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 재편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거세지고 있다. 2014년 6월의 지방선거와 7월의 재보궐선거에서 진보진영이 거둔 초라한 성적표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과거 민주노동당을 함께 했던 정치세력에 대해 ‘분열’이 죄악이었으며 ‘통합’이 답이라는 해법으로 치닫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분당의 원인을 정확하지 않고 그것을 섣불리 오류라 치부하는 통합의 시도는 2011년에서 2012년 사이 통합진보당의 탄생과 분열이라는 화려한 불꽃놀이를 통해 그 위험성이 드러난 바 있다. 그럼에도 진보정당 재편 문제에 대한 어떤 진보언론 기사와 몇몇 진보정당 소속 정치인들의 접근은 ‘민주노동당의 영광의 2004년’과 ‘통합진보당의 화려했던 2012년’에만 집중할 뿐 이 지리멸렬의 원인을 분석하지는 않는 듯하다.
▲ 천호선 정의당 대표를 비롯한 진보진영 관계자들이 지난 5월 13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진보혁신과 지방선거 공동대응을 위한 진보진영 합동 기자회견'에서 의견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중의 망각'을 전제로 한 통합 논의?
최근 <오마이뉴스>를 통해 소개된 몇몇 기고문과 대담을 보면 그러한 우려가 더욱 커진다. 현실적으로 볼 때, 대중은 진보정당이 왜 분열하는지 또는 왜 통합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관심이 없다. 친북 논란 같은 게 불거지면 저런 또라이 같은 놈들과 어찌 같이 당을 하느냐고 갈라서라고 호통치다가, 다시 다음번 선거가 되면 자신이 또라이 같은 놈이라고 했던 이가 누군지는 까먹고 비슷비슷한 놈들인 거 같은데 왜 따로 나와 투표용지를 헷갈리게 하냐고 질타할 뿐이다.
노동시간이 과다하고 여가시간이 적은 우리 사회에서, 군소정치세력에 대한 이러한 대중의 제한적인 관심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상수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매번 대중의 요구를 따르는 게 능사가 아니란 말도 할 수 있다. 소위 대중의 요구란 걸 따르면서 그들의 관심을 끌려면 진보정당은 매 선거마다 통합했다 분열했다 하면 될 것이며 그러다가 분열과 통합 논의가 ‘진정성 없는 자해공갈단 쇼’로 낙인찍혀 신뢰를 잃고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퇴장당하는 결말을 맞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의 분열과 2012년의 분열, 두 번의 분열에 적어도 절반의 책임이 있는 세력들이 일말의 반성이나 성찰 없이 그 과정에 대한 자신들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려스럽다. 진보정당 운동이 분열을 통해 성과를 낼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명확해진 상황에서, 통합을 추구한다 한들 과거와는 다른 결말을 내지는 못한다는 우울한 결말을 예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은 심지어 함께 진보정당 운동을 했던 타 정파를 기만할 만한 논리구조도 갖추지 못했다. 그저 진보정치에 일말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과거 민주노동당을 지지한 전력이 있는 대중들만을 기만하려 할 뿐이다. 이는 더 이상 대중의 제한된 관심 영역에서도 망각될 리가 없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공판장에서 판사를 기만할 만한 논리도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녹취록은 날조’란 주장을 반복하며 현 정부와 국정원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는 일군의 대중을 기만하려는 모습과도 같다. 통합진보당의 주류와 정의당 일각을 점하는 NL운동권들의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이 이래서야 한국 사회의 진보정당 운동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한 회의만 높아질 뿐이다.
▲ 이정희 대표 등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이 5일 오전 서울역에서 추석 귀성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합진보당의 고난'에 대한 아전인수
먼저 지난 1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민주노동당 전 사무총장 김창현의 <통합진보당의 두 가지 '천형'>이란 기고문을 보자(링크). 글쓴이는 NL운동권의 유력 정파인 울산연합의 핵심인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김창현은 1)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경선부정의 주범이었다는 인식과 2)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통합진보당에 주어진 두 가지 천형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진보정당을 지지할 성향의 대중들을 향한 호소문으로 읽힌다. 하지만 사실관계나 가치판단에 대한 의도적인 왜곡이 있다. 2012년의 분당 상황에 대해 통합진보당 측은 “이석기, 김재연 측(경기동부)은 부정선거를 자행하지 않았다. 부정선거를 자행한 측은 오히려 문제제기를 한 참여계였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비난하며 사퇴를 촉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떠난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 등에 대한 약간의 성찰을 담고 있긴 하지만, 김창현의 주장 역시 그 틀에 서 있다.
