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며칠 전 걸그룹 에스파 멤버 윈터와 보이그룹 엔하이픈 멤버 정원의 열애설이 터졌다. 에스파는 SM엔터의 간판 걸그룹이고 엔하이픈은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 소속 보이그룹이다. 엔하이픈은 일정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열애설의 파도는 윈터를 향해 몰아쳤다. 현재 에스파는 케이팝 신에서 가장 주가가 높은 걸그룹이고, 윈터는 카리나와 투톱을 이루는 인기 멤버이기에 더욱 그랬다. SM과 빌리프랩은 사실무근이라 입장을 밝혔다. 루머 유포에 대해 법적 조치까지 빼들었다.

열애설 논란은 케이팝 산업의 풍토병이다. 가십과 논란과 수습과 이런저런 분석이 반복된다. 열애설을 설명하는 담론은 ‘유사 연애’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거기서부터 여론과 담론이 파생되는데, ‘유사 연애’적 소비를 반인권적 악습으로 규정하는 입장과 어쩔 수 없는 현실로 규정하는 입장이 있다. 전자가 케이팝 신 바깥의 언론과 ‘일반인’들 반응에 가깝다면, 후자는 케이팝 신에 연루된 팬덤의 입장에 가깝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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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설이 터질 때마다 커뮤니티에서 인용되는 ‘바퀴벌레론’이 그렇다. “식당에 바퀴벌레가 있다는 것은 다들 희미하게 눈치채고 있지만 직접 보고 나면 두 번 다시 갈 수가 없다. 아이돌의 연애도 마찬가지다”는 논리다. 나름의 현실론을 담은 얘기지만, 아이돌의 연애를 어쩔 수 없는 일로 긍정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실은 연애를 억압하는 규범을 합리화하는 논법이기도 하다. 이건 아이돌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연애를 막을 수는 없지만, ‘들키지는 말아 달라’다. 들키지 않을 책임이 아이돌의 직업윤리처럼 규정된다. 따라서 열애설이 터진 아이돌은 ‘프로의식’이 해이하고 팬들을 기만한 것이 된다.

반면, ‘유사 연애’란 프레임을 대체하려는 담론도 있다. 아이돌과 팬덤의 관계성이 변화했다는 주장이다. 팬덤은 아이돌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관리자이자 친밀한 동반자이며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 팬덤의 입장에서, 리스크를 감수하고 연애를 하는 것은 자신들의 헌신을 수포로 돌리고 서로 간의 신뢰를 깨트리는 일이다. 그것은 팬덤과 아이돌이 구성한 공동체에 균열을 내는 사건이다. 이런 입장은 케이팝에 깃든 악습을 윤리적으로 비판하는 걸 넘어 케이팝을 그 나름의 ‘이해할 만한’ 복잡성을 지닌 공동체로서 윤리적으로 재구성하는 시도다. 그럼에도 아이돌의 연애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는 팬덤의 입장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한계가 있다. 열애설을 기만으로 규정하는 그들의 결론을 결과적으로 합리화하는 함정이 깔려 있다.

열애설은 담론의 교차는 물론 권력 투쟁이 펼쳐지는 전장이다. 케이팝 신의 팬덤은 경쟁 아이돌의 입지를 끌어내리기 위해 사생활이 폭로되면 스캔들에 땔감을 집어넣어 불길을 키우려 한다. 앞서 정리한 입장들 역시 아이돌의 열애설이 현실적으로 타격이 크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그로부터 아이돌과 팬덤의 관계를 되짚으며 설명하는 성격이 있다. 하지만, 그런 전제가 아직도 현실인지, 어디까지 유효한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지난 이삼십 년 동안 아이돌의 열애설은 누적되며 일상화된 사건이 됐고 팬덤도 기획사 측도 어느 정도 면역력이 생겼다.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카리나의 열애설이 터졌을 때, SM 시가 총액이 빠져나가고 자필 사과문이 나오는 소동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에스파는 지명도가 더욱 높아졌다. 하이브의 내분으로 소속 걸그룹들이 주춤하는 계기가 있었지만, 일정한 호재와 잘 기획된 활동을 통해 극복 가능한 정도의 스캔들이었다는 뜻이다. 윈터의 열애설 역시 그 뒤 터진 계엄령 사태에 파묻히며 더 이상 얘기되지도 않는다. 아이돌의 기반이 유사 연애 감정이라고 강조하며 열애설의 파급력을 크게 묘사하는 여론은 현실을 반영한다기보다 스스로 파장을 키우고 싶은 바람이 작용한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아 보인다.

'유사 연애'란 키워드 역시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설명력이 유효하다 아니다, 도덕적으로 옳다 그르다의 이분법으로 바라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절대다수 팬덤이 여성인 보이그룹의 경우, 팬덤과 아이돌 사이 이성애적 관계성이 중요하지 않을 리가 없다. 예컨대, 정원이 소속된 엔하이픈은 타이틀 곡 무대에 여성 백댄서와의 페어댄스가 연출된 적이 있는데 쇼케이스 현장에선 아우성이 빗발쳤고 팬덤은 대대적으로 반발했다.

반면 팬데믹을 거치며 여성 아이돌 팬덤 역시 여초화 됐다. 보이그룹도 여성 팬이 응원하고, 걸그룹도 여성 팬이 응원하는 시대에 둘의 팬덤 양상은 동일할 수 없다. 결국 팬덤이란 존재를 새롭게 정의하고 세분화하는 이론을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논점이 돌아간다. 이에 관해선 차후 더 깊은 호흡으로 논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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