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지난 보궐 선거 이후 회자된 키워드 하나는 ‘20대 남성’이다. 조사 결과 이들이 보수 정당 후보에게 표를 던진 비중은 압도적이었다. 20대 젊은 남성들이 상주하며 여론을 만드는 커뮤니티에서는 정부가 추진해 온 여성 지원 정책에 대한 불만이 투표로 나타난 거란 자평이 나왔다. 이 말에 동의하진 않는다. 지난 선거 결과에는 젠더 의제가 아니라 아파트 가격 상승과 코로나 백신 확보 실패 등 민생 의제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현 정부가 젠더 의제에 분명한 스탠스를 지니거나 적극적 개입을 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일부 젊은 남성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의견을 교류하고 여론 형성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이삼십 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강한 반감을 가진 건 사실인 것 같다. 가치중립적 차원에서, 여성주의(페미니즘)에 반대한다는 의미로서 이런 경향을 반여성주의라고 부를 수 있겠다. 물론 성차별에 관련된 주체는 특정 세대나 성별을 넘어서서 사회에 산재해 있겠지만, 현재 유행하고 있는 여성주의에 대해 특수한 적대의식을 가진 집단과 흐름을 명명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반여성주의는 십여 년 전 젊은 남성들을 호명하며 유행했던 ‘세대론’과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거리에서 열린 마지막 거리유세에서 지지 연설에 나선 한 청년의 손을 잡고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세대론은 00년대 후반 참여정부 시절 말기에 나타난 담론이다. 지난 시간 동안 롱런하며 사회의 키워드가 됐었다. 청년 고용난은 참여정부 시절 본격화됐고, 세대론은 젊은 세대가 처한 사회경제적 위기를 알리는 방식으로 전파되었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청년 문제는 무수하게 언급됐지만, 정치세력은 젊은 세대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이 담론을 주로 유통한 진보언론은 그들을 책임감 있는 주체로 호명하는 데 실패했다. 민주당과 진보언론은 청년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만큼 그들의 고통을 특권화하는 함정에 빠졌을지 모른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만든 질서의 피해자 혹은 기성세대가 누린 만큼 사회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피해자라 불렸고 연민 어린 시선으로 그려졌다. 세대는 세대 이외로 나누어지는 계급과 젠더 같은 사회적 정체성을 담을 수 있는 틀은 아니다. 세대론은 이런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유통되지 못했다. 세대론엔 젠더란 개념 틀이 빠져 있었고, 젊은 세대는 세대 내부의 보편자, 경제난으로 사회적 주체화에 실패할 위기에 처한 예비 가부장, 젊은 남성들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자기 몫의 권리만큼 자기 몫의 책임을 지는 주체로 호명되지 못했고, 그들의 처지는 사회적 계층 관계 속에 객관화되지 않았다.

2010년대 중반 유행한 헬조선 담론은 세대론의 변주된 버전이었다. 젊은 세대의 피해자 의식은 피학적 자기애에 이르렀고, 지옥을 부른 이들과 지옥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이분법적 사회관이 호응을 얻었다. 헬조선 담론이 해로운 점은 사회에 대한 모호하고 극단적인 명명으로 나를 둘러싼 모든 현실을 저주하는 편리한 수동성이었다. 내가 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지, 사회를 바꾸기 위한 나의 몫은 없는지 같은 주체로서의 의식은 방기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진보담론 시장의 테마는 세대론에서 여성주의로 교체되었다. 이 과정이 두 담론 사이 인정투쟁으로 펼쳐진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현재 젊은 남성들에게 세대론은 반여성주의와 유착한 상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여성주의와 투쟁하는 이들이 인용하는 이데올로기가 세대론이다. 여성이 약자라고 할 때 젊은 남자들의 항변이 무엇인가. "우리도 기성세대에 비하면 약자"라고 대꾸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자원 배분을 놓고 젠더와 세대라는 갈등 축이 경합을 벌이는 구도인데, 세대론과 헬조선 담론은 세대 내 젠더 차별을 기각하는 용도로 참조되고 있다. 남성들은 여성혐오는 기성세대의 죗값인데 대가는 우리가 치른다는 피해자 포지셔닝으로 무장하고, 가해자(잠재적 범죄자)로 호명되는 데 경기를 일으킨다.

물론 세대론이 유행한 10년 전에 20대였던 이들이 지금은 30대이고 10대였던 사람들이 20대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환경의 악화로 초혼 연령이 상승한 상황에서 여전히 가부장으로 자립하지 못한 30대들이 있다. 이들이 현재 20대와 함께 사회적 약자로서의 젊은 남성의 자의식을 공유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세대론은 지난 시간 동안 변주를 거쳐 현재 일이십 대 남성들에게 사회적 약자, 피해자로서의 자의식을 형성해 주는 틀거리가 돼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후·여성·노동·교육 등 19개 청년·학생단체가 모인 '청년·학생 시국선언 원탁회의'가 23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30일 청년 시국선언의 취지를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세대론은 더 이상 진보 진영의 담론이 아니다. 2010년대 이후의 사회 환경적 흐름, 정파적 입장 및 젠더 정치에 따른 진영 논리 등과 뒤섞여 여타 의제와 유착되며 젊은 남성들의 암묵적 시대정신이 되었다. 세대론의 전선은 부동산을 차지하고 아파트 가격 폭등의 수혜를 독점한 채 자신들의 성차별 업보를 후세대에게 전가하는 ‘586’ ‘남 페미’들에 대하여 그어져 있다. 그리고 이 세대론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축은 더 이상 사회경제적 의제라기보다 ‘군대’라는 이념이다. 여성들이 겪는 ‘독박 육아’ 등의 차별을 반박하며 남성들이야말로 청춘을 저당 잡혀 사회를 위해 ‘독박’을 쓰고 있다는 차별의 실존으로서 소환되는 것이다.

현재 세계적 극우화의 축이 인종 문제라면, 한국의 극우화는 젠더 이슈를 축으로 진행되는 면이 있다. 다시 말해, 전형적인 극우화의 경우 국가 내부에서 분배되는 자원을 훔쳐 가는 타자로서 타 인종 이주민이 지목된다면, 한국 사회의 경우 더 이상 가부장으로서의 자립에 쓰일 사회적 자원을 분배받지 못하는 남성들이 자신들의 적으로 페미니스트를 지목하는 것이다. '내 여자'가 되어 가부장적 주체화의 밑받침이 되어주지 않는 여성들을 증오하고, 페미니스트들이 의무는 빼먹고 권리만 쏙 챙겨 가는 '뷔페미니즘'으로 사회자원을 거덜 낸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이상의 경향이 전부 세대론에 내재한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적으로 담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비했느냐를 강조하고 싶다. 젊은 남성들을 떠나서, 사회 구성원 저마다의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깨우고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가 아닌,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안하는 주체의 기획이 담론장에 나타나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고된 처지라는 건 차고 넘치게 알고 있다. 그걸 타인에 대한 증오를 합리화하는 면죄부로 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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