그들은 법원이 이석기와 김재연 의원에 대해 비례대표 의원 경선부정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판결내린 것을 그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또한 참여계 일부 선본은 후보나 선본 관계자가 직접적으로 경선부정에 연루된 것이 밝혀지고 사법처리를 받은 것을 그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실제로 이 판단 근거에 설득되어,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은 당시에 그들을 악마화한 것에 대한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이 보여준 진실은 대부분의 후보를 위해 대리투표가 자행되었다는 것이었다. 고발된 이들 중에선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위해 표를 조직한 이들도 있었는데, 후보자나 선본의 연루 여부만을 두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비난했다”라는 서사를 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비례대표 경선으로 선출된 후보의 일괄 사퇴를 주문한 지도부의 결정은 특정 후보를 가해자로 지목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서 무시할 수 없는 부정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 선거로 인해 선출된 이들의 일괄사퇴를 주문했을 뿐이다. 가령 이 주문을 받아들여 선도적으로 사퇴를 결정한 윤금순 후보 역시 본인이 경선부정에 연루된 것은 아니었다. 김창현 역시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그야말로 적반하장의 현실, 가해자는 여전히 당당하고 피해자는 여전히 짓눌려 살아야 하는 이 억울한 현실이 진행형으로 있다”라고 말했지만, 한편으론 “당을 나간 이들이 모두 부정경선을 자행한 이들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사퇴를 거부한 상황은 그들이 통합진보당을 오래 갈 정당으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말해줄 뿐이다. 당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보다 제 정파가 획득한 이득을 고수하는데 급급했다는 정황을 보여줄 뿐이다. 이는 통합진보당이 2012년 당시 의석 수를 늘리기 위한 제 정파의 연합체의 수준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의 정당 안에서 정당의 신뢰보다 정파의 몫을 챙긴 이들이 상대방을 ‘분열종자’라고 낙인찍는 모습은 아전인수의 극치다. 당시 통합진보당의 상황을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었던 언론인들이 이들의 해명에 놀아나 ‘반성’을 하는 것이 진보정당 재편에 무슨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다.
▲ 오병윤 원내대표(가운데)를 비롯한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지난 8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7일째 동조단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석기'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이 전혀 없나?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김창현은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은 그 누가 뭐라 해도 희대의 공안탄압이요, 조작사건이다 (...) 이 문제를 바라보는 데 중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양비론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 수 있어도, 이 사건에 대한 진보진영의 관점은 단 하나여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법리적 문제에 대해선 그럴 수 있다. 그러니까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나 내란선동 혹은 국가보안법에 의해 유죄 선고를 받고, 통합진보당이 이를 논거로 정당 해산이 당하는 상황에 대해선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석기 녹취록’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이념 차원의 문제는 생긴다. 이러한 견해를 인정할 수 있는지, 이러한 견해를 가진 이들을 진보정당 운동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의 영역이다. 이 사건을 ‘조작’이라 말할 수는 있다. 내란음모로 볼 수 없는 사안에 내란음모의 죄를 뒤집어 씌웠다고 본다면 말이다. 그러나 국정원이 그 과정에서 제시한 녹취록이 가짜인지, 그게 진짜라면 우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법정 공방의 맥락을 따라간다면 ‘이석기 녹취록’이 총체적인 조작이라 봐야 할 어떠한 합리적인 근거도 없었다. 이석기 측은 녹취록의 발언이 조작이거나 농담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해명을 했다. 어디가 어떻게 조작이고 어디가 어떤 맥락에서 농담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녹취록 파일이 ‘원본’이 아니란 점에서 증거능력을 문제 삼았고 녹취록에 흔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오타의 목록을 길게 만들어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국정원이 제 조직의 존립을 위해 허둥지둥 부실수사를 했다는 것일 수는 있다. 이석기 의원과 그 회합의 참석자들의 당일 발언을 뒤집을 증거는 없었다. 그들은 녹취록에 드러난 생각에 대한 해명도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평화를 내세운 취지의 강연이었다는 무력한 해명만 되풀이했다. 통합진보당 측에서도 녹취록에 드러난 생각에 대한 해명은 없었다. 그러고도 대중이 자신들을 지금과는 달리 바라보길 원한단 말인가? 결국 남은 길은 판사나 공판을 열심히 방청한 이들은 믿지 않을 ‘녹취록은 조작’이란 주장을 무한반복하는 일 밖에 없었다.
