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정의철 칼럼] 2024년 6월 ‘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일부 언론에 ‘출입정지’를 통보했고 기자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을 가했다. 이에 대해 ‘기자협회’는 취재 과정에서 고압적 태도 등 의협의 소통 태도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고, ‘기자협회보’를 통해 의사들로부터 댓글·이메일로 괴롭힘 당한 사례를 공개하기도 했다. ‘진료지원(PA) 간호’ 합법화 등이 포함된 ‘간호법’이 통과되자, 의협 임원은 환자의 치료와 회복 과정에서 소중한 동료인 간호사에 대한 폄하 발언을 쏟아내며 소통능력 부족을 보여주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높은 의료수준과 짧은 대기시간과 낮은 의료비, 그리고 우수한 의료진을 보유하고 있다. 의사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 안정성도 높아 많은 수험생들이 의대를 선망한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에서 초과 근무를 감당하며 혹독한 수련 기간을 보내는 전공의들과 생명을 구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며 필수의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에서 분투하는 의사들도 많지만 의사증원, 간호법, 공공의료 등 현안이 나올 때마다 ‘소통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의료현장은 첨예한 이해관계가 개입되어 있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며 복잡다기한 갈등과 감정, 조건들이 얽혀 있는 역동적 공간이다. 고령화의 가속화로 의료든, 돌봄이든, 간호든 건강을 둘러싼 수요는 늘어날 것이고 연관된 문제들도 증폭될 것이다.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은 물론 감염병, 고혈압·당뇨 등 퇴행성 질환, 빈곤과 고립이 원인인 고독사와 자살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양한 보건의료 문제들을 드러내고 해법을 찾아 공동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소통의 역할이 중요하며, ‘언론’이 시민의 건강권을 위한 소통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8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되는 환자 뒤에 응급실 지연 안내문이 놓여 있다. (서울=연합뉴스)
8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되는 환자 뒤에 응급실 지연 안내문이 놓여 있다. (서울=연합뉴스)

코로나19 기간 발열은 공포·혐오의 상징이었다. ‘순수한’-‘오염된’ 발열에 대한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진료를 받을 수 없어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대책이었다. 당시, 대구 인근의 고교생은 14번이나 검사 후 음성이 나왔지만 감염원으로 의심받았고, 열이 심해도 방역규칙을 따르며 지켜보다 병원 치료가 거부되고 사망했다.1)

K-방역 자찬 속에 장애인들의 건강권을 외면한 코호트격리, 동선 추적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거동이 힘든 노인이나 극빈층에게 고립과 돌봄 위기를 낳은 ‘언택트’, 이주민을 배제한 방역정책, 편의적인 영업 제한으로 생존위기에 봉착한 자영업자들의 절규 등에 대해 언론은 오랜 기간 경청하지 않았다. 의약품 수입 정책 미비로 ‘항상적’ 위기를 겪고 있는 희귀질환 환자들은 악화하면 해외 가서 치료받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희귀질환 의약품 수입 기준에 대해 ‘국가가 나서라’는 이들의 절규는 소통되지 못하고, 환자들의 말 없는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의사-간호사-복지사-돌봄 전문가가 협력해 ‘공동체’ 차원에서 의료와 돌봄을 확대하는 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하자는 요구가 커지고 있고, 시민의 건강권 강화도 절실하다. ‘건강권’은 의료지원을 넘어 인권, 작업·생활환경, 사회적 정의와 관련되며, ‘최선의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와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생활환경 확보 권리’를 포괄한다. 건강권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인권’이며, ‘위로’부터 주어지지 않고 소통을 통해 공론화될 때 실천될 수 있다.2)

문제는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을 위한 권리인 ‘건강권’이 단순한 자유권이 아닌 정부와 공동체의 개입과 참여가 필요한 사회권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추상적 권리 선언에 머무르는 경향과 함께 ‘언론’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동체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언론의 역할

보건의료에 관한 소통을 주도하는 보건당국과 전문가집단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고, 언론이 어떻게 소통하는지에 따라 공동체의 건강은 큰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보건당국과 전문가집단의 발표와 주장을 매개해 온 언론의 변화는 시급하다.

언론은 높은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내포하는 건강위기 시 불확실성을 치밀히 분석하고 시민의 불안을 낮추며 대안을 찾기보다 선정적 보도에 치중해 왔다. 예를 들어, 2020년 가을 독감 예방접종 상황에서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자 수를 속보로 선정적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그 결과 접종 속도는 둔화했고 몇백만 회의 백신을 폐기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어느 언론도 사과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에서도 반복돼 ‘백신 접종 후 사망’, ‘접종 후 사지마비’, ‘접종 후 뇌출혈’ 같은 기사가 포털을 통해 확산했다.3)

코로나19 초기 “서초구 상륙한 대구 코로나”를 헤드라인으로 단 종편 뉴스는 지방에서 부촌으로 감염 전파가 문제라는 의미를 담은 노골적인 지역 차별 프레임을 부끄러움 없이 선보였다. 거대정당들의 대통령 선거를 위한 집회는 제약받지 않고 방역의 예외였지만, 자영업자나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집회는 금지되는 등 감염병 위기관리조차 평등하지 않았지만 언론은 이에 대해 침묵했다.

