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민의힘이 광역의원 정수 확대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선거제 개혁을 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광역의원 정수 확대는 경남지역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요구하는 사안으로 '공천권' 문제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국민의힘이 광역의원 정수 확대를 일종의 선결 조건으로 제시하면서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논의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정개특위는 지난 21~22일 두 차례에 걸쳐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를 논의했지만 국민의힘 반대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정개특위는 소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24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국회 행안위 회의실앞에서 민주당과 소수 정당 의원들이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피켓을 들고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정개특위 간사)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이번 6·1 지방선거에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합의된 의제가 아니라며 광역의원 선거구 획정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는 국회에 광역의원 선거 최다-최소 선거구 인구편차 비율을 4대 1에서 3대 1로 조정하라고 결정했다. 광역의원 선거 인구편차 기준이었던 4대 1은 투표가치 불평등이 지나치다는 판결이다.

하지만 광역의원 정수 확대 내용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시·도의원의 총 정수를 정할 때 자치구·시·군 수의 2배로 정하되 14% 범위 내에서 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광역의원 정수 조정 범위를 현행대로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국회 정개특위 간사인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8일 발의한 선거법 개정안은 시·도의원 정수를 조정할 수 있는 범위를 30%로 확대하고 인구 2만명 이상 시·도의원 정수는 최소 2명으로 하는 내용이다. 11일 조 의원은 이 같은 안을 폐기하고 조정 범위 30% 확대, 인구 3만명 이상 시·도의원 정수 최소 2명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앞서 헌재가 광역의원 선거구 인구편차 기준을 조정하라고 결정하면서 경남 일부 지역에서는 도의원 정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창녕군, 함안군, 고성군, 거창군 등은 도의원 수가 각 2명에서 1명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28일 조근제 함안군수, 한정우 창녕군수, 이기봉 고성부군수, 구인모 거창군수와 4개 군지역 도의원 8명 등 12명이 광역의원 선거구 유지를 위한 군수·도의원 공동 간담회를 가진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함안군)

지난해 창녕·함안·고성·거창 등 4개 지역 단체장과 도의원들은 헌재 판결 이후 선거구 축소를 막기 위한 공동대응에 나섰다. 경남지역 언론보도 등을 종합하면 지난해 8월 기준 경남 도내 주민등록 인구는 332만 2373명이다. 비례의원을 제외한 도의회 의석 52석을 기준으로 선거구 1인당 인구는 6만 3891명이다. 여기에 헌재가 정한 인구편차 3대 1을 적용하면 상한은 9만 5837명, 하한은 3만 1945명이다.

함안·창녕·고성·거창 등 4개 지역이 인구 하한선을 충족하지 못해 선거구가 각 1개씩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 함안1선거구 3만414명, 함안2선거구 3만2374명, 고성 1선거구 2만5762명, 고성 2선거구 2만4914명, 창녕 1선거구 3만779명, 창녕 2선거구 2만9323명, 거창 1선거구 3만2885명, 거창 2선거구 2만8357명 등이다.

조 의원 지역구는 밀양·의령·함안·창녕이다.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같은 당 김태호 의원의 지역구는 산청·함양·거창·합천, 정점식 의원은 통영·고성이다. 조 의원과 정 의원은 정개특위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 의원은 개정안에서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인구수 외에 지역의 어려운 현실과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헌재는 광역의원의 선거구 간 인구 편차를 3대 1로 조정하였으나 인구변화에만 따른 광역의원을 산정할 경우 농어촌지역은 광역의원이 감소되고, 도시지역의 광역의원은 늘어나게 되어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각 지역 당협위원장으로서 광역의원 공천권을 행사하는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법안인 셈이다. 조 의원 법안이 통과되면 30% 범위 내에서 선거구 인구 수 조정이 가능하고, 3만명 이상일 경우 도의원 수가 2명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경남지역 광역의원 감축 우려가 사라지게 된다.

이에 대해 민주당 정개특위 간사 김영배 의원은 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 "협상을 위해 구체적 사항은 공개하기 좀 그렇지만, 광역의원 지역구 획정과 관련해 국민의힘은 상당 부분 자당에 유리한 지역구 중심으로 정수를 늘리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간사(왼쪽)와 조해진 소위원장이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개특위 소위원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국민의힘은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기초의회 소선거구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의 기초의원 선거는 득표수에 따라 2~4명의 당선자를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다. 하지만 기초의원 선거구를 획정하는 각 지역 광역의회에서 3~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개는 방식으로 제3정당의 의회 진입을 차단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과 정의당은 기초의원 선거에서 3~5명을 선출하고 4인 이상 선거구는 2인으로 쪼갤 수 있다는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시민사회는 정개특위의 다당제 논의를 가로막는 주체로 국민의힘을 꼽고 있다. 지난 22일 204개 시민사회단체는 공동성명을 내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한다는 입장을 시민들 앞에서 천명했고,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독일식연동형비례제를 공약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이 기초의회 중대선거구 확대에 일체의 논의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24일 성명에서 "사전 합의된 사안이 아니라 논의조차 못하겠다는 국민의힘의 몽니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며 "자당의 기득권을 수호하기에 급급해온 국민의힘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선거제도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초의회의 불비례성을 국회가 개선해야 한다는 헌법적 요구에 국회가 응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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