▲ 정의당 천호선 대표를 비롯한 주요 당직자들이 5일 오전 서울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추석명절 귀성인사를 하고 있다.오른쪽부터 문정은 부대표, 천 대표, 정진후 원내수석부대표, 김제남 의원, 서기호 의원, 이정미 부대표, 권태홍 사무총장. (연합뉴스)
민주노동당 시절에 대한 그들의 평가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자기 정당화 논리만 반복하는 일과 함께 일을 도모해봤자 미래는 뻔하다. 지난 8월 31일 <오마이뉴스>에 두 편으로 나누어 게재된 [진보4당 핵심활동가 집담회] 기사를 보면 통합진보당 측은 2008년의 분당 상황에 대해서도 전혀 성찰이 없다. (1편, 2편 )
이 좌담에선 정태흥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위원장의 발언이 돋보였다. 정태흥은 민주노동당 시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서 변혁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민주노동당에 참여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 조직적으로 결정한 정당이고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의 정당이었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꿈을 민주노동당에 실었다. 그런 점에서 2008년 분당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선거는 매번 성공하는 게 아니고,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것인데 그럴 때마다 흔들리면 안 된다. 더 전진하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
말하자면, 분당은 2007년 대선의 실패로 인한 PD 운동권들의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훈계하는 식이다. 그러나 2007년 대선은 왜 1-2위 후보의 격차가 엄청났던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양강구도가 극심했던 2002년에 비해서도 퇴보한 결과를 낳았던가? 물론 2004년 원내진출 이후 민주노동당의 활동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이 필요할 일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볼 때는 일심회 사건으로 민주노동당이 친북 시비에 휘말리고, 당시 대중적인 인지나 호감이 높아진 노회찬이나 심상정이 아닌 '대권 삼수생' 권영길을 내세우고, 선거운동에서 ‘코리아 연방 공화국’과 같은 대중적으로도 무리가 있고 진보적인 관점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캠페인을 전개했기 때문이 아닌가? 이에 대해 정태흥은 이렇게 설명한다.
“어쨌든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선거 결과와 향후 전망에 대한 불투명성, 각 정파조직 간 역학관계 등이 결합하면서 분당 흐름이 만들어졌고, 대중들에게는 일심회 사건 등을 통해 '종북프레임'이 최초로 전면화하는 계기가 됐다. 진보진영 내에 큰 상처가 남았다. 그때 확산된 종북프레임을 지금 박근혜 정부가 활용하고 있다.”
즉 일심회 사건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두고 PD운동권들이 분통을 터트린 것이 문제라는 시선이다. 종북논란에 대해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보수정부인) 박근혜 정부가 활용하면 그 문제제기 자체가 잘못이란 식이다.
2007년 대선 당시 NL정파가 권영길 후보를 밀었던 상황에 대해 정태흥은 이렇게 설명한다.
“권영길 대표가 세 번째 출마하는 건 당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필요한 일이었다. 노회찬, 심상정의 경선 출마는 권영길 이후를 위해 필요하다고 봤다. NL들이 조직적으로 권영길 후보를 지지한 것이 탈당 원인이라고 보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심상정, 노회찬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권영길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이 정파 지도부의 힘 때문만은 아니다. 그걸 원하는 당내 정서가 있었다.”
