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상호관세 15%, 자동차에 대한 품목 관세의 경우도 15%, 3500억 달러 규모 대미투자에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은 없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는 관세 협상 타결에 대해 대부분의 매체와 전문가들은 ‘선방’했다고 평가한다. 1일 보수언론의 보도를 종합해봐도 대략적으로 비슷하다. 평소 스타일대로라면 가장 박한 평가를 내렸어야 할 조선일보도 “큰 고비는 넘었다”는 식으로, 다른 언론과 큰 차이 없는 논조를 보였다.
합의안의 내용은 이전에 트럼프 행정부와 합의를 이룬 일본과 유럽연합의 경우와 큰 틀에서 유사해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선언(한국의 경우 25%)한 일반관세를 깎고 대신에 대미투자와 수입을 늘려 메우는 구조다. 대미무역구조가 한국과 비슷한 일본의 경우 약 5500억 달러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일본과 비교해 경제 규모가 적은 한국이 약 3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은 과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 모양이다.

이미 정부 협상단이 설명한 사실이지만, 경제 규모에 따른 기여는 사실 한국 측의 방어 논리였다. 언론 보도를 보면 애초 미국은 자신들의 무역 적자 규모(2024년 기준 한국 660억 달러, 일본 685억 달러)를 언급하며 한국에 약 4000억 달러의 투자를 요구했다. 협상의 줄다리기는 이 간극 사이에서 이뤄졌고 한국이 3500억 달러 중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협력 전용 펀드’로 운용하기로 하면서 타결의 실마리가 잡힌 것으로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연합의 경우는 자신들이 조성하기로 한 투자 액수가 전액 직접 투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직접 투자는 1~2%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는 대부분 대출과 대출 보증으로 기업의 사정에 따라 진행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한국의 경우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는데, 역시 직접 투자는 크지 않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의 대출 보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약 3500억, 그 중에서도 2000억원 규모의 대미투자분은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할 수 있어 유연하게 판단할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본과 유럽연합의 경우 별도로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늘리기로 한 대목이 있는데, 한국의 경우는 최대 관심사였던 쌀과 쇠고기 수입은 지켜냈다. 에너지 수입 1000억 달러 대목은 미국이 그만큼의 물량을 댈 수 있는 상황인지 의문이라는 지적(한겨레)도 있다. 다만 한미FTA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품목 관세가 일본 등과 같은 15%로 결정된 것은 타격이다. 그러나 이는 한미FTA 자체를 불신하고 부정하는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하는 상황에서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어쨌든 이런 방식으로 불확실한 것들을 주고 25%라는 ‘관세 공격’의 피해를 15%라는 최저한으로 낮췄으니 ‘선방’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국민의힘의 태도다. 이전 국면에서 미국이 협상단과의 회동 일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등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이자 국민의힘은 '상호관세 15%를 달성하지 못하면 큰 실패’라는 취지의 우려를 앞세웠다.
이것 자체는 일리 있는 시각이다. 15%는 트럼프 행정부가 합의가 매끄럽게 이뤄졌을 경우를 상정한 최저한도이다. 즉, 15%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한미 간 협상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야당이 그런 슬로건도 내놓을 수 있다.

문제는 실제 15%를 달성한 이후에 생겼다. 국민의힘이 손바닥을 뒤집듯 태도를 바꿔 '13%'를 언급한 것이다. 13%라는 숫자는 아마 한미FTA로 우대받고 있었다고 계산할 수 있는 2.5%의 관세를 대략 반영한 수치인 걸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봤듯 트럼프로부터 그러한 성과를 얻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차라리 트럼프의 농축산 시장 개방 언급에 대한 우려에 집중하는 게 합리적인 태도로 보인다.
국민의힘 인사들의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는 계파를 가리지 않는다. '13%'를 언급한 것은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고 송언석 비대위원장도 “많은 양보를 했다”며 장단을 맞췄는데, 이들은 이른바 ‘친윤’이다. 적어도 ‘반극우연대’를 한다며 이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은 상식적 차원의 비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는 게 문제다.
‘반극우연대’의 핵심을 자처하는 한동훈 전 대표는 소셜미디어에 “관세협상 등의 영향으로 국내 증시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며 “민주당 정권이 국장 투자자들한테 ‘증권거래세’까지 지금보다 올려 받겠다고 한다”, “정부 조치가 국내 증시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청년 소액투자자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등의 비판을 내놓았다.
증권거래세 인상은 윤석열 정권의 조치를 원상복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윤석열 정권의 조치’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다. 이 조치를 앞장서 주장한 사람은 한동훈 전 대표이다. 증권거래세 인하는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전제로 이뤄진 것인데, 이를 폐지하니 증권거래세의 원상복구는 당연한 것이다. 한동훈 전 대표의 논리대로 하면 금융투자소득세도 안 되고 증권거래세도 안 된다는 것으로, 주식투자를 통한 소득에는 어떤 세금도 붙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이는 양심이 없는 것이거나 가히 주식-포퓰리즘이라고 해야 할 주장일 것이다.
국민의힘의 부진은 극우와의 선긋기 실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근본은 바로 이러한 무책임 정치의 반복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전당대회 국면에서도 이런 무책임은 계속되고 있는데, 갈 길은 아직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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