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신규 칼럼] 오늘날 케이팝(K-Pop)은 초국적화(transnationalization)의 흐름에 놓여 있다. 국가 간 경계를 사이에 두고 케이팝을 둘러싼 자본, 문화, 인간이 복잡하게 오간다. 그런 점에서 초국적화는 지구화(globalization)와 유사한 표현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구화가 자본, 문화, 인간이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가리킨다면, 초국적화는 자본, 문화, 인간이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국가주의적 성향이 여전히 남아 있거나 특정 국면에서 오히려 강해지거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설명해준다.

초국적화의 원인 혹은 결과로 케이팝은 혼종성(hybridity)을 띤다. 이제 순수하게 ‘한국 대중음악’, ‘한국 스타’라는 표현을 쓰기는 쉽지 않다. 표면상 한국 스타의 국적이나 인종뿐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을 구성하는 곡, 안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자체도 더는 ‘한국’의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 작곡가의 곡 수입·번안, 케이팝 그룹의 외국인 멤버 영입, 외국인으로만 구성된 케이팝 그룹, 엔터테인먼트사(이하 ‘엔터사’)의 초국적 기업화 등의 사례를 떠올려보자.) 

그룹 방탄소년단(BTS)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블랙핑크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뉴진스 [어도어 제공], 스트레이 키즈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BTS)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블랙핑크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뉴진스 [어도어 제공], 스트레이 키즈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리고 이제 케이팝은 전 세계에서 소비된다. 하지만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게 된 만큼, 그에 담긴 문화적 요소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안팎으로 생겨나고 있다. 케이팝을 향한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의 관심과 호감을 유지하고 확대해나가기 위해 우리 사회가 ‘문화다양성(cultural diversity)’을 고민해야 할 때다. 문화다양성이란 사회와 집단별 문화가 사회·집단 간, 그리고 사회·집단 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말한다. 여기에는 그 수단과 기법에 관계없이 문화가 표현·진흥·전달되는 데에 사용되는 방법의 다양성, 그리고 문화적 창작·생산·보급·유통·향유 방식 등에서의 다양성이 포함된다.

이 글에서는 초국적화를 케이팝의 문화다양성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개념으로 삼아, 케이팝의 문화다양성이 초국적화 흐름 하에서 어떤 양상을 띠는지, 그리고 케이팝의 초국적 인기가 이어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논의하도록 한다.

케이팝의 초국적화는 크게 세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하 ‘엔터산업’)의 초국적화다. 한국시장 내 이윤창출 구조가 포화상태에 가까워짐에 따라 엔터산업도 자연스럽게 해외진출로 눈을 돌렸다. 효과적으로 해외에 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러 전략들(해외 작곡가·안무가 활용, 진출국가 출신 멤버 영입 등)이 필요했다. 더불어 해외지사 설치, 팬 플랫폼 운영 등으로 엔터사들은 초국적 기업이 됐다. 여기엔 산업자본의 판단만이 아니라, 정부정책의 개입도 작용했다. 엔터산업의 초국적화는 산업과 정부 간 이해의 접합점이었던 셈이다.

둘째, 미디어 플랫폼의 초국적화다. 국경 밖 다양한 문화를 전 세계가 동시다발적으로 경험하는 시대에,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여러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 갖춰진 덕에 케이팝은 빠르게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그리고 팬 플랫폼 등은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을 더욱 유동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셋째, 이미지, 친밀감 그리고 재현의 초국적화다. 앞 둘이 대중음악을 둘러싼 환경이나 조건 변화에 가깝다면, 마지막은 그로 인한 효과 혹은 케이팝의 형질 변화에 가깝다. 스타 이미지의 초국적화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스타를 아주 가깝게 느끼게끔 만든다. 사회관계망 서비스는 물론이고, 특히 최근의 팬 플랫폼은 팬들로 하여금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을 구독하고 그들과 자유롭게 댓/글이나 프라이빗 (음성) 메시지를 주고받게 함으로써, 아티스트와 팬 간 거리를 획기적으로 좁히는 듯 보인다.

초국적화를 케이팝의 문화다양성 이슈와 교차시킬 때 나타날 수 있는 대표적인 양상들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국적화 속에서 오히려 민족주의가 발현되는 사건들이다. 이는 한국 국경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경우(2000년대 초반 유승준 사건, 2000년대 후반 재범 사건과 타블로 사건 등)와, 국경 밖에서 안으로 향하는 경우(2020년 블랙핑크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 2020년 NCT U <Make A Wish> 무대 논란 등), 그리고 안과 밖이 서로를 동시에 향하는 경우(2010년대 중반 쯔위 사태, 2020년대 초반 ‘하나의 중국’을 둘러싼 논쟁 등)로 다시 구분된다. 초국적화가 진전될수록 케이팝은 순수하고 평화롭게 혼종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는 각 사회가 내포한 다양한 갈등과 사회적 문제들이 반영되면서 민족주의가 발현하는 장이 되어온 감이 있다. 초국적화와 민족주의는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상호구성적인 현실에 다름아니다.

둘째, 이미지, 친밀감, 재현 차원에서 초국적화는 문화다양성 이슈를 끊임없이 발생시킨다. 케이팝은 단순히 음악장르가 아니라 시청각문화다. 보(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모두가 재/생산된다. 이미지(걸그룹의 로리타 콘셉트 논란, 성인여성의 불필요한 유아화와 그에 대한 물신화 비판 등), 재현(케이팝이 그 기원을 인정하지 않고 흑인문화를 사용한다는 흑인팬들의 비판, 화이트워시 논란, 걸그룹 성적 대상화 비판, 각종 가사 논란 등), 아티스트들의 인종차별·여성혐오 발언이나 행동들, 특정 팬그룹에 대한 제노포빅 발언들, 불법촬영과 같은 팬들의 긍정적이지 못한 행위들 등 케이팝 관련 콘텐츠들과 주체들(엔터사, 아티스트, 미디어, 팬 등)을 둘러싸고 만들어지는 사건과 논란들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초국적화하는 케이팝은 차별과 혐오에 대한 끝없고 거대한 담론의 광장이다. 