▲ 정의당 의원들이 28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을 9일째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그들의 정치적 견해가 실행될 때
그러나 이는 당시 상황을 모르는 이를 호도하기 위한 발언일 뿐이다. 이에 대해 김종철 노동당 동작당원협의회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솔직히 그 때 NL당원들이 권영길 후보를 지지해서 황당했다. 내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역위에서 강연 요청할 때 노회찬 후보를 가장 많이 불렀고 그 다음이 심상정 후보, 그 다음이 권영길 후보였다. 당원들은 노회찬, 심상정이 대중적으로 호소력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NL지도부가 이런 분위기를 (조직적 지지방침을 통해) 뒤집은 것이다. 당내 NL세력이 노회찬, 심상정을 견제하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평등파 성향인) 노회찬, 심상정이 크는 걸 못 보겠다는...”
그러자 정태흥은 이렇게 답한다. “당시 자주파는 권영길 후보를 통해 그동안의 정치적 견해를 한번 제대로 실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물론 권영길 후보가 나중에는 우리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았다.(웃음)”
그렇다면 그 ‘그동안의 정치적 견해’는 무엇인가? 우리가 수구세력을 따라 그 정치적 견해가 ‘적화통일’이라 매도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속시원하게 얘기하지는 않지만,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그것이 ‘코리아연방제’ 비슷한 것이란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2007년 당시 권영길 후보조차 선거 캠페인이 전개되면서 대중의 반감을 느꼈는지 코리아연방제를 중점적으로 내세우는 것을 반대했다. "나중에는 우리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았다"는 정태흥의 설명은 그 상황에 대한 회상으로 보인다.
또 정태흥은 “2012년 분당 사태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배타적 지지방침을 철회한 게 가장 뼈아프다. 진보정당은 노동자 민중 속에 뿌리 내리고 염원을 실현하는 것이 사명이다. 민주노총이 배타적 지지 방침을 철회하면서 진보정치에 대한 민주노총의 영향력이 줄었고, 민주노총도 조합원들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의미를 복원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설명한다. 그 와중에서도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을 유지했어야 했다는 얘기로 읽힌다. 자신들의 오류는 온데간데 없고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은 것이 잘못된 길이라는 ‘땡깡’만 있다.
정태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장 바라는 것은 통합진보당 창당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다. 통합 당시의 가치나 내용, 강령을 바탕으로 다시 모두 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렵다면 민주노동당까지만이라도 같이 모이면 좋지 않겠나? 지금이 2008년보다 더 안 좋은 상황 아닌가? 다 합쳐 10%정도 나왔지만 독자적으로 현역 구청장 한명, 현역의원 1명 만들어 내기 어려운 조건이다. 새정치연합은 전망이 없고 무능하다. 국민에게는 여전히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갈증이 있다.”
그러나 김창현과 정태흥의 주장과 발언들을 통해 그들이 함께 진보정당 운동을 하기를 요구하는 ‘동지’들에게 원하는게 무엇인지 차분하게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는 진보정당 운동을 벌인 이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발언을 통해 추측하건데 여전히 개선의지가 없는 그들의 특징이다.
▲ 이용길 노동당 대표(왼쪽)와 이갑용 울산시장 후보는 지난 5월 29일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새정치민주연합과 단일화한 정의당 조승수 후보는 진보정치를 포기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연합뉴스)
여전히 변하지 않은 그들의 습속
첫째, 그들(통합진보당 주류, 혹은 NL 운동권, 혹은 자주파)에겐 진보정당 강령으론 설명할 수 없는 별도의 정치적 지향이 있다. 하지만 아마도 국가보안법 때문에 이것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곤란하다. 공안검사가 아닌 같은 정당을 하는 동지라도 이 부분에 대해 물어보면 ‘사상의 자유의 탄압자’가 된다. 이 지향은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상승하거나 2007년 대선처럼 진보정당이 선전할 수 있는 판이 펼쳐지면 실행되게 된다. 동지라면 이와 같은 상황들을 이해해야 한다.
