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6가 출시 하루 만에 ‘버스폰’이 됐다.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애플은 이번에 최초로 3사에 동시 새로운 아이폰을 출시했다. 대규모 번호이동 수요가 생긴 만큼 이동통신 3사는 유통점과 대리점에 ‘리베이트’를 상향 조정해 이용자를 유치하려고 경쟁했고, 이 과정에서 이른바 ‘아식스 대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법안 논의 과정에서부터 실패를 예고한 단통법은 시행 한 달 만에 정직한 소비자를 ‘두 번 당한 호갱님’으로 만든 뒤 ‘자폭’ 위기에 놓였다.

유통점은 이동통신사에서 최대 75만 원(그 이상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에 달하는 리베이트를 받고, 이중 일부를 ‘불법’ 보조금으로 사용했다. 단말기유통법에 따르면, 유통점은 이통사가 공시한 고객지원금의 15%까지만 추가로 고객에게 지원할 수 있다. 유통점이 적자를 감수하고 리베이트 전부를 고객에게 건네지는 않았을 터, 상향분을 기준으로 리베이트 일부분을 고객에게 전달했다고 가정한다면 단통법 위반은 이동통신사가 유도한 것으로 봐야한다.

유통점의 ‘박리다매’ 마케팅을 문제 삼는 언론도 있지만, ‘기회는 이때’라며 암암리에 불법을 유도한 이동통신사가 이번 대란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겨레가 지적한 대로 이동통신사는 “정직한 소비자를 바보로” 만들었다. 투명하게 보조금을 공시해 차별을 없애면 ‘호갱님(호구고객)’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만든 단말기유통법은 이동통신사 연출한 이번 아이폰 대란을 통해 실패를 증명했다. 그리고 ‘대란’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예고했다.

▲ (사진=연합뉴스)

단말기유통법에 대한 비난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모든 언론이 훈수를 두고 있다. 실효성 없는 단말기유통법을 폐지하라는 주장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나온다. SK텔레콤 단독규제인 요금인가제 존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문제는 보수신문이 아이폰 대란에 스리슬쩍 끼어 ‘규제철폐’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신문은 ‘경쟁을 막는 반시장적 규제 탓에 이동통신시장이 비정상화됐다’며 경쟁을 저해하는 모든 규제를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4일자 사설에서 이동통신사들을 불법의 주체로 몰아세우며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그러나 “애초 정부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규제 법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며 “내려야 할 통신 요금은 내리지 않고 불법 보조금만 살아났으니 단통법은 존재 이유가 없어졌다”고 썼다. 특히 조선일보는 “통신사들이 요금 인하 경쟁을 벌이도록” 정부가 요금인가제와 보조금 규제를 아예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보조금 규제 탓에 한국의 아이폰 가격이 미국과 일본에 비해 비싸고, 단통법 시행 이후 얼어붙은 이동통신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통점은 벌금을 각오하고 리베이트를 불법 보조금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중앙일보는 “가격을 낮추는 것은 규제가 아니라 경쟁”이라며 단통법 폐지를 포함 관련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보조금 상한제를 없애고, 요금인가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와 똑같은 주장이다.

동아일보는 단통법을 ‘반시장적’이라고 비난하며 폐지론에 집중했다. 동아일보는 이번 아이폰 대란은 “잘못된 단통법을 만든 정부가 자초한 시장 왜곡이자 정책 실패”라며 “가격 경쟁을 제한한 단통법은 태어나선 안 될 반(反)시장적 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썼다. 동아일보는 단통법의 보조금 공시제도가 가격 담합을 유도하면서 대란은 예견됐고,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시장적 규제가 문제의 핵심이고, 이를 규제를 폐지하자는 이야기다.

▲ (사진=연합뉴스)

보수신문 말대로 정부는 이동통신시장 안정화에 실패했다. 단통법 최대 목적인 ‘호갱님 방지’에도 실패했다. 그런데 규제를 없애면 시장이 ‘경쟁상황’으로 바뀌고 통신요금이 내려갈까. 아니다. 단통법 시행 전 이동통신사는 가입자를 뺏어 LTE로 갈아 태우려 보조금을 ‘살포’했다. 이동통신사는 출혈경쟁을 했다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경쟁의 결과는 통신요금 인상과 독과점 강화였다. 게다가 정부는 하나뿐인 규제장치 요금인가제도 제대로 운용하지 않았다.

최근 아이폰 대란은 단통법 시행 전 일상적이었던 불법행위가 ‘일탈’로 나타났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삼성 갤럭시 시리즈가 나올 때도 ‘대란’은 있었다. 이번 아이폰 대란이 조금 다른 점은 타깃이 된 아이폰 이용자들의 충성도가 다른 브랜드 이용자보다 높다는 점이다. 이동통신사는 아이폰 이용자를 고가의 요금제로 끌어올리기 위해 출시에 맞춰 돈을 잠깐, 예전보다 조금 더 풀었을 뿐이다. 누군들 아이폰 이용자를 자기 가입자로 만들고 싶어할 것이다.

‘모든 장소에서 보조금은 같아야 한다’는 것은 반시장적인 규제가 분명하다. 그런데 이 규제를 풀고, 이동통신사가 경쟁을 한다고 해서 호갱님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 남은 규제수단인 요금인가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이동통신 3사의 시장지배력만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효과만 있다. 규제를 완전히 없애자는 주장은 11월1일 새벽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LTE 전환을 마무리 중인 사업자들은 일상적인 보조금 경쟁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 (사진=KT)

보조금 관련 규제를 완전히 없애자는 보수신문의 주장은 통신요금 인상론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아도 사업자들이 쥐락펴락하는 이동통신시장에서 정부가 아예 발을 빼면 담합경쟁으로 인한 통신요금 인상은 불을 보듯 빤하다. 지금 보수신문의 규제 완전 철폐 주장은 이동통신사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것밖에 안 된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통신요금 인하 요구에 사업자들이 내놓은 것이라곤 가입비 폐지, 기본료 천 원 인하 정도다. 의미 없는 혜택이다.

이동통신사는 이용자를 두 번이나 호갱으로 대우했다. 단통법 위반으로 정직한 소비자를 바보로 만들었고, 고가요금제로 올라타게 했다. 이동통신사는 30만 원 안팎의 지원금을 주고, 유통점과 대리점에 75만 원 리베이트를 주고도 3개월에 1조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담합, 폭리 사업자다. 호갱님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통신요금 원가자료를 공개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동통신사가 대필한 것 같은 언론의 규제철폐 나팔소리는 페이크(fake)다. 속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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