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 한상혁)가 공영방송 협약제도 도입을 위해 KBS의 공적책무에 대한 대국민 의견 청취를 실시했으나 참여자가 22명에 불과했다. 설문 내용은 공영방송의 공적책무가 중요한지 아닌지를 묻는 수준이다.
협약제도는 공영방송이 수행해야 할 구체적인 공적책무를 설정하고 정부와 방송사가 일종의 계약을 맺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협약에 따른 공영방송 평가는 수신료 산정과 사장 선임 등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방통위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공영방송 협약제도를 올해 안에 방송법 개정안 형태로 제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15개 문항에 22명이 참여한 설문조사가 변별력과 대표성을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

방통위는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14일까지 '공영방송 KBS의 공적 책무에 대한 대국민 의견 청취'를 실시했다. 방통위는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중 6번에 해당하는 KBS 협약 제도 도입을 위해 해당 조사를 실시한다며 "현행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KBS의 공적책무가 무엇인지 방송법에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현행 방송법에도 KBS가 수행해야 할 책무가 규정되어 있으나 그 내용이 다소 추상적이며 다른 방송사와 차별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밝혔다.
해당 조사의 문항은 현행 방송법상 KBS의 공적책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총 15개의 객관식 문항은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정확한 뉴스 정보 ▲민주적 여론형성을 위한 시사토론 프로그램 ▲대하드라마·자연다큐멘터리 등 차별화된 고품질 프로그램 ▲성별·연령·직업·종교·신념·계층·지역·인종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민족의 동질성 확보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의 중요도를 물었다. 설문에 대한 답변은 '매우중요', '보통', '중요하지 않음'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설계됐다. 1개의 주관식 문항은 추가적으로 KBS가 수행해야 할 공적책무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달라는 내용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설문조사 내용이 공적책무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항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공적책무를 별도로 구체화하는 차원은 아니다. KBS가 협약을 체결할 때 필요한 공적책무를 몇 개 선정해야 하는데, 갑자기 현 방송법과 동떨어진 새로운 공적책무가 생기기는 쉽지 않다"고 답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항목들에 대해 국민들이 중요하다고 느끼는지를 보조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며 "공영방송 협약제도를 알려보자는 취지도 있었다. KBS의 공적책무가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적 여론 형성을 위한 시사 프로그램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나'라는 질문에 방통위 관계자는 "당위적일 수 있는데 그중에 몇 개를 우선 골라내야 하는 고민이 저희에게 분명히 있다"며 "많은 분들이 방통위 홈페이지에 들오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중요한 조항, 중요도가 떨어지는 조항을 저희가 좀 더 고민해 볼 여지도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공영방송 협약제도를 연구 중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별도로 타깃을 잡아 체계적인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방통위가 실시하는 설문과 KISDI가 실시하는 설문조항이 동일한가'라는 질문에 방통위 관계자는 "거의 유사하다"고 했다.

이번 방통위 설문조사에 대해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는 "이런 설문을 하게되면 주관식으로 할 수는 없고 무작위로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응답률이 무척 떨어질 것"이라며 "그렇게 나온 우선순위에 맞춰 정책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정도의 생각을 갖지 않았을까 싶다. 대국민 의견 수렴을 한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정책을 제안 받아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계를 설명했다.
다만 심 교수는 "우선순위를 뽑기 위해 점수를 부여한다면 참여자 수가 많아야 의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참여자 수가 적으면 변별력이 떨어진다"며 "항목이 20개 가까이 되는데 22명이 참여했다면 변별력이 없는 것이다. 설문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하다못해 시민단체나 출입기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참여를 권했다면 좀 더 많이 참여했을 테고, 그러면 변별력이 좀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상향식 의견수렴 절차를 밟는 방식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지역에서부터,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해외 제도 개선은 의견을 수렴해가는 절차가 부러울 정도다. 어떤 기관에서 정책 제안을 하면 각 지역 기관들이 또 다른 단위들과 의견을 조율해 보고하고, 이를 취합해 보고서를 만들어 다시 2~3년에 걸쳐 의견수렴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영국 방송통신규제기관 오프콤(Ofcom)은 공영미디어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보고서 '스몰스크린:빅디베이트' 발간 과정에서 전문가뿐만 아니라 100명 이상의 이해관계자, 4000명 이상의 설문조사응답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영국 17개 지역 워크숍을 거쳤다. 김 위원장은 "방통위가 시민과 시청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상향식 구조를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행정력을 투입했으면 좋겠다"면서 "추후 실제 공영방송 협약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이번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방통위와 KISDI가 주최한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와 협약제도' 토론회에서 공영방송 협약을 맺는 목적인 시민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개진됐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협약제도를 고민하게 된 근본적인 규범은 책무성인데, 그 논리 속에는 '갑'(정부)과 '을'(방송사)뿐만 아니라 '병'인 시민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방통위가 갑을 대표한다면 시민의 감시와 협약 개입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공영방송 협약의 당사자인 규제기구가 내세우는 공공성은 어떤 협약을 가지고 나오든 정치적 후견주의가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한국의 제도적 환경 속에서 우려될 수밖에 없다"며 "협약 과정에서 어떻게 정치적 후견주의를 극복하고 시청자와 시민의 열망과 바람을 담아낼 것이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공영방송 협약제도, 모래 위에 성 쌓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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