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사설은 특정 사안 또는 쟁점에 관해 독자들의 생각, 신념, 행동 등에 영향을 미치거나 독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공적 담론이다. 언론사는 사설을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나 이념을 드러낸다. 소속 기자들과 논설위원들은 독자들에게 언론사의 입장이나 이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예시와 은유는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과장도 서슴지 않는다. 일종의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다. 특히, 신문 사설은 사회 구성원의 의식의 흐름과 행동 양식 등 사회의 의사소통 방식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담론 권력의 핵심이라 규정할 수 있다. 신문 사설은 해당 언론사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문 사설은 일반 뉴스 보도와 차원이 다르고 무게가 다르다. '존중받는 노동과 신뢰받는 언론'을 지향하는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2024년부터 담론 권력을 감시하기 위해 ‘이달의 나쁜 사설’을 매월 선정·발표하고 있다. 

2024년 한국 사회 일자리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지만, 보수신문은 종합적 분석은 하지 않고 재계의 이해만을 앞세우면서 오히려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최근 언론이 전하는 고용 관련 지표는 한국 경제 위기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반년 이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장기 실업자 비중이 25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지난 8월 기준 실업자 수는 56만4000명이었는데 이중 구직 기간이 6개월 이상인 사람은 20.0%를 차지했다. 한국의 실업자 5명 중 1명은 반년 이상 구직 활동을 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 8월 이후 최고치다. 장기 실업자 중 20, 30대 청년이 절반을 차지해 장기 실업의 고통이 청년층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쪼개기 알바'로 불리는 주 15시간 미만 초단기 노동자 수도 154만 명에서 201만5000명으로 늘어나는 등 일자리 질도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20~30대 청년들 중 계약기간이 1년 이하인 임시직 비율도 28.3%로 역대 최대 규모로 조사됐다.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는 없지만, 일하지 않고 쉬는 사람을 가리키는 '쉬었음' 인구는 10월 기준 244만50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장기간 일자리를 못 찾은 이들이 이전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임시·계절적 업무가 끝나서'란 응답이 26%로 가장 많았으며, '시간·보수 등 작업 여건이 만족스럽지 않아서'가 25%였다. 

한국 사회 고용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50대 노동자 월급이 22년 전에 비해 2.1배가 되는 동안 20대 노동자 월급은 1.5배 오르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1년 월평균 126만 원이던 50대 근로자의 월급은 지난해 351만 원으로 올랐지만, 22년 전 104만 원이던 20대 노동자 월급은 작년에 230만 원으로 올랐다. 청년들의 경우 시간제·임시직 비율이 높기 때문에 200만원도 안되는 저임금 비중이 58.6%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도 역대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통계청은 '2024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 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내놓았는데,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간 임금 격차는 174만8000원으로 7년 연속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2021년 8월 이후 3년 만에 정규직은 감소했고, 비정규직 비중은 38.2%로 1.2%포인트 올랐다. 비정규직 중 시간제 노동자 비중도 50.3%로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 

모든 고용 지표가 우리 사회 일자리 정책이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보수신문이 전하는 해법은 엉뚱하게 세대 갈등을 조장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로 가득하다. 재계의 이익만 대변하다보니 현실을 제대로 보려는 저널리스트의 책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사설 <채용은 줄고 월급은 꽁꽁, 청년 '富의 사다리' 붕괴 막아야>(10/23)에서 “투자의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과감히 풀고, 나이·연차보다 직무·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임금제도를 확대함으로써 청년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고갈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신문도 사설 <불어나는 장기 백수' 청년들경제 역동성 되살려야>(10/2)에서 “유연하고 다양한 고용형태, 호봉제가 아닌 생산성에 기반한 합리적인 임금체계, 노사 합의에 따른 자율적이고 생산적인 근로시간 운용”을 대책으로 내놨다. 세계일보는 “청년 취업난의 근본 해법은 기업들이 통 큰 투자로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라며 ‘기업을 옥죄는 규제 혁파’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 한국경제신문는 심지어 “획일적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중소기업 근로자는 초과 근무와 야근을 하지 못해 임금이 줄어들었고, 경영주는 일감이 있어도 일을 시킬 수 없어 애태우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보수신문들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법으로 항상 이야기하는 ‘규제 혁파’란 중대재해처벌법, 주52시간제, 해고할 권리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과 책임은 항상 ‘철옹성 대기업 노동조합’에게 있단다. 우리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해결은커녕 더욱 심각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광고주인 대기업 이익 챙기기에만 관심있는 언론의 여론 조작에 있다.

