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흑백요리사>는 방송이 끝나고도 다시금 화제를 불렀다. 주요 출연자 나폴리 맛피아, 트리플스타, 요리하는 돌아이가 운영하는 식당이 아이들을 받지 않는 ‘노키즈존’이라고 논란이 됐다. 이들의 식당이 파인다이닝이라 불리는 고급 음식점이고 주류를 필수로 구매해야 하는 장소라 어쩔 수 없다고 변호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만 도마에 올리는 건 공정하지 않다. 노키즈존은 사회 곳곳에 퍼진 장소가 되었다. 몇몇 방송 출연진이 아니라 이젠 익숙해져 버린 노키즈존이란 현실을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강아지나 고양이도 아니고 사람의 자식을 공중장소에 출입금지하는 건 새삼 생각해도 기분이 이상하다. 왜 이런 일이 몇 년 사이에 생긴 걸까. 옛날이라고 아이들이 소란스럽지 않았을 리 없다. 네 가지 정도의 변화가 있었다.

10월 17일 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10월 17일 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먼저, 가정의 양육방식이 예전에 비하면 민주화됐다. 나는 어릴 때 공중장소에서 떼를 쓰다가 그 자리에서 아버지한테 뺨을 맞았다. 요즘엔 아이를 가축이나 머슴처럼 다루는 부모는 줄었다. 아이들은 ‘금쪽이’가 됐고, 남의 눈치보다 내 새끼가 중요한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한편으론 부모들의 훈육이 수행될 조건이 망가졌다. 맞벌이 부부가 보편화됐지만 육아와 가사는 여전히 엄마 책임에 쏠린 경우가 많다. 엄마는 원더우먼이 아니며 아빠는 밤늦게 퇴근한다. 부모가 아이를 꾸준히 데리고 다니며 공중장소에서의 행동 방식을 알려줘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적다.

그러나저러나 아이들은 산만하고 시끄러운 생명체다. 예나 지금은 물론 다음 세기에도 다른 존재가 될 수는 없다. 아이들보다 철이 들었고 아이들을 배려할 책임이 있는 어른들이 참아야 한다. 그 인내심이 유용되고 있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다.

고용난과 평생학습 시대에 인내심은 자기계발에 투입할 자원이고 그것을 위해 긁어모으기도 부족하다. 공중장소에 출몰하는 온갖 ‘벌레’(‘백팩충’, ‘흡연충’, ‘맘충’…)들은 내 인내심과 희박한 재충전의 시간을 도둑질해 가는 공공의 적이다. 아이들은 울고 떼쓰고 내달리며 나의 멘털과 주의력을 헝클어트린다. 아이들과 부모는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인내심은 나의 것이지만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내 입 냄새는 느끼지도 못하지만 남의 땀 냄새엔 구역질이 난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공중장소는 나뿐 아니라 '우리'의 것이고, 나도 그처럼 달리고 일하면 땀흘리는 인간이니까. 우리는 사고뭉치 일곱 살을 거쳐 스무 살, 서른 살이 되었다. 내 어머니도 날 그렇게 키웠으며 내 자식도 그렇게 자랄 것이다.

제주 한 카페 입구에 붙은 '노키즈존' 안내판 (사진=연합뉴스)
제주 한 카페 입구에 붙은 '노키즈존' 안내판 (사진=연합뉴스)

이런 역지사지가 발휘되지 않는 건 적지 않은 젊은 사람들에게 가족 재생산의 미래가 실종됐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저출생과 집값 상승, 비혼가구 증가 속에 결혼은 멀고 출산은 더욱 멀고 육아는 남의 일이다. 공동체가 고장 나니 공동체 의식도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개인들의 몫으로 남겨지면서, 아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적어도 이런 차원에서 한국은 예전이 더 사람 체온을 쬘 수 있는 사회였을지 모른다. 그때는 내 새끼에 비춰 남의 새끼를 보살피는 전근대적 온정주의라도 있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 자랐지만, 맞벌이 부모님이 집을 비운 방과후엔 우리집을 세 준 2층 주인집에 가서 놀기도 했다. 이런 '집단 보육'을 경험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 같다. 이 사회가 격변 속에 곧장 진보해 왔다면 전근대적 온정주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보편적 권리를 존중하는 근대적 인도주의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사회는 과거의 인습을 청산하지 못한 채 과거의 유산도 잃어버린 사막이 됐다. 노키즈존이 나타난 마지막 이유다.

노키즈존엔 오늘날 사회적 퇴행의 원인과 결과가 비껴 있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재촉하는 건 자기모순이다. 저출생의 벼랑 끝에 선 한국 사회가 파국을 피하려면 사회적 환경을 되돌아보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를 위한 공감대조차 확보되지 않은 채, 노키즈존은 당연한 관습처럼 굳어져 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하나둘 쌓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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