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진혜인 칼럼] 정책은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 공공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조건과 제약 속에서 추진되는 복합적인 과정입니다. 특히 기술개발, 복지, 산업구조 전환과 같이 고도의 전문성과 판단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단순한 결과만으로 정책의 성패를 가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정책의 정당성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수립되고 집행된 당시의 상황, 여건, 판단의 타당성 속에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감사원이 수행하고 있는 ‘정책감사’는 이러한 정책의 특성과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사후적으로 결과를 판단하고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정책을 보다 창의적이고 유연하게 추진해야 할 공직사회에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감사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무엇보다 이와 같은 정책감사는 국제적으로도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영국의 국가감사원(NAO), 미국의 회계감사원(GAO), 독일의 연방회계감사원(BRH) 등 주요국의 감사기관은 회계의 적정성, 집행의 정당성, 제도 개선을 위한 권고에 집중합니다. 정책의 효과나 성공 여부는 감사가 아닌, 국회나 행정부의 정책평가 시스템을 통해 점검하며, 감사기관이 직접 정책의 성패를 판단하거나 그에 대해 문책하는 구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감사를 회계적 통제와 제도 개선의 도구로 보고 있는 반면, 한국만이 유일하게 정책 자체를 감사의 대상으로 삼아 결과 위주의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은 한 번쯤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책은 그 특성상 경로가 존재하고, 여러 해에 걸쳐 현장에서 축적된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각 부처의 정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조정되고, 수많은 내부 논의를 거쳐 집행됩니다. 이 과정은 전문성과 판단력이 쌓여야만 가능한데, 감사원은 구조적으로 인력이 제한되어 있을 뿐 아니라,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보유한 조직도 아닙니다.

이는 비유하자면, 오랜 시간 경험을 쌓은 의사가 수술한 결과를 의학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단기간에 평가하려는 것과 비슷합니다. 특히 R&D, 보건복지, 과학기술 행정처럼 고도의 전문성과 정보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영역에서는, 정책의 취지나 효과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결과만을 평가하게 되면 오히려 왜곡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실제로 감사원의 정책감사 과정에서, 꼭 필요했던 정책이 잘못된 판단으로 배제되거나, 반대로 실질적으로 불필요한 과제가 추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정책의 생산성과 효율성 자체를 저해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정책기획 역량 자체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정책의 평가는 이미 국회와 행정부 내부에서 충분히 수행되고 있습니다. 국회는 국정감사를 통해 각 부처는 물론 산하기관 전체에 대해 정책의 합목적성과 합법성을 점검하고 있으며, 국무조정실과 대통령실 등 행정부 내부에서도 정책 조정과 평가 기능이 체계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미 존재하는 제도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이 정책감사까지 중복 수행할 필요성은 낮다고 판단됩니다.

반면 감사원은 여전히 중요한 고유 영역을 갖고 있습니다. 예산의 집행 적정성, 법령 준수, 회계의 투명성과 정밀성 확보 등 회계감사 분야는 감사원이 본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핵심 영역입니다. 감사원이 정책의 성과를 사후적으로 판단하는 데 힘을 쏟기보다 본래의 책무인 회계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오히려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데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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