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공영방송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대통령의 이사회·사장의 임면권을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럽의 공영방송에서 행정부 수반이 공영방송 이사회와 사장의 임명권을 모두 행사하는 경우는 없다.
지난 9일 중앙대학교에서 열린 한국방송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최선욱 전 KBS 전략기획실장은 <KBS 이사회 구성과 사장 임면 개정법률안의 경향변화>를 주제로 발제했다.
최 전 실장은 “민주주의가 성숙된 국가 내 공영미디어들의 전체 이사 및 최고 경영자를 정부의 수반이 임명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통령의 임명은 이사장, 이사회가 사장을 임명하는 체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 전 실장은 “정당·정부 등 사회 엘리트 집단의 권력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독립적 공영미디어를 위한 필수조건”이라며 “정치인들의 책임은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이 어떤 정당의 성격을 띠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행 방송법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KBS 이사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KBS 사장은 KBS 이사회가 사장 후보자를 임명 제청하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정치권은 관행을 앞세워 KBS 이사회를 여야 7대4 비율로 구성해왔다. 윤석열 정부 방통위는 대통령이 지명·임명한 방통위원 2인만으로 KBS 이사회를 구성해 논란을 빚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ZDF의 경우 12명의 이사회로 구성되며 각기 다른 주체가 임명한다. 8명은 텔레비전위원회에서 5분의 3 다수결로 임명하며, 4명은 수상과 공동으로 임명된 연방 주 대표가 임명한다. 이 과정에서 수상은 만장일치 임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ZDF 사장은 텔레비전위원회(시청자위원회 역할)의 5분의 3 이상 동의로 선출된다.
영국 공영방송 BBC의 경우 이사장 1인만 추밀원(국왕자문기구)에 의해 임명된다. 이사장 선임 과정은 공개된 경쟁으로 진행되며 국무장관은 이 과정을 BBC와 협의해야 한다. 4명의 연방추천 이사는 추밀원에 의해 임명되지만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장관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비상임 이사와 상임이사는 각각 이사회 내 지명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에 대해 이사회가 임명한다.
35인으로 구성되는 오스트리아 공영방송 ORF 이사회의 경우 6명은 연방정부가 국민의회의 정당 의석수에 비례해 임명하며, 9명은 연방 주 하원이 각 1명씩 임명한다. 또 ▲연방 정부가 9명 ▲시청자위원회가 6명 ▲중앙직원위원회가 5명씩 임명한다.
최 전 실장은 “이사회 추천 주체 다원화에 한계가 있다면 일정기간 단일이사회로 전환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최 전 실장이 제안한 단일이사회는 사장·부사장 등 KBS 집행부 일부를 상임이사로, 방통위가 추천한 이사들을 비상임 이사로 두어 전체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안이다. 아울러 최 전 실장은 정권 교체기에 반복되는 이사·사장 해임 강행을 방지하기 위해 ▲임의해임방지 제도 ▲임기 연장·교차 임기 제도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 전 실장은 중기적 방안으로 시청자위원회의 민주적 재편과 위상 강화를 제안했다. 기초지방자지단체와 사회 대표분야 기반의 지역 시청자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역시청자위원의 대표자가 광역자치단체를 대표해 중앙시청자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이다. 민주적으로 재편된 시청자위가 추후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절차에 참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독일 텔레비전위원회는 정치인·정당인·정부인사·사회각계 집단 대표자 등 60명으로 구성되는 방송평의회로 ZDF 이사 임명권을 갖고 있다. ZDF 사장은 텔레비전위의 5분의 3 찬성으로 선출된다. 앞서 KBS 이사회는 사장 선임 과정에서 시민평가단을 도입한 바 있다.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 시민참여를 높이는 방안으로 호평받았으나 일각에서 전문성 지적이 제기됐다. 전문성과 지역 대표성을 가진 시청자위를 구성하면 이 같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게 최 전 실장의 설명이다.

한편, 최 전 실장이 2005년 5월부터 2024년 9월까지 발의된 KBS 이사회 구성·사장 임면 관련 방송법 개정안의 경향성을 분석한 결과, 대다수가 이사 추천 주체와 이사 수 확대 내용에 집중됐으며 ‘임명권’ 개혁에 대한 발의안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회 구성 관련 법안의 유형을 보면 ▲전원 교섭단체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내용 ▲교섭단체와 방통위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내용 ▲교섭단체와 KBS노사가 추천하는 내용 등이 주를 이룬다. 2022년 이전까지는 이사회 구성을 13인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안이 가장 많이 발의됐으며 2022년 이후부터는 21인으로 늘리는 발의안이 많았다.
KBS 사장 임명과 관련 방송법 개정안은 사장 임명제청 시 이사회의 3분의 2가 찬성하는 특별다수제가 가장 많이 발의됐다. 15~20인으로 구성되는 사장추천위원회와 100명 이상의 국민으로 구성되는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 설치에 대한 발의안은 2018년 KBS 이사회가 시민평가단을 도입한 뒤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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