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담이 칼럼] 2024년이 지나갔다. 글을 쓴 것도 아니고, 제대로 쉰 것도 아니고, 잘 논 것도 아닌 어정쩡하고 아주 애매한 한 해가 스쳐 지나듯 가버렸다. 2024년 마지막 달을 남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조바심이 들어 어떻게든 글을 써보겠다는 마음에 노트북을 켜놓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노트북 켜고 앉아 있지만 글을 쓰겠다는 다짐과 생각은 인터넷 아이콘을 누르는 순간 사라졌다.
처음에는 자료를 찾아보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알고리즘은 어떻게 나의 빈틈을 알았는지 다른 길로 인도했다. 알고리즘이 인도한 길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나면 2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이렇게 지내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으로 노트북을 끌어안고 동네 카페에 갔다. 2시간만 집중해서 글을 써야지 하고 자리 잡고 앉았는데 갑자기 카페 안이 시끄러워졌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들어왔다. 등장부터 요란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여학생이 욕을 랩처럼 쏟아냈다. 카페 안 고요가 쨍하고 깨졌다. 중학생 무리는 홀을 가로질러 카페에서 가장 넓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말끝마다 일상어처럼 욕을 하는 여학생은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욕쟁이 여학생뿐 아니라 중학생 무리는 거침없이 행동했다. 소파에 털썩 앉더니 가방을 탁자에 모두 올려놓았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깊숙이 밀어 넣은 무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핸드폰을 꺼냈다.

무리의 행동으로 보아선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쳐다보는 내가 이상한 것처럼 보일까 봐 똑바로 보지 못하고 힐끔 또 힐끔거리게 되었다. 중학생 무리가 전세 낸 것도 아니지만 손님으로 온 것은 맞기 때문에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한 시간쯤 지났다. 중간중간 여학생의 욕이 조용한 카페를 가로질렀다. 여학생 욕이 들릴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여학생은 욕을 하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부모 앞에서도 저렇게 욕을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 중학생 무리 옆을 지나치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설마 하고 다시 보았는데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여학생들은 SNS를 하고 있었고, 남학생들은 게임을 하기 있었다. 음료수도 한 잔 안 시켜놓고 카페의 가장 넓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한 시간이 넘도록 SNS와 게임을 하고 있었다. 중학생 무리는 와이파이를 편하게 사용하기 위해 카페에 들어왔다.
노트북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이 많았다.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카페에서 본 중학생 무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몰라서 그러는 것이겠지, 무서울 게 없는 중학생이라 그러는 것이겠지, 라고 말했더니 아마도 부모가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 언니가 말했다.
며칠 후 카페에서 지인을 만났다.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함께 있는 건물 안에 카페가 있었다. 저녁 시간이라 카페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가족이 들어오더니 옆자리에 앉았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그리고 그들의 부모가 탁자 두 개를 차지하고 앉았다.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까지 휴대폰을 꺼내더니 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지인과 한참 이야기하는 중이었고 카페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그냥 나가는 손님들이 많았다. 사는 이야기, 건강 이야기, 일 이야기를 한참하고 있는데 옆자리 가족이 일어나 카페를 나갔다. 지인과 나는 서로 마주 보고 말했다.
저 사람들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나갔지? 주문하지 않고 계속 앉아 있다 그냥 간 거지? 자리 없어서 사람들이 그냥 가는데. 내가 뭘 잘못 본 거야?

밖의 공간엔 중간중간 쉴 곳도 마련되어 있고, 의자도 있는데 남의 영업장소에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다른 손님도 앉지 못하게 하는 가족의 몰염치한 모습을 보며 부모가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언니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옆자리에 앉았던 아이들이 크면 내가 카페에서 보았던 중학생 무리가 되고, 지난여름에 보았던 대학생이 될 것이다.
무덥던 여름, 카페에는 시험 기간인지 공부하는 대학생이 많았다. 홀에도, 룸에도 전공 서적을 펼쳐놓고 공부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대학생이 룸으로 들어오더니 6인용 탁자 끝에 앉았다. 대학생은 가방에서 전공 서적을 꺼내더니 열공모드에 들어갔다. 여기가 독서실도 아닌데, 독서실도 이용료를 내고 사용하는데 음료수 한 잔 주문하지 않고 카페를 무료 독서실처럼 쓰는 염치없는 대학생에 내가 부끄러웠다. ‘학문적으로 많이 알게 되고 배우면 뭐 해, 상식과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데.’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했다. 아이가 사용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부모가 집에서 어떤 말을 사용하고 행동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이가 어떻게 자랄 것인지 보인다. 요즘 사회에 높은 도덕과 높은 윤리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상식과 기본은 지키고 살 수 있도록 부모가 거울이 되어주어야 한다.
김담이,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2023년 12월 첫 번째 장편동화 『올해의 5학년』 출간. 2024년 11월, 소설집 『경수주의보』 출간.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