 입국 절차, 아피스 프로그램, 세관 근무 형태 등 관세청 관련해 이해할 내용이 많았고 길었던 수사 과정을 타임라인에 따라 정리하는 것도 긴 작업을 필요로 했습니다. 여기에 관련 증언자들을 찾고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마약 유입 경로와 시장 현황도 파악해야 했고요.

나아가 여러 기관이 벌인 외압 정황들, 또 그 이후 관련 인물들의 행적, 그리고 외압의 원류를 따라가는 것까지 취재에 나서야 했습니다. 굵직한 사건 하나를 다 따라가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백해룡 경정의 인터뷰로 방송이 시작됐는데,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을까요?

“백해룡 경정이라는 인물이 없었으면 사건이 시작되지도, 또 이렇게 커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인물이라서 백 경정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PD수첩>이 최초로 이 인터뷰를 성사시켰습니다. 거기서 새롭게 들을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길 바랐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백해룡 경정이 진급하며 야전을 떠난 적 없다고 스스로 소개하고 대통령과 국무총리 표창도 받은 것 같은데 어떤 인물인가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형사입니다. 보통의 추진력이 아니었으면 수사를 이 정도로 추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형사가 시작한 사건입니다. 그 자체로 일단 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MBC 〈PD수첩〉 ‘5천억 원대 마약 밀반입, 놓쳤거나 놔줬거나’ 편
MBC 〈PD수첩〉 ‘5천억 원대 마약 밀반입, 놓쳤거나 놔줬거나’ 편

마약 조직에서 처음엔 돈 안 받고 마약을 뿌리고 중독되면 돈 받았나 봐요?

“마약의 대량 유통이 그런 점에서 무서웠습니다. 단순히 마약 중독자들이 더 싸게 마약을 구입하는 문제를 넘어 수요를 ‘만드는’ 효과도 크기 때문입니다. 보통 유흥가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가볍게 권하고 중독이 되면 가격을 올려 받아 이문을 더 크게 남기는 일이 벌어지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만큼 중독자 수는 늘어나는 것이고요. 주변의 경험자가 많아질수록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마약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해당 건에 대해 조사가 이뤄졌는지 묻자, 관세청이 ‘마약 밀반입에 대한 정보를 경찰로부터 못 받아 화주를 특정할 수 없어 조사가 어려웠다’고 하는 것 같은데 적절한 해명일까요?

“기관마다 체계와 절차가 있고 사정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적어도 이 건을 봤을 때 기관에서 이렇게 큰 사건이 터졌으면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충분히 대응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화물을 통해 대규모 밀반입이 일어났으면 시스템에 어떤 결함이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 게 당연한 수순 아니었을까요?”

세관 직원이 마약 운반책인 말레이시아 여성들을 도왔다고 나와요. 이게 사실이라면 너무 충격적인데 세관 직원의 일탈일까요?

“아직 사실관계가 다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 세관이 오해받았을 수도 있고 적극 결탁했을 수도 있고 또 상부 지시를 받아 단순 사적 의전을 했는데 일이 커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을 명백하게 밝히는 게 중요한 일인데 아직 미궁 속에 있습니다. 어떤 방식을 통해서라도 결론은 지어야 하는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MBC 〈PD수첩〉 김신완 PD
MBC 〈PD수첩〉 김신완 PD

검찰이 세관 공무원에 대한 경찰의 영장을 반려한 거잖아요. 검찰도 이 사건과 관련 있을까요?

“중앙지검이 사건을 은폐까지 하려고 했고 그래서 직무 유기했다고 단정하기에는 역시 조사가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말레이시아 조직을 조기에 소탕하여 마약이 대거 밀반입되는 일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노력했다고는 하지만 작은 경찰서 강력팀이 범인들을 잡을 동안 검찰은 무력해 보였으니까요. 또한 남부지검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지 않아 중요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도 납득이 가진 않습니다.”

아피스가 잘 만들어진 검사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누군가 아피스를 작동 못 하게 했을까요?

“아피스는 범죄 데이터를 입력하여 상당히 정교하게 우범 여행자를 선별한 후 직접 검색이 필요하다고 알려주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다음, 이 데이터를 가지고 운영하는 것은 ‘사람’의 몫입니다.

관세청과의 인터뷰 통해 저는 과연 관세청이 잘 만들어진 아피스를 최선을 다해 활용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피스 운영 경험이 있는 전 관세청 정보분석관은 ‘아피스는 훨씬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조사를 열심히 해야 하는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세관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문제 있는 여행자를 차단하고 관리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BC 〈PD수첩〉 ‘5천억 원대 마약 밀반입, 놓쳤거나 놔줬거나’ 편
MBC 〈PD수첩〉 ‘5천억 원대 마약 밀반입, 놓쳤거나 놔줬거나’ 편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 취재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이 사안에 대해 많은 취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약은 이념의 문제를 떠나 모두가 우려하는 사안이고 그래서 정쟁의 대상이 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마약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은 마약 문제를 이 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