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사안을 확실히 하자. 법무부가 내세우고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안의 내용은 오늘(6일)자 언론보도들을 참조해서 보더라도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었다. 또 법무부가 근거 중 하나로 내세운 이석기 의원 등 ‘RO’에 대한 내란음모죄 적용도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큰 틀에서 볼 때 박근혜 정부가 정국이 난국에 봉착할 때마다 ‘NLL 대화록’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활용한 ‘종북몰이’로 대처하고 있다는 판단도 옳다. 더구나 법무부의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한국 사회에선 어떤 종류의 진보/좌파 정당이 생겨나더라도 그 당헌과 강령을 손쉽게 난도질하여 ‘종북’이라 비난할 수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통합진보당이 이런 식으로 해산되는 것을 막아야 하며, 특히 법무부가 통진당을 비판한 논리들을 해체해야 할 것이다.
▲ 통합진보당 의원단이 6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사수결의대회에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에 항의하며 삭발식을 하고 있다. 이상규(왼쪽부터), 김미희, 오병윤, 김재연, 김선동 의원. (연합뉴스)
하지만 다른 몇 가지 사안도 분명히 하자. 국가정보원과 <한국일보> 등에 의해 공개된 ‘RO’의 녹취록의 내용은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통합진보당 측은 이에 대해 ‘조작’이라고도 주장했고 ‘농담’이라고도 변명했으나 어떤 부분의 맥락을 조작하여 농담을 심각한 내용으로 변형시켰는지는 전혀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긴 녹취록의 내용을 본다면 이렇게 중심적인 메시지가 확실한 문건을 과연 국정원이 조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공안탄압이 문제라 하더라도...
이에 대해선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 대책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대책위의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은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 역시 한 토론회에서 “통진당 사람들은 ‘조작’이란 말을 단체 이름에 넣고 싶어 했지만 나는 반대했다. 이번 사건이 내란음모정치공작이며 공안탄압이라는 것은 이 문건이 조작되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는 얘기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럼에도 통진당 측은 제대로 된 해명 없이 시민사회 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현수막에다 그 사건이 국정원의 ‘조작’이었다고 쓰고 있다.
녹취록에 제시된 사상이 어떤 수준의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해봐야 한다. 이는 기존의 북한 추종적 생각이라 비판받았던 북한 3대세습이나 북한 핵개발에 대한 온정적인 발언을 넘어선다. 북한이 우리 민족이므로 내재적으로 이해해보자는 수준의 얘기가 아니다.
혹자는 NL운동권은 전쟁이 날 경우 남한 정부에 의해 6.25 전쟁 당시 예비검속과 같은 학살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녹취록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해당 녹취록의 내용은 예비검속을 대비해 피신하자는 것도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한을 타격하여 북한의 승리에 기여해야 한다는 결의다.
따라서 녹취록 문건에 결정적인 조작이 없다면, 그 녹취록 문건만으로 내란음모죄가 성립하지는 않더라도, ‘RO’라는 집단은 만일 전쟁 위기가 계속 심화되어 그 다음 회합을 했을 경우 정말로 내란음모죄가 성립할 모의를 했을 집단이란 정치적 판단이 대단히 상식적이다.
이 경우 그런 사상을 가진 집단이 모든 사상을 숨기고 정당에 숨어들어 유권자들에게 표를 요구한 행위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또한 그러던 이들이 사실상 자신들끼리만 남게 되었을 때, 그 당의 이름이 어찌되었든 그런 사상과 행태를 가진 이들을 ‘진보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에 따른 질문도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남한 사회의 진보정당 운동이 지금까지 어그러진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런 이들의 행태 때문이기도 했다.
▲ 6일자 한겨레 2면 기사
대체로 진보진영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 보다는 공안탄압을 비판하면서 ‘RO’ 회합원, 혹은 경기동부연합과 같은 이들에 대해서도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나는 ‘RO’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이라고 덧붙이는 문제에 있어서도 “내 소신이긴 하나 공안당국의 탄압에 의한 자기검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진보진영의 대응이 미숙한 부분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만일 ‘RO’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고, 임박한 전쟁에서 더 구체적으로 남한의 역량을 타격할 모의를 했다면 그것은 구체적인 행위를 의도한 것으로 더 이상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평균적인 시민의 직관은 ‘RO’ 녹취록조차도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직관에 대항하며 영역을 넓히기 위해선 ‘표현의 자유’의 범위의 한계를 정확하게 제시해야지, 무턱대고 삼라만상 모든 것을 ‘표현의 자유’로 옹호할 수 있는 것처럼 처신하다간 “간첩질도 ‘표현의 자유’냐”라는 힐난만 듣게 될 뿐이다.
