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면 1분이나 걸릴까. 세월호 가족들이 여드레째 먹고 자는 곳과 박근혜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는 그만큼 가깝다. 박 대통령은 진도 팽목항에 찾아온 뒤 다시 가족들을 만나지 않았다. 언제든 만나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가족들과 생존학생들, 46일 동안 단식을 벌인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면담 요청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가족대책위와 새누리당 원내대표단은 두 차례 만났지만 새누리당은 계속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진상규명 문제를 정치적 협상과 흥정으로 만들고 있다. 세월호 가족에게는 시민들 여론만이 유일한 힘이다.

29일 단원고 2학년8반 고 건호군 어머니 김희진씨는 서울 청운동주민센터 앞 농성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8일째 (청와대 앞에서) 이렇게 있다. 왜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여전히 모르겠다”며 “매일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떻게 대답이 올까’ 기대하고 맞이하지만 저녁이 되면 예전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50cm, 35cm 되는 납골당에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천사가 된 아이들 생각하면서 슬퍼하고 애도하고만 싶지만 이곳에 있는 우리 엄마 아빠들은 지금은 자주 가보지 못 한다”고 말했다.

▲ 29일 낮 3시께 서울 청운동주민센터 앞 농성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팽목항에 있을 때 해지는 것이 두려웠다. 해를 붙들고 있을 만큼 간절했다. 지금도 청와대에 해가 질 때는 그런 마음이다. 언제까지 여기에서 대답을 기다리고, 우리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법이 제정돼 조사가 될지… 답답하고 기다리고 있다. 추석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까짓 추석은 개나 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가족들과 만나 어떤 표정,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다들 없다고 한다.

어디를 가고 싶지도 않다. 솔직히 4·16 이후 어딜 가서 뭘 하든지 단 한 번도 웃을 수 없었다. 좋은 일이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추석이 사치 같다. 아프고 싫다. 제일 슬픈 일들은 아이들 생일이다. 우리 아이는 7월29일이 생일이었다. 정말 우는 것도 너무 힘들고 싫다. 아픈 것 자체가 너무 싫다. 언제까지 이렇게 아파해야 하는지…. 임금님은 맨 아래 민심을 살피고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팽목항에 있을 때 그 모든 게 배신으로 다가왔다. 내가 착각하고 살아왔다.

왜 임금인지, 누구를 위한 임금인지, 따뜻한 모습 한 번 보여주셔서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면 좋겠다. 사람들이 컴플레인을 거는 이유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게 아니다.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 그 진실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우리 마음을 알아주고 들어주고 보듬어 주고, 사람 대 사람으로 안 되는 게 뭐가 있겠나. (박근혜 대통령은) 정말 그게 아닌 건지, 그런 게 있을 수 없는 나라인지 묻고 싶다. 빨리 우리 아이들 억울한 것 좀 풀어달라. 그것 하나만 바라고 여기 와서 자고 울고 병원 다니면서 이렇게 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김은진 범국민서명위원회 위원장은 “새누리당은 가족을 설득하기 위해 만나는 것이라는데 분명 착각하고 있다. 우리는 협상을 하자고 요구한 적이 없고, 협의해달라고 애걸복걸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을 요구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청와대와 여당, 야당은 정치인으로서 가족의 요구를 해결할 의무가 있을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 대 가족, 국민 대 가족으로 만들고 있다”며 “이렇게 국민을 무시하고 기만하고 외면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국민 단식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대책회의에 따르면, 현재 광화문광장 농성장에서만 연인원 5143명이 국민단식에 참여했다. 온라인에 단식 의사를 밝히고 실행했다는 시민은 3만여 명에 이른다. 김은진 위원장은 “전국 16개 단식농성장이 지속되고 있다”며 “국민들의 지지가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이봉수 화백이 그리는 단원고 학생. 이 화백은 학생들을 그리며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이날 기자회견문은 단원고 2학년4반 고 홍순명군 누나 홍소라씨가 읽었다. 가족대책위는 국회가 다음 주 시작하는 정기국회에서 하루 빨리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해 달라고 호소했다. 가족대책위는 이날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기존 여야 합의안에 대해 “최대한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새누리당은 아무래도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 건설을 바라는 가족과 국민들의 마음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가족대책위는 “마치 세월호특별법이 민생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얘기할 때마다 우리는 속상하다”며 “특별법 제정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가족의 이야기를 경청하거나 각 정당의 입장을 모아 토론하는 역할을 가장 게을리 해 온 새누리당이야말로 민생의 발목을 잡아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30일 끝나는 국정조사와 관련, 가족대책위는 “밝혀진 것도 거의 없이 시간이 흘러가버렸다”며 “심재철 의원이 한 달 동안 한 일이 없다고 활동비를 거부한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참 어이가 없었다. 심 의원은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국정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야당에게 돌리는 데에만 연연하며, 개인적인 소신인양 기부 사실을 내세운 게 위원장의 태도이냐”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가족들과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잇따른 면담 요청에도 만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가족대책위는 “면담을 거부하는 시간만큼 대통령이 잘못하는 시간이 늘어가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이렇게 첩첩이 쌓여가는 대통령의 책임을 어떻게 다 감당하시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의 ‘최종책임’을 어떻게 지려는 것인지 기다리겠다. 국민들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가족과 국민들이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것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은 “월요일(9월1일) 면담에 참여하되 앞으로 계속 진심어린 모습으로 대화하고 있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대화하겠다”며 “가족들이 진심으로 다가가서 대화하면 새누리당도 진심으로 다가와서 들어주고 대해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것이 책임 있는 여당의 자세,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의 자세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시민들에게 서명과 집회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방송인 김제동씨는 오늘 저녁 7시 반부터 세월호 가족들과 ‘이야기마당’을 진행한다. 30일(토) 오후 5시 서울 광화문광장과 부산, 광주에서는 <특별법을 제정하라 청와대는 응답하라> 촛불집회가 열린다. 서울에서는 집회가 끝난 뒤 청와대로 행진할 계획이다. 앞서 이날 낮에는 유가족들이 서울역 명동 강남 신도림 홍대입구 등 서울 5곳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29일 현재 시민 450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가족대책위는 오는 9월2일 낮 1시 ‘100만 서명지’를 청와대에 전달할 계획이다.

한편 한국갤럽이 지난 26일부터 사흘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세월호특별법과 관련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47%가 “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타났다. “재협상안 통과” 의견은 40%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은 41%, 부정의견은 43%로 조사됐다. 새누리당 지지자 64%가 부정 답변을 했다. ‘제3자 협의체’ 구성과 관련해서는 찬성이 47%, 반대가 41%다. 응답자의 44%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봤고, 52%는 “여야가 국회에서 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국갤럽 세월호특별법 관련 여론조사 결과. (자료=한국갤럽).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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