둘째, 이들의 정치적 지향이 정당에서 실행되어 대중적으로 고립되고 선거가 어려워지더라도, 이는 이들이 내세운 정치적 지향의 문제가 아니다. 선거는 어려울 때도 있는 것이므로 동지들은 여전히 그들을 믿고 따라야 한다. 선거가 잘 안 되는 이유는 그들의 정치적 지향 때문이 아니라, 이에 반대하는 동지들이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그들의 일부가 간첩단 사건이나 내란음모 사건에 휘말리더라도, 동지들은 이를 절대적으로 옹호해야 한다. 사법적 처벌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정치적으로도 비판해서는 안 된다. 검찰이 밝혀낸 사안이 진실인지를 물어서는 안 되며 그것이 조작이라는 그들의 견해에 무조건 동참해야 한다. 이를 어기는 이들은 보수정권의 ‘종북몰이’에 동참하는 이가 된다.
노동당 김종철 동작당협위원장은 분당에 대해 “어떤 시점의 행위를 잘했다고 평가하려면 이후가 잘 되어야 하는데...(웃음) 과거의 역사는 이후 진행과정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물론 정치적 선택의 평가가 결과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라면 ‘분당의 결과’ 뿐 아니라 ‘당을 유지했을 때의 결과’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분당을 현재의 지리멸렬의 '원인'으로 보는 이들에 맞서, 분당이란 결과를 만들어낸 '원인'을 탐색해야 한다.
▲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에 새정치민주연합-정의당 단일 후보로 나선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지난 7월 27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달마사에서 노동당 김종철 후보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분당'을 '고난의 원인'이 아니라 '난맥의 결과'로 봐야 한다
그들의 발언에선 여전히 ‘민주노동당 분열의 원인’이 그대로 드러난다. 투명하게 드러낸다면 당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관에서 거리를 가진 이들이, 현상적으로는 함께 주류 정치세력을 비판하는 진보정당에 합류한다. 당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당세가 확장되면 그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실행하기 위해 당내 패권을 추구한다. 애초부터 독자정당을 추구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 역시 자신들의 지향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는 아는 것 같은데도, 패권 추구의 결과가 당세의 약화로 이어져도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다. 간첩단 사건에 휘말리거나 대북문제 발언에 관한 구설수에 오르더라도 당은 그들을 절대적으로 옹호하고 보위해야 한다. 또한 그들이 무슨 일에 휘말린들 민주노총은 그들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고수하는 것이 올바른 방침이다.
‘민주노동당’이 분당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정당의 모습으로 ‘2004년 민주노동당’이나 ‘2012년 통합진보당’을 뛰어넘는 튼튼한 제3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요원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닥치고 통합’이 아니라 ‘분열의 원인을 탐색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분당'을 현재의 '고난의 원인'이 아닌 진보정당 운동의 '난맥의 결과'로 바라 봐야 한다. 가령 김종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 점에서 대북관의 문제는 여전하다. 사회적으로 볼 때, 통합진보당은 북한에 대해 일방적인 옹호자 위치에 있다. 최근 내란선동 사건도 그런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북에 대해 '비판적인 포용자'의 위치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당 당원들을 정서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설득하기 어렵다. 또 정의당은 전체 정당 중에서 가장 새정치연합에 가깝다고 평가받고 있다. 진보정당으로서의 독자성을 오래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한데, 만일 그렇다면 진보재편에 대한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
‘분열의 원인을 탐색하는 작업’에 있어 그의 제안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구성원의 태도는 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에도 현저하게 못 미친다. 이를 지적하지 않고서 하는 ‘통합’ 논의는 공허하다. 막연하게 통합진보당까지 끌어들이는 통합논의나, 그들이 대중적으로 고립되어 있기에 은근슬쩍 그들을 제외하고 논의되는 통합논의나 이런 얘기들을 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진보정당의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통합의 명분이 된다. 그러나 오직 그것만이 통합의 명분이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우리는 모두 보아왔다. 진보정당 재편의 대전제가 되어야 할 성찰과 반성이 겉치레와 시늉을 넘어서야 할 이유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