또 사람들이 ‘RO’ 등의 사상에 대한 진보진영 사람들의 판단을 궁금해 하는 것을 단지 '지배계급의 헤게모니에 넘어간 이들의 사상검증 시도'로만 바라보는 것도 부적절하다. 사람들은 남한 사회의 진보운동이란 것이 과연 ’종북주의자‘들로만 구성된 것인지, 그렇지는 않은 것인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종북주의자‘가 아닌 진보주의자들은 ’종북주의자‘로 여겨지는 이들의 황당한 생각에 얼마나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는 것일 수 있다.
‘사상의 자유’란 ‘내가 인정하지 않는 사상을 용인하는 태도’를 함축한다. ‘지배계급이 싫어하는 사상을 무조건 내 것으로 끌어안는 태도’를 강권하는 것이 아니다. 공안당국의 탄압을 받기 때문에 ‘RO’와 좌파가 친하게 지내야 한다면, 이는 남한 당국에 저항하면 북한이 좋아하기 때문에 너희들은 모두 종북세력이라는 공안당국의 논리의 물구나무서기에 다름 아니다.
오늘(6일) <중앙일보>에서 권석천 논설위원은 <생각까지 해산시킬 수 없다>는 제목의 칼럼으로 “하지만 그들을 해산시키더라도 그들의 생각까지 해산시킬 수는 없다. 그들의 생각은 정부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평가되고 걸러져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옳은 얘기다.
▲ 6일자 중앙일보 30면 권석천 논설위원의 기명칼럼
문제는, 지금까지는 진보진영에서도 그러한 ‘사상의 자유 시장’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있고, 그들에겐 ‘사상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사상을 평가할 수 없다는 식의 ‘성역’이 존재했다. 그런데 그렇게 그들의 사상을 평가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은 ‘동지’가 되었고, 스스로 ‘진보’를 참칭하면 ‘진보’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대중에 공개되면 국보법 적용을 받게 되기 때문에 ‘사상의 자유 시장’을 작동시키지 않는 것이라 말했으면서도, 희한하게도 그들의 사상이 대중에 공개되고 국보법 적용을 받게 된 다음에도 그 사상에 대해선 평가하지 않고 기존의 태도를 고수했다.
제한된 '사상의 자유 시장'이라도 작동시켜야 한다
사적 개인이 자신의 사상을 실토하란 강요를 받아선 안 된다는 것은 인권문제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주의·주장을 말하면서 대중에게 지지를 요하는 이들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설명해야 할 책임을 지닌다. 기만도 권리는 될 수 있겠으나, 떳떳하지는 않다. 특히 생각이 다른 이의 입장으로 그들의 '사상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겠다면 더욱 정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어떤 영역에서 그들에 대한 탄압을 반대하는지, 그리고 어떤 지점에서 그들과 내가 다른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대중에겐 ’RO’와 좌파운동이 한통속으로 비칠 따름이다.
오늘(6일)자 <한겨레> 1면은 <‘강제 해산’ 내몰린 진보정당>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과연 ‘강제 해산’에 내몰린, 그러나 그런 처지에 처해선 안 되는 그들은 ‘진보정당’이라고 호명되는 것이 옳은가. 3면 기사 제목은 <정부, 재판중 RO사건 근거 “진보당 전체가 종북화 확대”>란 제목을 달고 있다. 정부가 그런 일을 한 건 맞지만 그런 책동이 잘 먹히게 된 빌미를 통진당과 진보담론이 제공한 적은 없었는가.
▲ 6일자 한겨레 1면 기사
던져야 할 질문이 던져지지 않고, 공안당국의 탄압에 통진당 의원들이 삭발을 하면, 정치적인 책임은 증발한다. 그리되면 내년이라도 내후년이라도 공안당국은 또 다시 같은 선택으로 대중들에게 재미를 볼 수 있겠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 시장’은 국가보안법이나 공안탄압이 있더라도 제한된 영역에서라도 작동해야만 한다. 그러한 자정작용 없이 과거 운동인맥의 관성으로 추상적인 가치를 내세우거나 긴급 현안에 대한 정부 정책이나 비판하면서 무슨 수로 진보의 비전을 제시하며 무슨 수로 사회변혁의 방법론을 제시하려는가. 계속해서 그런 상태를 고수한다면 ‘진보는 존재하지 않으며 종북에게 잡아먹혔다’라는 보수논객들의 조소가 어느 정도는 사실임을 자인하는 길이 아닐까.
박근혜 정부의 ‘사악함’은 그들이 별반 위험하지도 않는 ‘꽃놀이패’를 들고 진보의 아킬레스건을 잡아 무력화시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진보는 그 약점을 극복하기보다는, 저들의 모든 행위를 비난하고 희생자들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승리하는 길이라고 정신승리 중일뿐인 것 같다.
▲ 6일자 한겨레 3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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