위버스, 디어유 버블, 유니버스 앱 이미지
위버스, 디어유 버블, 유니버스 앱 이미지

앞선 논의를 경유해 이후의 케이팝에 대해 논의해볼 지점들을 살펴본다.

첫째, 문화다양성의 지향은 당연하지만, 산업 내에서 문화다양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환돼야 한다.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협약(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협약)’, 한국의 ‘문화다양성법(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 제정과 같은 노력은 물론이고, BBC, 뉴욕타임즈, 넷플릭스, 디즈니 등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도 조직구성-창작자-콘텐츠 차원의 다양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회사의 성장과 생존을 위해 수용자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고, 그러한 의미 있는 관계 구축을 위해 다양한 다수의 목소리와 관점을 옹호하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문화다양성은 일종의 비즈니스 전략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된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콘텐츠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종, 민족, 젠더, 종교 등을 가진 관객의 수요에 맞는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가령 캡틴마블이나 블랙펜서가 정말 마블이 다양성에 대한 마인드를 제대로 장착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물인지, 모두를 산업자본의 영향력 안으로 포섭하기 위한 전략의 결과물인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리기 어렵지 않을 듯하다.

비즈니스 전략에서, 비즈니스 바깥 공존과 상생 전략으로서 문화다양성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콘텐츠 차원만이 아니라, 콘텐츠 제작현장 바깥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경주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창작자의 인식과 관심 환기에, 담론의 장으로서 텍스트에 대한 인식과 관심 전환도 요청된다. 텍스트를 담론의 장으로 규정하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창작자와 수용자 모두가 그 안에 모일 수 있다. 진정한 문화다양성은 단지 낯선 문화를 존중한다는 당위론적 개념을 넘어서서, 문화 간 대화를 통해 차이를 이해하고 협상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둘째, 문화다양성을 둘러싼 맥락이나 환경적 측면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대 사회·문화적 상황, 상품으로서의 콘텐츠 생산논리, 지식재산권 묶음(IP), 국뽕, 아티스트의 감정/노동 문제 등. 하지만 무엇보다, 케이팝 산업도 아티스트와 팬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케이팝 산업을 이루는 중요주체들인 엔터사, 아티스트, 미디어, 그리고 팬은 때론 서로 경쟁하고 또 때론 의존하며 산업과 문화를 유지·확장해왔다. 그런 가운데 이제 팬들은 완전히 지배적이거나 대항적 해독을 하는 주체가 아니라, 굉장히 교섭적인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산업자본의 욕망을 이해하지만 그 안에서 적당히 복무하면서 즐거움을 챙기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스(트리)밍하고 총공(세)에 참여하면서 ‘왜 엔터사가 할 일을 우리가 해?’라고 하지만, 내 최애 아티스트의 성취가 곧 나의 기쁨이라고 믿는. 또 산업자본은 아티스트의 성적 대상화를 요구하고 적극 장려하는데, 변화하는 케이팝 시장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자본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는.

하지만 그 교섭의 ‘폭 변화’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엔터)산업이 밀고 들어오는 부분들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케이팝 3.0과 4세대 아이돌 시대라 부르는 현 시점에서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위버스, 버블, 유니버스 같은 ‘팬 플랫폼’이라 본다. 위버스가 하이브 자회사에서, 버블이 SM엔터테인먼트 계열사에서 개발·운영하는 데다, 다양한 엔터사와 제휴 맺고 있던 유니버스를 버블이 인수하기로 한 현 상황을 고려하면, 팬 플랫폼은 엔터사와 미디어가 매우 밀접하게 결합하거나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러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팬 플랫폼은 엔터사가 플랫폼과의 결합과 연결을 통해 탑-다운 방식으로 사이버 스페이스를 만들고 그 안에서 팬 활동을 하게끔 해놨다는 점, 전에는 여러 팬 커뮤니티를 통해 분산돼 있던 정보의 생산·유통과정을 독과점하면서 팬들을 모으고 관리한다는 점 등 긍정적이지 못한 측면들도 갖는다. 아직까진 팬들이 즐거움을 얻기 위해 기꺼이 참여하는 세계에 가깝겠지만, 팬들은 기획된 시스템 안에서 의도가 어찌됐든 엔터산업의 유지와 확대에 복무하고 있고, 그에 대한 반발의 움직임들도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케이팝 지형의 초국적화 중에 나타나는 여러 양상과 이슈들은 몇 가지 질문을 남긴다. 초국적 시대에 케이팝은 어떤 문화다양성 전략을 구축해나갈 것인가? 초국적 문화 실천과 민족주의 사이에서 발생한 사건들 이후 어떻게 그것들을 다시 사유할 수 있을까? 끊임없는 차별과 혐오 담론의 광장에서, 우린 어떻게 계속 말하고 토론하고 깨우쳐야 할까? 그리고 특정 상황에서 경쟁 혹은 의존을 통해 케이팝 산업과 문화를 유지·확장해 온 엔터사, 아티스트, 미디어, 그리고 팬은 앞으로 어떻게 관계 맺으며 문화다양성을 채우고 바꿔나갈까?

* 이 원고는 2023년 1월 19일(목)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 주최로 열렸던 ‘케이팝의 인종과 젠더’ 세미나의 토론문을 토대로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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