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내가 어렸을 때는”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꼰대라고 한다지만 정말 내가 어렸을 때는 대문 밖만 나가도 골목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집마다 형제, 자매는 기본이고 다섯 남매까지 있는 집도 있었다.

학교에 가면 50명을 꽉꽉 채우고도 넘쳐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받았다. 한 학년 15반으로 이루어진 학교는 쉬는 시간이 되면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시끌벅적, 우당탕, 와다다다, 바글바글이라는 말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복도엔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아이들로 정신없었다.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뛰지 않으면 이미 길게 늘어선 줄 끝에 서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언제나 그렇듯 호구조사가 이루어졌다. 아빠, 엄마의 학력 및 직업 조사를 비롯해 주택이 전세인지, 자가소유주택인지 조사하고, 식구수 조사까지 이루어졌다. 공문서로 이루어지는 조사 외에 조회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거수로 이루어지는 조사도 있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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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형제, 자매 합쳐 두 명인 사람, 세 명인 사람? 손 들지 않은 사람? 너희는 형제가 몇 명인데?” 내 친구는 조용히 말했다. “다섯 명이요.”

그 시절에도 다섯 명은 많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형제, 자매를 포함해 세 명이었다. 그 시절 텔레비전에서, 신문에서, 동네에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문구가 있었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문구가 쉴 새 없이 나왔다. 마치 아이를 많이 낳는 게 미개한 것처럼 인식되는 분위기였고, 형제, 자매가 많은 아이는 손을 들면 민망해했다.

그 와중에 잔뜩 어깨에 힘을 주면 손을 드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는 우쭐하며 말했다. “저는 독자인데요.” 모두 놀라고 부러운 눈으로 친구를 보았다. 독자는 한 반에 한 명도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희귀했다. 혼자 방을 쓰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이 모두 내 것이고, 옷도 언니나 형 것을 물려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얄밉게 구는 동생과 싸울 일도 없다는 뜻이었다. 이 친구야말로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문구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가족 형태였다. 지금은 너무나 평범한 가족 형태이지만 당시만 해도 획기적이고 앞서가는 가족 형태였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임신중절 수술이 합법일 때였다. 국가에서 직접 나서서 피임을 권장하고 지원하기도 했다. 산아제한 정책이 꾸준히 진행되던 시절로 우리나라가 유례 없는 인구감소 현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될 거라고 예견하지 못했다. 불과 사십 년 전의 일이다. 사십 년 만에 우린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 다산하는 가정의 지원 정책 폭을 넓히고 있다.

'인구절벽' 가속화...텅 빈 아파트 놀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구절벽' 가속화...텅 빈 아파트 놀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얼마 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섯이 쓴 ‘한국은 소멸하는가?(Is South Korea disappearing?)’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었다. 그는 한국의 인구가 ‘14세기 흑사병으로 인한 유럽의 인구 감소보다 더 많은 감소’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유하며 인구 감소의 놀라운 사례연구 대상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합계출산율은 ‘전 세계 꼴찌’다. 출생률 저하는 통계를 보지 않아도 실감할 수 있다. 동네에 나가보면 알 수 있다. 아기 보기 어렵다. 유아차 끄는 아기엄마를 보면 반갑고, 아기를 보면 신기하다.

출생률 저하는 아기를 낳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 왜 요즘 젊은이는 아기를 낳지 않을까. 며칠 전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20대, 30대의 남자와 여자가 나누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남자는 친구로 보이는 여자에게 말했다.

“결혼할 생각 없어. 이백만 원 벌어서 무슨 결혼을 해. 관리비가 이십만 원이야. 이것저것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데. 나 혼자 사는데도 이런데 무슨 결혼.”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회사에서 나와 팀으로 일하는 과장님은 외벌이래. 죽을 것 같대. 정말 죽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이 말을 듣고 있는데 왜 내가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외벌이라는 가장은 죽을 정도로 일을 한다는 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그 힘듦이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이 답답했고, 결혼할 생각 없다는 청년은 경제적 상황 때문에 결혼은 꿈꾸지 않다는 말 같아 가슴 아팠다.

초저출생으로 인한 한국 소멸 우려는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당장 나의 미래도 꿈꿀 수 없는데 누군가와 가정을 꾸리고,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 아닐까 싶다. 미래의 한국 소멸을 걱정하기엔 지금 당장 내 삶이 너무 버겁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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