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1일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와 새누리당 원내대표단이 세 번째로 만나 세월호특별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한다. 여전히 입장 차이는 분명하다. 가족대책위는 31일 기자회견에서도 정부와 여당, 청와대가 조사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이곳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하며, 진상규명 기간을 180일을 초과해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양보할 것이 없다”며 이를 정치적 흥정 대상으로 몰고 있다.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29일 기자들과 만나 “합의안을 새로 만들었다든지 양보안을 만들었다든지 하는 상황은 전혀 없고, 그럴 의사도 없다”고 못 박았다. 새누리당의 입장은 “유가족 설득”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유가족 동의 없이 두 차례나 ‘밀실합의’를 한 뒤 어그러진 세월호특별법 논의는 여전히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가족들과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의 입장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여전히 “세월호특별법은 여야가 합의해서 처리할 문제로 대통령이 나설 일은 아니다”(8.20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는 입장이다. 그런데 애초 정부는 지난 5월부터 정부입법 또는 의원입법으로 세월호특별법 논의를 진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특별법 논의를 ‘국회’로 넘긴 것은 청와대 작품이고, 지금 청와대와 정부의 ‘수수방관’은 7·30 재보선 이후 취한 ‘정략적 판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이 입수하고 한겨레가 지난 30일자 기사 <“여야가 할 일”이라던 세월호법, 애초 정부가 입법 추진했다>에 보도한 지난 5월25일 국무총리실 주재 ‘세월호 수습 관계차관회의 자료’를 보면, 해양수산부는 “당초 보상 관련 특별법으로 정부입법 추진 예정이었으나(5.19 대통령 담화) 정부내 추가 논의를 위해 진상조사를 포함해 의원입법으로 추진하기로 결정(5.22)했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는 6월8일 회의에서도 “대통령 대국민 담화(5.19) 이후 ‘선보상, 후구상’을 담은 피해보상과 진상조사 통합법안을 마련해 의원입법 발의를 요청(5.30)했다”고 밝혔다.

▲한겨레 2014년 8월30일자 7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실제 6월20일 새누리당 의원들은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7월2일에는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조사 등에 관한 특별법안’도 냈다. 한겨레는 “정부가 마련한 특별법안의 주요 내용은 세월호 사고 진상조사위원회와 보상 심의·결정을 추진할 보상심의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 근거를 마련하는 것 등이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국민 담화에서 특검과 진상조사위 구성을 통한 진상규명을 포함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제안한 바 있다.

결국 지금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의 침묵은 ‘7·30 재보선 이후 정략적 판단’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여론 악화로 궁지에 몰렸던 ‘눈물의 담화’ 당시 이처럼 서둘러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려고 했던 정부와 청와대가 이후 세월호 특별법 교착 국면에선 ‘법안 마련은 국회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처음부터 세월호 특별법은 청와대와는 관련 없는 사안인 것처럼 뒷짐을 지고 있어, 세월호 정국 정세변화에 따라 급변하는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은 31일 기자회견에서 “의원입법은 통상 정부가 신속히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여당이란 '우회로'를 통해 법안을 발의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서둘렀던 정부가 7·30 재보선을 지나며 입장을 선회한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며 “여론악화로 궁지에 몰렸던 때 ‘눈물의 담화’와 ‘특별법 제정’으로 위기를 탈출하려 했고 7·30이 지나자 여론추이를 보면서 슬그머니 특별법 제정을 외면하며 우리 가족과 국민들을 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정부여당은) 야당과 가족들에게 정치적 접근을 하지 말라 강조하더니 청와대야말로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당리당략만을 고집하고 있는 게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기존의 여야 합의안이 최대한 양보한 부분’이라는 말만 되풀이 할 것이라면 더 이상 면담을 지속할 생각이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철저한 진상 규명과 안전한 사회 건설을 바라는 가족과 국민들의 마음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여러 차례 밝혔듯이, 우리에게 최대한의 양보, 최선의 합의가 무엇인지 설득하려 들지 말라”고 말했다.

▲ 31일 청와대 앞 청운동주민센터 농성장에서 열린 가족대책위 기자회견. (사진=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세월호 참사 137일째다. 정치권에서는 추석 전 특별법 논의를 끝낼 것이라는 시간이 많다. 그러나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할 지 여부가 핵심쟁점이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유가족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한 논의는 제자리걸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족대책위는 시민들에게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다들 아시겠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게 하느냐’”이라며 “저희 가족들은 지금까지 수사권과 기소권을 진상조사위원회에 속한 상임위원 중 한 명에게 검사의 지위와 권한을 부여하여 행사하도록 하는 방안을 주장하여 왔다”고 설명했다.

가족대책위는 “정부와 여당 그리고 청와대 등 정치권도 조사나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정치권 특히 정부와 여당 그리고 청와대의 영향을 덜 받는 방식을 통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할 사람을 임명할 필요가 있는데 현행 상설특검법에 따르면 대통령의 영향을 벗어나기 어렵다”며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족대책위는 수사권 있는 진상조사위는 특검보다 진상규명 기간도 길고, 진상조사위가 독립적으로 수사를 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세월호 가족들은 지난 7월12일 국회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광화문농성은 같은 달 14일 시작했다. 46일 동안 단식을 벌이던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지난 28일 보식을 시작했다. 청와대 앞 청운동주민센터 노숙농성 열흘째다. 시민들의 서명은 400만 명이 넘었고, 가족들은 9월1일 백만 명의 서명지를 청와대로 전달할 계획이다. 동조단식 신청자도 2만3천 명이 넘었다. 가족대책위는 “저희 가족들이 그리고 국민들이 왜 이렇게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헤아려주셨으면 한다”며 새누리당의 ‘결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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