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미묘한 안보·외교 문제들이 넘쳐나는 시국이다. 먼저 MD 문제가 있다. 군당국은 미국으로부터 MD 미사일을 일부 구매하면서도 MD 자체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군의 방침은 미국 MD에는 참여하지 않고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를 확립하겠다는 것인데 이중 일부 무기체계가 MD와 똑같아 결국 이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생겼다. 결국 16일 오전엔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직접 나서서 “MD 가입 안 한다”라며 선을 그어야 했다.

이 문제는 한국 외교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와 큰 관련이 있다. 미국으로서는 한국, 일본, 필리핀, 호주 등을 끌어들여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하고 싶어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작권 환수 연기 문제도 그 자체로 미묘한 안보·외교 문제이나 MD 문제나 일본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와 얽혀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 측이 이미 예정되었던 전작권 환수에 대한 연기를 주문하면서 미국에게 무언가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미국이 이를 활용해 한국 측에게 MD 미사일을 팔거나 일본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을 양해받으려고 했다는 시선이다. 일본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서는 미국 뿐 아니라 호주도 찬동하고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는 앞서 적은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구상에는 부합하지만,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재무장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 16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박근혜 정부는 국내 정치에서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외교 문제에서는 두각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해외순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중견국협의체 등을 내세우고 있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사실상 일본을 재무장시켜 중국을 포위하는 꼴이 되는 미국의 구상과는 다르게 한중일을 포괄하는 평화협력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중견국협의체는 중견국들끼리 정례적인 외교장관 회의 개최를 통해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를 중심으로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겠다는 구상이며 한국 주도로 일단 한국, 멕시코, 호주, 인도네시아, 터키 다섯 개 나라가 참여하기 시작했다.
양쪽 구상 모두 나쁘다고 볼 수 없으며 특히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경우 비슷한 고민을 했던 참여정부의 복안과 어느 정도 포개지는 면모조차 있다. 그러나 현재의 미묘한 안보·외교 문제들의 이면과 박근혜 정부 외교 구상의 실현의 전제에 남북관계 개선이 놓여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지적하는 언론들이 적다.
▲ 16일자 동아일보 6면 기사
중국을 포함하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외교 구상과 충돌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미국의 구상에 명분을 주는 것이 북핵문제다. 북핵을 핑계로 사실상 중국을 포위하는 안보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안보·외교 전략인 셈이다. 미국이 일본에게 집단적 자위권을 부여하여 재무장을 유도하고 한국을 MD에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것도 크게 보아 이 구상의 일환이다.
즉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어려운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기 어렵고 박근혜 정부의 ‘진취적인’ 외교 구상들도 출발단계부터 어그러질 거란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남북문제를 ‘자존심 대결’로 가져가고 국내정치를 위한 ‘NLL 대화록’ 정국을 만들어내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절실하다.
그런 면에서 이 모든 문제를 꿰맞추진 않았지만, 적어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남북관계 회복과 연결시킨 <중앙일보> 이하경 논설실장의 칼럼은 큰 의미가 있다. 한국 보수가 적어도 이 정도의 시선을 가질 때에 산적한 안보·외교 문제들을 풀어낼 실타래가 보일 것이다. 정치적 반대파들에게 ‘반미 종북’의 딱지나 붙이려고 노력하는 욕망 속에서는 한반도신뢰프로세스도 동북아 평화협력구상도 의미를 지닐 수 없다는 것을 박근혜 정부와 보수언론은 알아야 한다.
▲ 16일자 중앙일보 31면 이하경 논설실장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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