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고브릭의 실눈뜨기]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 시리즈가 시즌 3으로 마침내 막을 내렸다. 시즌3은 공개 3일 만에 전 세계에서 6,0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시청자를 기록했지만 아이러니하게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시즌 1의 대사다. '오지랖은 쓸데없이 넓은데 머리는 나쁘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인간'이라는 기훈(이정재)에 대한 상우(박해수)의 평가는 “씨X 기훈이형” 한 마디로 압축된다. 답답한 듯 오만상을 찌푸리며 토해내는 상우의 말은 더 확실한 느낌표를 찍었다.(* 이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456억 원이라는 막대한 상금을 받았지만 기훈은 ‘게임을 막아내겠다’라는 의지로 몇 년간 딱지맨을 추적하고, 프론트맨과 연락한 뒤 다시 죽음의 게임에 참여한다. 말이 참가지 사실상 납치다. 용병들로 게임장을 쓸어버리겠다며 어금니에 숨겨둔 위치추적기가 발각되며 외부와 연락이 끊긴 탓이다. 작전이 실패하자 기훈은 게임에 참여한 모두를 살리는 걸 목표로 삼는다. 눈앞에서 사람이 픽픽 죽어가는 걸 보지만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백 억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참가한 이들이 순순히 기훈의 제안에 동참할 리가 없다.

오징어게임3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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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가 된 ‘씨X 기훈이형’

그렇게 모두를 살리겠다는 플랜B도 당연히 실패. 기훈의 목표는 점점 축소된다. 게임을 끝내기 위해 최소한의 희생은 각오한다며 시작한 쿠데타는 결국 가장 친한 친구의 목숨을 잃게 했을 뿐 아니라 팽팽하게 맞서던 게임 진행파와 게임 반대파의 균형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결정타가 된다. 게임은 멈추지 않고 이제 기훈의 마지막 목표는 게임 도중에 준희(조유리)가 출산한 아이를 지키는 것이다. 각자 1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수령할 수 있는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그마저도 수월하지 않다.

누구나 처맞기 전엔 그럴싸한 계획을 세우지만 기훈의 문제는 명분마저 흔들렸다는 데 있다. 쿠데타 진압 후 홀로 살아 돌아온 기훈은 실패의 책임을 모두 대호(강하늘)에게 떠넘긴다. 대호가 탄창을 갖고 왔다고 병정들과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겠느냐는 둘째 문제다. 잠도 자지 않고 밤새 대호를 노려보던 기훈은 급기야 숨바꼭질 게임에서 살인 면허를 받은 술래가 되지만, 여러 차례 마주한 사냥감을 놔주고 대호를 목 졸라 죽인다. 기훈이 게임 규칙 때문이 아닌 개인적 원한을 갖고 특별한 의도로 누군가를 죽인 유일한 사례다.

기훈이 대호를 살해하는 순간부터 그를 변호하기 어렵게 된다. 다른 참여자들이 잠든 사이에 모두 죽여버리고 우승자가 되라는 프론트맨의 제안도 거절하고, 연속 우승을 앞두고도 준희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희생을 자처하지만 시즌1부터 피비린내 나는 여정을 함께한 시청자들이 기훈의 숭고한 선택에 온전히 마음을 내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모자란 면이 있지만 ‘그래도 사람은 착해’는 기훈이 시즌 내내 품고 있던 최후의 무기였다.

오징어게임3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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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사람을 믿냐’는 질문

기훈의 무너진 신념 탓에 “아직도 사람을 믿냐?”라는 인호(이병헌)의 질문도 힘을 받지 못한다. 이 질문은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관통하는 테마이기도 하다. 시즌1 최종화에서 ‘길에 쓰러진 노숙자를 돕는 사람이 나타난다, 아니다’를 두고 기훈과 오일남(오영수)은 최후의 게임을 한다. 승리는 기훈. 최종 우승자가 된 기훈은 딸을 보러 가는 공항에서 프론트맨의 전화를 듣고 발걸음을 돌린다. 끔찍한 참상이 벌어질 걸 ‘아는 놈이 기어들어오냐’는 대답 역시도 기훈이 사람을 믿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최종장인 시즌3의 게임들이 사실 시즌1부터 가져온 질문을 제대로 답하기 어렵다는 구조로 짜여있다는 점이다. 지치지 않고 도망 다닐 수 있는 체력, 쉬지 않고 사냥감을 찾아내 칼로 찌를 수 있는 비정함. 여러 차례 줄을 뛰어넘고 좁은 발판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신체 능력. 나보다 약한 이를 지목하고 그럴싸한 이유로 린치를 가하는 정치력. 시즌1의 침으로 달고나를 녹이거나, 불리한 상황을 뒤집을 전략이 있던 줄다리기, 구슬치기와는 다른 게임들이 시즌3에 배치됐다.

게임의 빈틈을 찾아내거나 협동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한 명을 죽이거나 타고난 신체 조건으로 버티고, 게임 능력과 상관없는 정치 놀음에 내던져진 상황에서는 인간의 추악함이 도드라질 뿐이다. 이전 오징어게임의 우승자로 성기훈을 본인과 동일시했던 프론트맨의 제안이 ‘너도 어쩔 수 없다’라는 냉소와 함께 조그마한 희망의 뉘앙스를 남기는 했지만 극단적 상황으로 몰아붙이는 게임 환경을 꾸며놓고 ‘사람을 믿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꼴이다. 

오징어게임3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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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을 멈추는 방법

반복되는 바람에 김이 새기는 하지만 게임의 진행 여부를 투표로 결정하는 건 새로운 시즌의 재미요소로, 다수결이 언제나 옳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라운드마다 충격적인 장면들로 시각화한다. <오징어 게임>은 빚쟁이들의 모임인 탓에 물질만능주의로 일원화되긴 했으나, 개인의 욕망을 하나의 의제로 취합하고 세력화하는 정치의 중요성은 데스 게임이라고 바뀌지 않는다. ‘아직도 사람을 믿냐’는 질문 자체가 던져질 수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개개인의 양심이나 선의에 기댈 것이 아니라 비극적인 선택을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사람을 믿을 기본 요소다.

저 사람을 죽여야만, 갓 태어난 아기를 절벽 밑으로 던져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가혹한 조건 아래에서는 본성과 상관없이 백억남(송영창)처럼 이기적인 선택만 하거나, 진기명기(임시완) 같은 비정한 행동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오징어게임을 멈추게 하는 것은 ‘사람을 믿냐’는 말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게 아니라, 질문을 폐기하는 일이다. 기훈의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조직된 시민들의 힘이 개인의 잘못된 판단을 보완하고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만든다는 사실까지 변하진 않는다. 기훈이형이 완전 오답은 아니지만, 씨X이 되기 너무 쉬운 세상 살기는 데스 게임의 생존만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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