너무 유연해서 문제인 한국 고용 시장

지난 12일 중앙일보는 우리 사회의 평균 퇴직 연령은 50.5세이며, 평균 근속기간은 14년 5개월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新사오정 시대’가 왔다고 했다. 중앙일보가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40~50대 실직자 중 ‘비자발적’ 실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50.8%다. 중장년 실직자의 절반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직장에서 쫓겨난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정년은 60세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0년 먼저 회사에서 쫓겨나는 셈이다. 중앙일보는 기사에서 재취업 한 뒤 임금은 전 직장에서 받던 임금의 62.7% 수준이며, 57.9%가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경제협력기구 자료를 근거로 한국의 중장년 임시직 비중은 34.4%로 OECD 평균의 4배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해고가 자유롭다는 미국조차 2.9%에 불과하다.한국의 고용 시장은 너무나 심한 유연화 상태에 놓인 것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용없는 성장, 낙수효과는 없다

보수신문은 좋은 일자리는 ‘민간의 몫’이라며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모든 규제를 풀라’고 끊임없이 주문한다. 법인세와 상속세를 인하하고 대기업에 면세 혜택을 확대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 재정을 대기업에 직접 몰아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에서도 대기업은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지만 고용을 늘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기업 비정규직 비중은 증가했다. 매일경제는 2021년 8월 20일 국내 매출 30대 기업의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상반기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220% 늘 때 고용은 1%도 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올해 2월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부원장은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보고서에서 2021년 한국의 종사자 250명 이상 기업 일자리 비중은 13.9%로, 관련 통계가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중 가장 낮다고 발표했다. 대기업이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져봤을 때 OECD 평균은 32.2%다. 한국은 주로 300명을 기준으로 대-중소기업을 구분하지만, OECD는 250명을 기준으로 한다. 미국이 57.7%로 가장 높았고, 프랑스(47.2%), 영국(46.4%), 일본(40.9%) 등도 40%가 넘었다. 

불평등한 원하청 구조와 기업별 교섭

지난해 현대차·기아차의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인 26조를 기록했으며, 올 1분기 영업이익률은 8.7%로 테슬라(5.5%)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 중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그 배경에는 불평등한 원하청 구조가 있다. 국민일보는 지난 14일 사설 <글로벌 3위 현대차, 상생 없인 지속가능 성장 없다>에서 “현대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 2분기까지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달성했지만, 이 이익이 현대차그룹이 틈만 나면 외쳐오던 협력업체와 동반성장을 통한 상생을 도모한 결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인 ‘블라인드’에는 최근 한 달 동안의 파업을 마친 현대프랜시스 등 자동차 부품 계열사 직원들이 현대차의 부품 단가 후려치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저조해 임금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격차는 노동시장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초래하는 핵심적인 요소라며 그 원인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시장 교섭력과 중소기업의 하도급 거래’를 꼽았다. 또한 기업별 교섭 체계가 기업 규모에 때한 임금교섭의 조율 기능을 약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해마다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고, 산별연대임금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초기업교섭구조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법·제도 미비와 대기업의 반대로 제자리 걸음에 머무르고 있다. 

올해 4월 현대차와 기아차는 하도급 업체의 열악한 근로 여건을 개선한다며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5000여 협력사를 돕는다며 마련한 기금은 120억원에 불과하다. 2023년 영업이익의 0042% 수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전 임기 후반부의 우선적 국정 목표로 ‘양극화 해소’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뜬금없다’며 양극화 해소에 들어갈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부터 밝히라고 요구했다. 부자 감세 정책과 경기 불황으로 연속해 세수 부족이 발생하고, 국가 재정 적자가 예상되지만, 고집불통의 긴축 재정을 고수하는 한 ‘양극화 해소’는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혐오와 갈등, 혼란의 일차적 책임은 ‘사실을 잘게 부수어 분석하고, 연관을 해석해, 복잡한 관계을 파헤쳐 시민에게 맥락을 전달한다’는 저널리즘의 기본 책무를 잊은 당신들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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