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모두가 즐거운 한가위이다. 자주 보지 못했던 가족과 친지가 한자리에 모여 하하호호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명절이다.

봄에 씨를 뿌려 여름 내내 자식처럼 돌본 농작물을 가을을 맞아 수확한다. 한가위는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 있다. 햇과일, 햇곡식이 넘치는 시기이며 가장 신선하고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가을이다. 산과 들 어느 곳 하나 햇살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계절에 한가위가 있다.

한가위는 고향과 부모님을 찾아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지는 명절 중 하나이며 모두가 모여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옛날이야기를 꽃피우는 시간이다. 그래서 음식도 넘치고, 행복함도 넘치는 한가위를 말하며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 같기만 해라’라는 말을 한다.

추석을 일주일가량 앞둔 9일 광주 북구 말바우시장이 명절 차례 용품을 구매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추석을 일주일가량 앞둔 9일 광주 북구 말바우시장이 명절 차례 용품을 구매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우리 집도 오빠 내외와 조카가 온다. 함께 나눠 먹을 음식을 하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목록을 작성해 장을 보고 추석 전날 모여 앉아 음식을 만든다. 올해는 아쉽게도 몸이 아픈 사람이 있어 음식을 하지 않지만 모여서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모두가 한가위에 즐거운 것은 아니다. 한가위가 외롭고 쓸쓸하고 싫은 사람도 있다. 만날 가족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이 쉴새 없이 드나드는 소리에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주의를 시키는 엄마 목소리, 엄마를 말리는 할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목소리를 들으며 문득 슬퍼지는 사람도 있다.

혼자 사는 박 씨 할머니는 한가위가 어느 날보다 견디기 힘들다. 혼자 먹기에 너무 많은 음식은 그대로 냉장고에 들어가고 긴 연휴 동안 꼼짝하지 않고 방에 갇혀 지내는 시간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바빠서 오지 못한다는 첫째와 귀성길이 혼잡하고 힘들어 내려가지 않겠다는 둘째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 모두가 노는 명절에 도대체 무슨 일이 얼마나 바쁜지 이해할 수 없지만 한마디도 못 했다.

박 씨 할머니는 찾아오는 자식도 없고, 안부 묻는 친지도 없이 홀로 명절을 맞고 보내야 하는 시간이 속상하다. 뼈가 부서지게 키워놓았지만 소용없는 자식이 원망스럽다. 자식에 대한 원망도 있지만 사실 그리운 마음이 더 크다. 박 씨 할머니는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사진=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사진=연합뉴스]

그래도 박 씨 할머니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쪽방에 사는 이 씨 할아버지는 누구나 배불리 먹는다는 한가위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고작 라면뿐이다. 도시락을 배달해 주던 봉사자도 명절은 쇠야 하고 가족과 즐거운 명절을 보낸다. 긴 연휴 동안 이 씨 할아버지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

A는 이번에 처음으로 한가위를 홀로 맞는다. A는 만 18세가 되어 보호가 종료된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다. 법적 나이로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보살핌과 보호가 필요한 나이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시설의 동생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즐겁게 지냈는데 올해는 혼자다. 만 18세에 세상에 던져져 부딪치고 깨지면서 먹고사는 일에 온 힘을 다하는 동안 A는 내내 힘들었고, 무서웠고, 외로웠다.

직장 동료들은 한껏 들떠 어머니가 만든 음식 이야기며 어머니를 도와 음식을 만드는 아버지 이야기로 하하호호 이야기 꽃을 피우지만 A는 동료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다. A에게 한가위의 긴 연휴는 견디기 힘든 긴 외로움, 긴 고통이다.

자립준비청년 (PG) (이미지=연합뉴스)
자립준비청년 (PG) (이미지=연합뉴스)

 

박 씨 할머니에게 관심이 필요하다. 자식이 찾아오지 않아 속상하지만 이웃이 관심을 가지고 박 씨 할머니의 문을 똑똑 두드려준다면 덜 외로울 것이다. 쪽방에서 라면으로 긴 한가위를 버티는 이 씨 할아버지에겐 추석 음식 나눔을 해준다면 할아버지의 한가위는 조금이나마 풍성해질 것이다. 따뜻한 밥을 먹고, 모시 송편을 먹으며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A는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이다. 한가위에 함께할 가족은 없지만 A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하게 이야기해 주고 응원해 줄 어른이 있다면 덜 외롭고, 덜 힘들 것이다. 이왕이면 A를 불러 명절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하호호 같이 웃을 수 있다면 성인이 된 후 처음 맞는 한가위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살면서 힘이 될 것이다.

김은희 (필명 김담이) ,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2023년 12월 첫 번째 장편동화 『올해의 5학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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