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최근 연세대와 고려대의 비대면 강의 중간고사에서 학생들의 집단 부정행위가 적발된 사건이 보도됐다. 두 대학 모두 객관식 혹은 단답형 문제를 냈고, 학생들은 온라인 시험 중 챗GPT등 생성형 AI를 활용해 정답을 찾아 답안지를 작성해 제출했다. 연세대의 경우 담당 교수가 시험 전에 ‘모든 시험은 전자기기, AI, 책, 자료를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공지했기 때문에 부정행위로 드러날 경우 학칙에 따라 조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사전 공지 여부를 떠나 모든 종류의 부정행위는 당연히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초점이 학생들의 부정행위가 아니라 시대 변화에 뒤처진 평가 방식으로 옮겨간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객관식과 단답형 시험의 가장 큰 문제는 평가의 기준이 누가 더 많이 암기했는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이 방식은 지식을 정량화하기에는 편리하지만, 실제로 학생의 사고력·해석력·창의성을 평가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암기는 기술적 능력일 뿐, 지식의 구조를 이해하고 실제 문제에 적용하는 능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역량이다. 시험지가 ‘정답 목록’으로 구성될 때, 학생들은 지식을 관계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단편적으로 기억하려 한다. 이러한 시험 형태는 지식의 본질을 협소하게 만들고, 깊이 있는 탐구나 비판적 사고를 유도하기보다는 단순한 정보의 재현 능력을 측정하는 데 그친다.

11월 10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11월 10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객관식 시험은 산업화 초기의 대량생산 시스템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당시 교육은 많은 학생에게 표준화된 지식을 빠르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였고, 평가 또한 효율성과 속도가 핵심이었다. 책과 자료는 지금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정보 접근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에 기억력은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암기를 잘하는 사람은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한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사회는 그들을 우대했다. 객관식 시험은 이러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합리적이었던 제도적 장치였지만, 이는 당시 산업구조에 적합한 당대의 시스템일 뿐이었다.  

물론 당시의 엘리트들은 국가시험을 통과한, 뛰어난 암기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이들이 산업화와 국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지식을 얼마나 기억하는가가 개인의 능력과 직결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산업화 시대의 지식은 정형화되어 있었고, 그 지식을 적용하는 방식 역시 비교적 일률적이었다. 하지만 AI 시대의 지식은 유동적이고, 끊임없이 재구성되며, 다양한 맥락 속에서 연결된다. 지식의 중요성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과거의 시험 방식이 지금의 시대성과 맞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모든 객관식 시험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대규모·전국 단위에서 일관된 평가가 필요한 시험에서는 객관식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공정성과 표준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의 정규 수업에서까지 이런 평가 방식을 지속해야 할 이유는 없다. 대학은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기관이 아니라, 지식의 탐구·창조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단답형 문제를 출제한다는 것은 대학 교육의 본질을 스스로 축소하는 일이다. 학생들이 생각하고 비교하고 논증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곳에서 정답 맞히기 중심의 시험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인공지능(AI) 일러스트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공지능(AI) 일러스트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오늘날 지식과 정보는 어디에나 흐르고 있다. 인터넷과 AI는 원하는 정보에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고, 잘못된 정보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면 곧바로 반박이 들어오는 시대다. 학생들은 더 이상 정보를 외우는 데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또 암기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그 지식을 활용하거나 변형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 관심을 둔다. 이런 환경에서 객관식 시험은 학생들의 실제 학습 행태와 동떨어져 있고, 그 자체로 시대착오적 제도가 되어가고 있다. 즉, 지식의 소유를 전제로 한 교육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다.

AI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지식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서사를 구성하는 능력이다. 무한한 정보 환경에서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연결하고 이야기로 만들 것인가’이다. 대학은 바로 이 능력을 훈련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자료를 탐색하고, 자신의 언어로 서사를 만들고, 그 의미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AI 시대의 핵심 역량이며, 대학 평가 역시 이 변화에 맞춰 재설계되어야 한다. 지식 암기에서 서사 구성으로의 전환, 이것이 지금 대학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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