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1일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지난해 11월 28일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같은 해 12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정부로 이송됐다. 법률 개정안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재가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서 재의결 절차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다. 

국회 재의결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재적 의원 300명이 전부 출석한다면 200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재의결을 통한 최종 의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찬성과 반대가 어느 정도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은 탄핵과 같은 정치적 사안이 아님에도 사실상 여야 표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야가 정치적 이념이 다르고 개정안의 국회 표결 시 소속 정당에 따라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게 나눠지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비교적 정치적 색채가 없어 보이는 개정안도 소속 정당에 따라 뚜렷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AI디지털교과서 [연합뉴스 자료사진]
AI디지털교과서 [연합뉴스 자료사진]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발맞춰 미래 핵심 역량을 기르기 위한 디지털 기반의 교육 시스템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주요 교육 정책 중 하나다. 더구나 이 정책은 어느 후보라도 제시할 수밖에 없는 공약이다. 이재명 후보 역시 교육 대전환 8대 공약에서 디지털 전환에 맞는 교육 시행을 포함시켰다. 세부 실행 계획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학교 교육 시스템이 디지털 네이티브로 태어난 어린 세대에게 적절한 교육 환경을 제시하지 못하다는 문제의식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가 2006년 내한했을 때 언급한 한국의 교육제도가 여전히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당시 앨빈 토플러는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굳이 토플러의 이런 비판이 아니더라도 현재 교육 시스템은 산업사회에 어울리는 대중교육 시스템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중매체 시대에는 아날로그식 대중교육이 적절했지만,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는 새로운 형식의 교육 시스템이 필요한 데도 현재 교육 시스템의 기본 프레임은 기존 대중교육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 피해는 미래세대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중교육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제도와 물적 토대는 표준어 확립과 종이 교과서의 등장이었다. 근대적 과학기술에 기초한 합리적 사고를 위해서는 권위 있는 주체가 작성한 교과서가 필요했고 교과서 작성을 위해서는 표준 국민어가 선행되어야 했다. 국가에 의해 강력하게 표준어가 확립된 이후 대중 교과서가 만들어졌고 교과서에 기초한 교육을 받게 되면서 사회적 의사소통이 가능해졌고 근대 시장 경제에서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선별적으로 진행된 전통적 교육과 교과 내용은 이내 소용이 없게 되었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고 어린 세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역사적 과정이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AI교과서(CG) [연합뉴스TV 제공]
AI교과서(CG) [연합뉴스TV 제공]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교과서 도입 배경은 기본적으로 위에 언급한 역사적 사례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근대가 시작될 무렵 표준어가 필요했듯이 지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는 컴퓨터 언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계산하기 위해서 사칙연산을 알아야 하고,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표준어를 알아야 하듯, 자신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빅데이터를 분석해 활용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언어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컴퓨터 언어와 프로세스를 배울 수 있는 교과서가 필요하다. 디지털 교과서는 이런 교육과정을 위한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플랫폼이다. 대중교육의 재구성을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디지털교과서의 도입은 이만큼 중요하다. 중요한 만큼 여야를 떠나 국가적 차원에서 깊고 세밀하게 논의돼야 했는데 현재까지 진행된 과정을 보면 여러 부족한 점이 보인다. 그러나 디지털교과서 도입의 필요성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으니 이제 재의결이 부결되어 2025년부터 의무 채택이 개시된다면 여야를 떠나 조속히 정착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굳이 문제점들만 열거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어린 세대에게 도움이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기성세대에게는 단순히 디지털교과서의 도입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미래 세대에게는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역사적 결정으로 기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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