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당국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물 중 하나인 지난 5월 ‘RO’ 모임 녹취록을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이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녹취록 전문까지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지웠다.

공정함을 기하기 위해 말하자면 국가정보원이 ‘국정원 개혁’ 논의를 막기 위해 ‘카드’를 꺼내든 것은 분명 비판해야 한다. 또 수사가 들어간 사안에 대한 피의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표되는 세태는 당연히 비판할 지점이 있다. 이 사안이 과연 형법의 내란예비음모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리적 다툼의 여지도 있을 것이고, 국가보안법이란 악법이 동원된 것도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런 모든 논점이 덮을 수 없는 게 있다. 이 민망한 녹취록이 진보운동의 민낯과 속살을 적나라하게 까발렸다는 것이다. 녹취록의 내용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무엇보다 진보운동의 활동가들이 증언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소위 NL 운동권들이 술자리에서 종종 반진반농으로 하던 얘기들을 지극히 정치적인 장소에서 진지하게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RO’는 특정한 단체라기보다는 ‘비선’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 자리는 경기동부연합의 비선들의 모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오병윤 의원실에서 나와 맞은편 자신의 사무실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오히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국정원을 비판할 수 있는 지점도 있다. 1980년대부터 한결같았던 주체사상파 운동권이 남한 사회에 존재해왔고, 정말로 그들이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여겼다면 국보법이 아닌 형법으로라도 그들을 처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국정원이 그렇게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면 진보운동에서 NL의 지분이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정원은 그들이 진보운동을 장악하고 야권연대에 섞여 들어가 원내에 진출하기까지 수수방관했다. 이는 그들이 주장하는 안보논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직무유기일 것이고, 그들이 주사파에게 위협을 느끼기보다는 주사파가 야권에 섞여서 언제든지 야권을 ‘종북’으로 매도할 수 있는 상황을 즐긴다는 사실에 대한 방증일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진보운동의 반성이 중요하다. 진보운동이, 대중정치의 영역으로 나오면서 사이비종교 신도들로나 보일 이들과 결연하게 결별하지 않고, 당장의 성과에 매몰되어 그들과 함께 하면서, 결과적으로 사정을 잘 모르던 민주당과 야권 전체에 누를 끼치게 되었다. 민주당에 주사파 출신의 정치인은 있겠으나, 아직도 저 사상을 고수하는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민주당 역시 ‘전쟁이 일어날 시 대한민국을 타격하고 북한을 편들’ 친북·종북 세력의 이미지를 뒤집어썼으니 양심이 있다면 민주당에게 미안해 해야 할 일이다.

한국 사회의 진보운동이 주사파로만 이루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PD 운동권이라 불리던, 주사파는 물론 민족주의와도 상관이 없는 거대한 분파가 있다. 또한 NL 운동권과 민족주의에 우호적인 수많은 진보운동의 지지자들이 모두 ‘이석기 녹취록’이 보여주는 수준의 주사파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진보운동이 명백한 주사파들을 용인하거나 무시했고 그 결과 진보운동 영역 전체의 건전함을 신뢰한 민주당 등 자유주의 분파들이 주사파들과 잠시나마 연합하도록 하여 그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것이 현실이다.

NL 운동권이나 주체사상의 이념은 그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상은 감상적 민족주의에 어필하는 측면이 있어 대중성을 발휘해왔다. 한국 사회가 워낙 분단으로 인한 ‘좌절된 민족주의’의 정서가 강한 곳이었던 탓이다. 이는 기독교 배경을 가진 이를 통일교도로 개종시키기가 쉽지 불교도로 개종시키기는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NL 운동권은 활동가들의 품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대중성을 더욱 강화해왔다.

소위 PD 운동권들은 자신들도 한때 사회주의 혁명을 꿈꿨거나 지금도 꿈꾸는 중이기 때문에 국가와 공권력을 우습게 여기고 전복하려 하는 NL 운동권들의 생각에 큰 위화감이 없었고 다만 노선의 차이만 존재한다고 여겼다. 애초에 NL과 PD란 구별 자체가 그것의 분화 이전 NLPDR이라는 거대한 혁명노선의 일부이기도 했다.

그러나 PD들 중 상당수가 혁명 노선을 버리고 민주주의 체제 내부에서 사회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대중정당 노선을 선택한 이후에도 여전히 NL과 함께한 것은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이었으며 거대한 전략적 실수이자 대중에 대한 사기였음이 분명하다. 북한이 지금 정도로 망가지지 않고 남한도 엄혹한 독재정권이던 1980년대에 NL 운동이 하나의 선택지일 수 있음은 인정하더라도, 1990년대 이후 대중정당 노선을 추구하면서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선 확인해야 할 것이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진보운동이 말라죽어가던 1990년대 중반의 시기 살아남기 위해 ‘대중운동을 하면 저들도 변할 것이다’란 안이한 생각으로 동거를 선택한 이들의 결단은 NL 운동권을 상식에 부합하는 집단으로 변화시키지 못했다. 외려 그들이 합법적 진보정당 운동을 통해 원내에 진출하고 다른 일을 꾀하도록 하는 식의 전략의 수정을 하여 원내 국회의원을 필두로 유사시 반국가단체 내지는 적성국가를 돕는 일을 계획하도록 방조했다. 2008년 분당 즈음 그들의 정체를 알았을 PD 운동권 정치인들이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통합진보당으로 흘러들어간 것 역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한때 NL 운동권에 몸담았으나 주체사상파는 아닌 수많은 이들이 있고 이들도 진보운동의 자산이다. 이들의 생각은 '이석기 녹취록'이 보여준 80년대의 과격한 유산과는 결별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등에서 당직선거를 하면 이들은 PD가 아닌 NL을 지지하면서 주사파들의 자원이 되었던 것이 현실이다. 이들조차 없으면 지역에서 활동하기 힘들다고 보는 PD계열 활동가들이 할 소리를 제대로 못한다는 것도 문제다. 이번 사건만 해도 상황을 뻔히 아는 운동진영 사람들이 구체적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도 전에 ‘공안탄압’ 운운했어야만 했는지 의심스럽다.

물론 자기성찰을 하지 않아도 진보운동은 ‘과오’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향후 오랜 시간 동안 진보운동은 ‘북한체제 부역자’의 멍에를 벗어던지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반성과 성찰이 없이는 현재는 물론 미래도 꿈꿀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국정원과 경기동부연합을 관성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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