대구 MBC 뉴스 중 한 장면
대구 MBC 뉴스 중 한 장면

반면, 언론이 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도한 사례들도 있다. 대구MBC는 코로나19 초기 재난 현상 자체를 넘어, 재난에 맞선 당국의 대응력에 대한 비판과 주민 건강을 위한 대책을 우선으로 보도하며 주민 제보를 바탕으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특히, 독립적 유튜브 뉴스 채널을 통해 감염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예방법을 방송함으로써 재난에 대한 주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켰고, 지역방송 뉴스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4)

2022년 1월 아파트 붕괴라는 대형참사가 발생하자, kbc광주방송은 구조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려달라는 주민 요청에 답하며 재난방송에 나섰다. 인력도 재정도 부족했지만 참사현장을 지키며 18일간 유튜브 생방송을 이어갔다. 주민의 안전과 알 권리를 우선한 방송이었다. 18일간 이어진 생방송 기간 시청자들이 찾아와 취재진에게 커피·핫팩을 전하거나, 건물을 못 찾아 헤매다 식어버린 김밥을 전하는 장면까지 실시간으로 방송을 탔다. 방송에 참여했던 기자는 취재 경력 15년여 경험하지 못했던 시청자들의 격려와 따뜻한 소통을 체험했다고 전했다.5) 이러한 사례에서 주민과 공동체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언론의 역할은 여전히 막중하며, 동시에 보건의료에 대한 언론 보도의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도 시급함을 알 수 있다.

시민과 건강권과 알 권리를 위한 견인차로서의 언론

코로나19 기간은 물론 지금도 아픈 노인이나 거동이 힘들어 생활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 경제적·정서적 지지가 미약한 일인 가구나 소년소녀가장, 고립된 빈곤층에게는 대면 의료와 돌봄, 생활지원과 생존권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의정갈등이라는 눈에 띄는 현상과 정부-의료계의 대치에 치중하며, 의료공백으로 더욱 심각하게 건강권을 위협받고 있지만 목소리 낼 여력조차 없는 계층의 건강권에 대한 대책 보도에는 소홀해 왔다.

보건당국과 의사 등 전문가집단을 취재원으로 존중하며 의존해 왔던 보도행태의 변화도 절실하다. 이제 언론은 환자와 시민의 ‘건강권’ 관점에서 취재하고 대안을 말해야 한다. 암, 심뇌혈관질환 등 중병, 희귀질환 등 난치병, 아동이 겪는 중증질환 등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이들을 돌보는 가족들이 전문가 이상으로 고통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은 적극적으로 이들을 만나고 이들의 건강권 관점에서 보도해야 한다.

8월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 방송이 중계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8월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 방송이 중계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의정대립이나 갈등, 분쟁이 아닌 시민과 환자의 ‘건강권’ 수호 관점에서 보건의료 문제에 접근하고 대안 찾기에 집중해야 한다. 시청률과 클릭 수가 아닌,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우선하는 보도를 해야 한다. 환경파괴, 상업화, 건강불평등으로 건강위험 요인이 늘어나는 ‘위험사회’ 맥락 속에서 현상과 갈등 위주가 아닌, 해법을 제시하는 보도는 시민의 건강권과 알 권리를 지키는 것은 물론 언론의 신뢰성 추락이라는 소통의 위기에 대응하는 해법이 된다.

‘의정대립’ 문제의 경우 공동체 건강을 위해 의사 수 증원을 넘어 어떤 구체적인 개혁이 필요한지를 담아내야 하며, 갈등 현상 자체를 부각하는 메시지는 지양해야 한다. 의사증원, 국민의 건강과 안전과 직결되는 간호법과 공공의료는 물론, 돌봄과 간병·요양, 재가치료·호스피스 등 완화치료, 건강보험·요양보험 보장성 강화, 의료 수가 문제 등 보건의료 쟁점들에 대해 선제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실질적 해법을 찾는 사회적 공론장을 언론이 주도적으로 열어야 한다.

질병 예방과 진단, 치료, 회복, 힐링 과정에서, 또 보건의료정책의 개선을 통한 건강권 강화를 위해서, 소통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여전히 언론은 소통의 핵심적 위치에 있다. 언론은 주민의 건강권과 알 권리 충족을 위한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질병과 건강에 관련된 문제들은 높은 불확실성과 함께 공동체의 역동성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클릭수·시청률에 연연하는 속보·특종 경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앞서 감염병과 재난 위기에 맞선 두 지역언론의 보도 사례들처럼 언론이 주민의 ‘건강권’과 ‘알 권리’를 우선하는 보도에 적극적으로 임한다면, 건강과 안전의 위기와 언론의 신뢰성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성찰보다 비판에 익숙하고, 내부변화보다 쉽게 위부 요인들을 탓해 온 언론이 스스로 변화하고 혁신할 시간이 무제한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참고문헌

1) 김희경 (2024). 고통 곁에서 부서진 언어 이어 붙이기. 의료인류학연구회 기획. <달라붙는 감정들>. 서울: 아몬드.

2) ‘건강권’은 적시의 적절한 보건의료와 위생, 영양·주거의 적정 공급, 건강한 직장 환경, 성·생식 보건등 보건교육과 정보 접근을 포괄하며, 자유권과 사회권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신영전, 2011).

3) 이재갑 (2021). 감염병 전문가가 본 ‘코로나19 보도’. <관훈저널>, 150-156.

4) 김연식 (2021). 대구MBC 뉴스 제작진의 코로나 사태 보도태도에 관한 연구.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14권 2호, 139-166쪽.

5) 이형길 (2022. 04). kbc <광주 아파트 붕괴 현장 생방송> 지역 방송의 가치 되새긴 18일 연속 생방송. <신문과 방송>.

♣ 정의철 상지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언론인권통신' 제 1045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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