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가을야구가 시작되었다. 29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한 엘지트윈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두고 케이티위즈와 격돌하게 되었다. 엘지트윈스 팬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9년 전 엘지트윈스와 역사적 순간을 함께했던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는 건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규시즌 그리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던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 함께 야구장을 같이 다니던 친구는 결혼해 남편과 잠실 야구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전히 ‘다시 한번 그날의 영광’을 꿈꾸며 야구장에서 엘지트윈스를 응원했다. 친구야말로 진정한 엘지트윈스 팬이다. 29년을 한결같이 엘지트윈스를 응원했다. 하위권에 머물러도, 준플레이오프에서 번번이 무너져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어도 친구는 엘지트윈스의 그날을 위해 응원했다.

나는 친구 앞에선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엘지트윈스를 오랜 세월 모른 척했다. 이토록 긴 세월 동안 정규시즌 우승도, 한국시리즈 우승도 하지 못할 줄 몰랐다. 그 사이 엘지트윈스를 놓아버렸다. 그런데 친구는 엘지트윈스를 놓지 않았고 마침내 올해 한국시리즈를 보게 되었다.

영화관까지 번진 한국시리즈 열기…‘WBC·월드컵’ 저리가라 (11월 7일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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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시즌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다시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엘지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보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 마음 그대로 잠실 야구장에서 엘지트윈스를 응원하고 싶었다. 한국시리즈 예매 전쟁이 뛰어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11월 6일 2시부터 예매가 시작된다고 하여 30분 전부터 로그인 해놓고 기다렸다. 정말 보고 싶다, ‘그날의 영광을 다시 한번 잠실 야구장에서 보고 싶다’는 염원을 담았지만 티켓 예매는 쉽지 않았다.

시작과 동시에 접속하였지만, 오류 화면이 뜨고 다시 접속하니 대기 인원이 16만 명이 넘었다. 대기 끝나고 들어간다고 해도 티켓을 살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살 수 있든 없든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티켓을 사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진행되는지 상황을 보고 다음 경기 예매 경쟁에 뛰어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음 예매가 시작되었는데도 나는 계속 대기 상태였다. 그래도 기다려볼 생각이었다.

정말 오랜 기다림 끝에 대기가 끝나고 들어갔는데 매진이었다. 나가야 하나 취소되는 표를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취소한 표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씩 절차에 따라 들어가 보았지만 표는 빛과 같은 속도로 사라졌다. 클릭할 때마다 이미 선점하였다는 문구만 떴다. 직관할 수 없는 건가, 생각하며 3시간을 노트북에, 핸드폰에 매달려 보냈다. 그리고 파란색 하나의 점이 떠서 눌렀는데 예매가 되었다. 3시간 만에 예매에 성공했다.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깜짝 놀라며 행운에 속한다고 했다.

11월 7일 대망의 한국시리즈 1차전이 시작되는 날, 나는 잠실 야구장에서 있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자리에 앉아 야구장을 안을 둘러보는데 뭉클했다. ‘29년 전 여기에 있었는데. 그때 함께했던 엘지 아저씨들은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경기장을 찾았겠구나. 어쩜 지금 나와 같이 경기장에 앉아 응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유광 잠바를 입은 엘지트윈스 팬은 대부분 그 옛날 나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들이었다. 생각해 보니 오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처지일 것이다.

[밀착카메라] '야구 보기 참 힘드네…' 온라인 세상 속 소외되는 노인들 (11월 8일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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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예매 없이 100% 온라인 예매로 이루어지고, 현장에서 판매하는 표도 없다. 나는 어쩌다 재수 좋게 예매가 되었지만, 이제 중년을 지나 노인이 된 야구팬들은 온라인 예매 및 판매 경쟁에 뛰어들어 표를 선점하여 예매에 성공하기까지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다. 여러 가지 인증 절차를 거쳐 입장하면 구역에 따라 나눠진 좌석을 확인하고 남아 있는 표를 클릭해 들어가면 코딱지보다 작은 점을 확인해야 한다. 확인하는 사이에 벌써 내가 보았던 파란 점은 사라진다.

29년 전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눴던 엘지트윈스 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오고 싶어도 오지 못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29년을 한결같이 응원하고 기다리며 같이 늙어간 팬들이 저기 경기장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중고 거래 사이트엔 한국시리즈 암표가 넘쳐나는데, 경기장 밖 티켓 판매소엔 표가 없어 29년을 기다려온 노년의 팬은 이제 돌아가야 한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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