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권오석 칼럼]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소식이 국민의 노후 자산까지 위협하고 있다. 최근 삼일회계법인의 조사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1조 2000억 원 높다. 이는 MBK파트너스가 주도한 구조조정형 사모펀드 투자 실패의 전형적인 결과이며, 국민연금이 해당 사모펀드에 출자자(LP)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심각한 공공 자산관리 실패를 뜻한다.

문제는 비단 이번 한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지금도 수많은 국내외 사모펀드와 비상장 자산에 수천억 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이 중 얼마나 많은 투자가 제대로 된 심사와 사후관리를 거쳤는지 국민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구조적으로 ‘알 수 없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 CI [MBK파트너스 제공]
MBK파트너스 CI [MBK파트너스 제공]

투명성 결여된 구조, MBK 사태는 예고된 결과 

사모펀드 운용의 특성상 투자 대상과 전략을 외부에 공개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반복된다. 그러나 국민의 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은 예외여야 한다. ‘사익 추구가 목적인 블라인드펀드에 공적 기금이 참여하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모순이다.

MBK가 운영한 홈플러스 구조조정 과정은 그 자체로 주주가치보다는 부동산 차익 극대화와 단기 수익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 구조조정형 사모펀드에 국민연금이 투자했다는 것 자체가, 수익률을 이유로 공적 책임을 방기한 사례다.

더 근본적인 문제: 수익률 평가 방식과 인센티브 구조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성과 평가 체계가 ‘실현된 수익’보다 ‘평가손익’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비상장 자산에 대한 내부평가가 고평가되어 있는 동안에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회수가 지연되거나 손실이 현실화되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평가이익은 인센티브로 반영되지만 손실에 따른 불이익은 구조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회의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투자 의사결정에 대한 기록을 실명 공개하도록 규정하여야 하며, 정부 위원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투자 관련 의사결정은 전문 기금이사회에서 처리하도록 이원화하도록 해야 한다. 기금운용위원회도 정부 관료 중심에서 투자 전문가, 가입자 대표, 시민사회 인사 등 외부의 전문 독립 인사 중심으로 개편되어야 할 것이다.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TV 제공]

개혁 방안

이 같은 구조에서는 사모펀드와 같은 고위험 투자에 대한 전문성보다 '관료 리스크 회피'나 '정치적 의도 반영'이 우선될 가능성이 높다. 투자 실패 시 책임은 민간 운용사나 내부 실무진에 전가되지만, 정작 운용 원칙과 위험 분산 전략을 제대로 설계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는 이사회는 구조적으로 면책된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을 최종 결정하는 '기금운용위원회'는 현재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고용노동부 등 정부 측 인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사회에 해당하는 기금운용위원회가 독립성을 잃은 상태에서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왜 국민연금 이사회(기금운용위원회) 구조가 문제인가 

이는 '이익은 사람에게, 손실은 국민에게'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운용인력의 성과급 역시 철저히 검토되어야 한다. 일부 운용본부 인력이 사모펀드와의 유착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수익률 성과급은 회수 여부와 무관하게 선지급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성과 없는 성과급’이 반복되는 구조는 국민연금의 신뢰를 스스로 갉아먹는 자해 행위다.

홈플러스가 지난 3월 4일 오전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의 모습. (서울=연합뉴스)
홈플러스가 지난 3월 4일 오전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의 모습. (서울=연합뉴스)

구조 개혁 없이는 제2, 제3의 홈플러스 사태 반복

단발적인 MBK 투자 철회나 위탁사 제재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이제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을 근본부터 재설계할 시점이다.

1. 기금운용 독립기구 설치 – 기획재정부와 복지부 등 관료 주도의 기금운용위원회를 해체하고, 실질적인 투자 전문가 중심의 독립운용청 신설이 필요하다.

2. 사모펀드 투자 사전·사후 정보 공개 의무화 – 특히 비상장 대형기업에 대한 투자는 반기 단위 회계보고서 공개를 의무화하고, 연금의 투자 조건 위반 시 자동 회수 조항을 도입해야 한다.

3. 수익률 평가 기준의 개혁 – 실현 손익 중심의 회수 기반 평가방식으로 전환하고, 손실 발생 시 운용인력에 감점 또는 성과금 환수조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돈을 굴리는 투자자’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공공기관’이다. 금융 테크닉과 구조화된 운용 기법 뒤에 숨어 있는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아무리 높은 수익률을 외쳐도 국민의 신뢰는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이 개혁의 골든타임이다. 국민의 노후를 자산이 아닌 파생구조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멈추자. 시스템은 사람보다 오래간다. 국민연금 개혁의 진정한 목적은 ‘수익률’이 아니라 ‘신뢰율’을 높이는 데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패한 투자는 용서받을 수 있어도, 

실패를 반복하게 만든 구조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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