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실력'이란 말은 케이팝 신을 왜곡하는 범인 중 하나다. 아이돌의 가창 실력, 춤 실력, 라이브 실력이 비교 당한다. 가수의 노래 솜씨를 비교하는 게 문제일 리는 없다. 그런 평가의 언어가 케이팝 신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다만, 과열된 측면이 있다. 음악적 생산물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실력을 근거로 특정 아이돌을 우월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는 일이 벌어진다.
케이팝 팬들이 ‘실력’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방식은 기계적이면서 피상적인 면이 있다. 퍼포머로서의 종합적 역량이 가창력과 춤 솜씨 같은 기능적 요소로 평가받지만, 정작 엄밀한 평가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잘한다” “못한다” 같은 이분법으로 수렴하거나 “무대 장인” 같은 상투적 찬사로 귀결된다. 그 많은 아이돌의 실력을 가리는 비교는 논거 없는 규정을 통한 다수의 합창으로 수행되곤 한다. 누가 누구보다 잘한다, 누구는 최하위다 같은 프레임 씌우기의 논법이다.

아이돌의 '실력'이 서술적 평가 대상이 아니라, "노래는 어느 정도는 해야 돼" 같은 하한선이나 감별의 언어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어느 정도’에 미달하는 아이돌은 곧 자격 없는 아이돌이다. 춤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멤버는 팬덤 내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배척당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는 아이돌의 전문성을 팬덤의 소비 행위에 대한 반응으로 정의하게 만들며 실력에 대한 평가기준을 오히려 단순화한다.
‘실력’ 중심의 관점이 강해진 배경에는 케이팝 산업의 소비자주의가 있다. 과거 대중 중심의 음반 시장이 사양화되면서 아이돌 산업은 팬덤에게 직접 구매를 유도하는 구조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팬들은 자신이 지출한 만큼의 가치를 요구하며 연습량과 퍼포먼스를 근거로 아이돌의 상품가치를 평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노래를 공백 없이 빽빽하게 채우는 ‘칼 군무’ 같은 요소가 세일즈 포인트로 등장한 배경일 것 같다.

케이팝 팬들의 실력에 관한 과잉 담론은 묘하게도 케이팝을 향한 다른 장르 음악 팬들의 자부심과 유사한 양상을 띤다. 예를 들어, 한국 힙합 팬덤은 아이돌 래퍼를 ‘진짜 힙합이 아니다’라며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이돌 팬덤이 그룹 내 멤버 간 실력 차이를 비교하며 서열을 매기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또한 케이팝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면서 해외 아이돌과 비교하며 ‘K팝은 실력파, J팝은 무능’하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런 식의 담론이 음악성에 관한 실질적 평가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기능적 퍼포먼스나 아티스트로서의 창작 능력만 따지자면 케이팝은 장르 음악에 비해 즐길 만한 요소가 적다. 대부분의 아이돌이 직접 곡을 만들거나 가사를 쓰지 않으며, 랩과 보컬 퍼포먼스 역시 장르 아티스트에 비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케이팝의 음악성을 잘한다 못한다로 따지면 ‘오십보백보’이며 남는 논의가 별로 없다.
왜 아티스트의 실력을 평가하는 건지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공연 무대는 결승점 통과 순위를 가리려고 달리는 육상 경기가 아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음악과 무대가 존재하고, 그걸 빚어내기 위한 재료 중 하나가 가창력과 춤 솜씨일 뿐이다. 케이팝이 주는 즐거움은 개별 멤버의 절대적 실력보다는 팀워크와 콘셉트의 조화에서 나온다. 예컨대 뉴진스의 음악이 성공한 이유는 그런 요소들이 어우러지며 화목한 화음을 이루었기 때문이지 멤버들이 고음을 잘 뽑고 목청이 좋아서가 아니다.
![가수 콘서트 (CG) [연합뉴스TV 제공]](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502/312035_219470_2416.jpg)
무대 위에서 칼 군무로 라이브를 소화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그것이 꼭 음악적으로 우월한 가치를 지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비주얼도 보여주는 여러 요소를 겸비한 게 케이팝 콘텐츠의 차별성이라면, 그 모든 걸 한몸에 갖추기 힘든 현실을 긍정하고 여러 멤버들이 어우러지며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 봐야 한다. 아이돌의 가치를 개별적 실력 요소와 개별 멤버로 분해해서 평가할수록 그 진가와 멀어지고 줄 세우기 놀음으로 과열될 수밖에 없다.
‘보이그룹 신’은 실력에 대한 소비자 논리가 존재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걸그룹 신’에 비해 실력에 관한 소음은 비교적 덜 시끄러운 것처럼 보인다. 다른 그룹의 팬덤끼리 서열을 매기는 일도, 실패한 라이브 무대가 도마에 오르는 일도 상대적으로 드물다. 줄 세우기의 아수라장에 오르고 모두가 한 마디씩 하려고 덤비는 건 걸그룹이다. 물론 걸그룹이 더 대중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걸그룹이 보이그룹보다 충동적이고 책임감 없는 말들에 좌지우지되는 처지에 있고, 여론을 통해 서로를 끌어내리려는 경쟁이 훨씬 첨예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걸그룹 신은 그 화사한 풍경만큼 케이팝 신의 악습까지 생생하게 품고 있는 만화경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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