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이어지는 <조선일보>의 “통일은 미래다” 시리즈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첫 기자회견과 다보스포럼에서의 “통일은 대박” 발언에 대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그들이 공유하는 어떠한 정황이 있을 거라는 추측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황은 ‘중국으로부터의 언질’일 거라는 예측도 있었다.

이 ‘추측과 예측’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의 최대 정책자문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이 지난달 발간한 `2014년 아시아태평양 지구 발전 보고서`에서 중국이 북한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북한의) 오판을 없애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5일자에 실린 <美·中과 한반도 통일 전략대화 시작할 때 됐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 내용에 대해 “한반도 통일을 바라보는 중국의 생각에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 것은 수년 전이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주장이 거침없이 나오고 있다”고 평했다. “보고서의 주 기조는 대체로 북한 붕괴보다는 남북한의 화해 협력에 맞춰져 있지만, 중국 국책 연구기관의 보고서에 ‘북한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 자체가 놀라운 변화”라는 것이다.
▲ 5일자 조선일보 사설
또 홍콩의 친중 매체 다궁(大公)보는 4일 중국 외교의 변화상을 “시진핑(習近平·사진) 국가주석이 연한제일(聯韓制日)로 무적무우(無敵無友) 외교 책략을 버렸다”라고 표현했다. 연한제일은 한국과 연합해 일본을 제압한다는 뜻으로, 중국이 친구도 적도 없는 전통적 중립·비동맹 외교를 말하는 무적무우에서 벗어나 피아식별을 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 매체는 최근 중국이 러시아와 한국에 대해선 우호적인 접근을 하는 반면 일본과 북한에 대해서는 분명한 경계사인을 보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 5일자 동아일보 18면 기사
진보담론과 진보언론이 그간 ‘중국은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동안 중국은 상당히 변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조선일보>는 이 점에 주목하여 적극적인 통일론을 전개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은 “우리가 이미 통일의 길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이 절실한 상황이다”로 끝난다.
이러한 주문은 타당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방법론’이 문제다. 한 정치부기자는 “박근혜 정부가 ‘통일은 대박’에 관련해서 북한에 압박을 가하는 여러 가지 실질적인 조치들을 취할 것 같은데, 그 결과는 남북관계 경색으로 나타날 것 같다”고 전망한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것은 확실히 한국 측에 호재이지만, 이 호재를 지나친 대북압박으로 낭비해서는 곤란할 수도 있다.
또 중국 측이 한국에 보조를 맞춰 북한과 일본을 대하는 것이 마냥 즐기기만 할 인지도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과 <조선일보>의 생각처럼 ‘우리가 이미 통일의 길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이 절실한 상황’이라 치자. 미국과 중국의 양해 하에 통일하되 주한미군은 휴전선 아래에만 머무르는 식의 꽤 괜찮은 통일 상황이 전개된다 하더라도 그후에 통일한국은 곧바로 중국 측과 국경선을 맞대게 된다. 과거 북한과 중국 사이에도 백두산을 둘러싼 국경선 분쟁이 있었고 한국인들 중엔 여전히 간도영유권이나 ‘만주가 우리 땅’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 이미 상당히 중국인으로 동화된 조선족들이 통일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될는지도 분명치 않다.
중국은 한국에게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수호천사’가 아니다. 방공식별구역 확장 논란에서 드러났듯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한국에 대해서도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점점 더 중국과 얽히는 상황에서 그 압력수단은 엄청나게 다양해질 것이다. 맹목적 ‘친미’도 문제지만 장기적으로는 태평양 건너 있는 미국보다 중국이 안보문제나 국가의 존립문제에 있어서도 더 위협적인 상대일 수 있다. 미국에겐 남미라는 ‘앞마당’이 있다지만 자칫하면 한국이 ‘중화제국의 남미’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언론들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거나 <조선일보>처럼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를 보는 정도에서만 머무르는 듯하다. 홍콩 다궁보의 보도도 <동아일보> 정도에서만 크게 소개되었다. 일본 아베 정권의 ‘폭주’에 가려져 중국의 적극적인 행보가 의미하는 바가 미처 분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에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남한은 종종 21세기의 중국과 북한보다 1930년대의 일본을 더욱 두려워하는 것 같다”라고 비꼬았다지만 이 비판의 요점은 적어도 한국 언론에서는 사실이다.
▲ 5일자 경향신문 2면 기사
다행히 <경향신문>은 다른 방식으로라도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같은 진보언론인 <한겨레>에 비해서도 국제문제에 좀 더 깊은 관심을 보여 왔던 <경향신문>은 5일자 2면에서 중국의 군비증강 문제에 대해 제법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경향신문>은 같은 날 <우려스러운 중국의 군비 증강>이란 사설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
<경향신문>은 이 사설에서 “올해 세계 군사비가 5년 만에 증가했으며, 이는 주로 중국·러시아의 국방예산 증가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영국의 군사정보 분석기관 IHS제인스가 밝혔다”라면서, “일본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이유로 우경화의 방향을 군비 확충으로 바꿀지도 모른다. 이것이 중국이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 중국은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 준비를 해야 한다. 군사대국은 평화의 길이 아니다”라고 제언하고 있다.
물론 <경향신문>이 중국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통일 이전 단계에서부터, 통일 과정이나 이후에는 더욱더, 한미일 안보동맹과 한중 경제협력 관계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미일 안보동맹은 극우파 동맹이 아닌 다른 형태의 동맹으로 재편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도 다른 대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는 중국 및 일본 양쪽과 쌍방보단 비교적 사이가 좋은 한국의 중재로 동북아에 다자안보협력 체제가 들어서는 것이 해법일 것이다.
북한을 한국 경제의 한계를 돌파하고 회생의 기회로 삼을 내부식민지로 만들려는 탐욕스러운 보수의 시선과, 제대로 사과받지 못한 일본의 과거의 만행에 대한 진보의 분개의 시선을 넘어, 대한민국이란 정치적 공동체가 수세기 후에도 존속하기 위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만일 그런 고민 끝에 충분한 대책이 수립되지 못한다면 한국의 안보는 ‘맹목적 친미주의자’가 대세였던 시절보다도 더 취약해질 것이다.
▲ 5일자 경향신문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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