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박대형 기자] 전국 이주노동자가 2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2025 전국이주노동자대회'를 열고 이재명 정부를 향해 강제노동철폐, 사업장변경 자유보장, 노동권 보장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중대범죄라고 했고,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등 이주노동자 인권침해에 대한 근본 대책 마련을 지시했는데 여전히 실질적인 개선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 폐지 및 노동허가제 도입 ▲임금체불 근절 ▲브로커 착취 근절 ▲노동안전 보장 ▲단속추방 중단 및 미등록 이주민 체류권 보장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1월 강제단속을 피해 숨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2월에는 전남 영암 돼지농장에서 괴롭힘과 폭력에 시달리던 노동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7월에는 나주 벽돌공장에서 지게차에 실려 학대를 당했고 강릉에선 사장이 여권과 통장을 빼앗아 발목을 잡고 허위신고까지 했다"며 "이런 사건들은 몇몇 사업주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차별과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이주노동 제도가 낳은 결과"라고 강조했다.
양 위원장은 "거의 모든 취업비자에서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변경이 제한돼 있다"며 "이주노동자는 브로커에게 착취당하고 비닐하우스에서 얼어 죽고 '절대 권력'이 된 사업주에게 종속돼 살아간다. 이게 노예의 삶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말했다.
지난 2020년 12월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 A 씨는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최저 기온이 영하 20도 가까이 내려갔으나 숙소에는 난방이 가동되지 않았다. 유족은 "국가가 이주노동자의 생활을 관리·감독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3-2부(김소영·장창국·강두례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정부가 원고들에게 각 1000만 원씩 2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MTU)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세월도 30년이 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것이 바뀌는게 정상인데 이주노동자 권리제한은 바뀐 것이 거의 없다"며 "사업장을 그만둘 수 없으니 이주노동자들이 괴롭힘, 차별, 강제노동 개선에 대한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다. 사장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 위원장은 "정부는 사업장 변경 제한을 넘어 지역 제한까지 해서 이주노동자의 지역 이동권을 박탈했다"며 "이재명 정부는 사업장 변경 자유 등 권리가 보장되는 노동허가제를 실시하고 모든 이주노동제도를 법무부가 아닌 노동부가 책임지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제조업 노동자 조코(인도네시아) 씨는 "친구는 선장이 여권과 통장을 빼앗고 폭행까지 일삼았으나 사업장을 옮길 수 없어 끝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를 노예처럼 만들고 미등록을 양산한다"며 "정부가 폭력적인 단속추방을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민에게 체류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 후보로 나왔던 박진재라는 사람이 미등록 이주민들을 잡아서 폭행하고 동영상을 찍고 틱톡에 올렸다"며 "이런 사람이 1년 2개월만 구속된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박진재 같은 사람들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진재 자국민보호연대 대표는 대구 달서구·북구 등에서 번호판 없는 오토바이를 탄 이주노동자를 무작위로 붙잡아 검문하고 강제로 체포한 혐의(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체포 등)로 지난 11일 징역 1년 2개월 형이 확정됐다. 박 대표는 제22대 총선에서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 소속으로 대구 북구갑에 출마했다.
농업노동자 께 라빈(캄보디아) 씨는 "양평의 농장에서 1년 반 동안 하루 10시간 이상, 월 2일 휴일만 주어진 채 노동했지만 임금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고 숙소도 계약과 달리 비닐하우스 창고였다"며 "항의했더니 오히려 해고를 당했고 노동청에 신고했지만 9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농촌 현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 살면서 매일 두 시간씩 무급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며 "노동부가 착취를 방치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정의로운 줄 알았는데 외국인 노동자에겐 전혀 정의롭지 않았다. 근로계약 위반과 임금 도둑질을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소속 윤용진 씨는 "나주 벽돌공장 이주노동자 괴롭힘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대통령까지 언급하면서 이주노동자 인권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왔다"며 "농어촌은 물론 조선업·제조업 등 한국의 주요산업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괴롭힘과 인권침해로 고통받고 있다"고 전했다.
윤 씨는 "미국 조지아주에서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한국인들이 대규모 구금됐을 때 많은 분들이 분노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한국 정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은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보다 더 폭력적이다. 일터와 식당을 급습하고 수갑을 채우며 미성년자도 보호소라는 이름의 감옥에 몇 달이고 가둬놓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22년부터 대규모로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정주노동자의 임금도 동반 추락했다"며 "기업에게는 이주노동자나 정주노동자나 똑같은 착취의 대상이다. 우리 스스로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로 분열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앞서 지난 2월 26일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B 씨는 전남 나주의 한 벽돌공장에서 지게차에 묶여 들어 올려지는 등 심각한 인권유린을 당했다. 이 대통령은 SNS에 "영상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며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에서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17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미국 조지아 사태는 그 누구도 상상 못 했을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앞서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많이 강조했는데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조지아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겠나 싶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우리나라 노동자도 외국에 나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보편적인 인권 차원에서 봐야 하고 내국인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며 "노동허가제로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있는데 면밀히 검토 중이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는 최장 4년 10개월 체류하고 출국해 6개월이 지나야만 재입국해 다시 최장 4년 10개월을 체류할 수 있는데 굳이 중간에 나갔다 올 필요가 있나 해서 다방면으로 검토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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