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상호관세 15%, 자동차에 대한 품목 관세의 경우도 15%, 3500억 달러 규모 대미투자에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은 없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는 관세 협상 타결에 대해 대부분의 매체와 전문가들은 ‘선방’했다고 평가한다. 1일 보수언론의 보도를 종합해봐도 대략적으로 비슷하다. 평소 스타일대로라면 가장 박한 평가를 내렸어야 할 조선일보도 “큰 고비는 넘었다”는 식으로, 다른 언론과 큰 차이 없는 논조를 보였다.

합의안의 내용은 이전에 트럼프 행정부와 합의를 이룬 일본과 유럽연합의 경우와 큰 틀에서 유사해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선언(한국의 경우 25%)한 일반관세를 깎고 대신에 대미투자와 수입을 늘려 메우는 구조다. 대미무역구조가 한국과 비슷한 일본의 경우 약 5500억 달러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일본과 비교해 경제 규모가 적은 한국이 약 3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은 과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 모양이다.

한국과 미국의 관세협상이 타결된 지난달 3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이 관련 뉴스가 나오는 TV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의 관세협상이 타결된 지난달 3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이 관련 뉴스가 나오는 TV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미 정부 협상단이 설명한 사실이지만, 경제 규모에 따른 기여는 사실 한국 측의 방어 논리였다. 언론 보도를 보면 애초 미국은 자신들의 무역 적자 규모(2024년 기준 한국 660억 달러, 일본 685억 달러)를 언급하며 한국에 약 4000억 달러의 투자를 요구했다. 협상의 줄다리기는 이 간극 사이에서 이뤄졌고 한국이 3500억 달러 중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협력 전용 펀드’로 운용하기로 하면서 타결의 실마리가 잡힌 것으로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연합의 경우는 자신들이 조성하기로 한 투자 액수가 전액 직접 투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직접 투자는 1~2%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는 대부분 대출과 대출 보증으로 기업의 사정에 따라 진행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한국의 경우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는데, 역시 직접 투자는 크지 않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의 대출 보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약 3500억, 그 중에서도 2000억원 규모의 대미투자분은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할 수 있어 유연하게 판단할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본과 유럽연합의 경우 별도로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늘리기로 한 대목이 있는데, 한국의 경우는 최대 관심사였던 쌀과 쇠고기 수입은 지켜냈다. 에너지 수입 1000억 달러 대목은 미국이 그만큼의 물량을 댈 수 있는 상황인지 의문이라는 지적(한겨레)도 있다. 다만 한미FTA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품목 관세가 일본 등과 같은 15%로 결정된 것은 타격이다. 그러나 이는 한미FTA 자체를 불신하고 부정하는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하는 상황에서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어쨌든 이런 방식으로 불확실한 것들을 주고 25%라는 ‘관세 공격’의 피해를 15%라는 최저한으로 낮췄으니 ‘선방’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국민의힘의 태도다. 이전 국면에서 미국이 협상단과의 회동 일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등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이자 국민의힘은 '상호관세 15%를 달성하지 못하면 큰 실패’라는 취지의 우려를 앞세웠다.

이것 자체는 일리 있는 시각이다. 15%는 트럼프 행정부가 합의가 매끄럽게 이뤄졌을 경우를 상정한 최저한도이다. 즉, 15%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한미 간 협상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야당이 그런 슬로건도 내놓을 수 있다. 

지난해 3월 당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김포시 라베니체광장에서 열린 김포-서울 통합 염원 시민대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3월 당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김포시 라베니체광장에서 열린 김포-서울 통합 염원 시민대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실제 15%를 달성한 이후에 생겼다. 국민의힘이 손바닥을 뒤집듯 태도를 바꿔 '13%'를 언급한 것이다. 13%라는 숫자는 아마 한미FTA로 우대받고 있었다고 계산할 수 있는 2.5%의 관세를 대략 반영한 수치인 걸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봤듯 트럼프로부터 그러한 성과를 얻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차라리 트럼프의 농축산 시장 개방 언급에 대한 우려에 집중하는 게 합리적인 태도로 보인다.

국민의힘 인사들의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는 계파를 가리지 않는다. '13%'를 언급한 것은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고 송언석 비대위원장도 “많은 양보를 했다”며 장단을 맞췄는데, 이들은 이른바 ‘친윤’이다. 적어도 ‘반극우연대’를 한다며 이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은 상식적 차원의 비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는 게 문제다.

‘반극우연대’의 핵심을 자처하는 한동훈 전 대표는 소셜미디어에 “관세협상 등의 영향으로 국내 증시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며 “민주당 정권이 국장 투자자들한테 ‘증권거래세’까지 지금보다 올려 받겠다고 한다”, “정부 조치가 국내 증시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청년 소액투자자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등의 비판을 내놓았다.

증권거래세 인상은 윤석열 정권의 조치를 원상복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윤석열 정권의 조치’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다. 이 조치를 앞장서 주장한 사람은 한동훈 전 대표이다. 증권거래세 인하는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전제로 이뤄진 것인데, 이를 폐지하니 증권거래세의 원상복구는 당연한 것이다. 한동훈 전 대표의 논리대로 하면 금융투자소득세도 안 되고 증권거래세도 안 된다는 것으로, 주식투자를 통한 소득에는 어떤 세금도 붙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이는 양심이 없는 것이거나 가히 주식-포퓰리즘이라고 해야 할 주장일 것이다.

국민의힘의 부진은 극우와의 선긋기 실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근본은 바로 이러한 무책임 정치의 반복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전당대회 국면에서도 이런 무책임은 계속되고 있는데, 갈 길은 아직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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