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그랬지만, 우리나라 방송사들의 출구조사(exit poll)를 바탕으로 한 총선 결과 예측 보도는 이번에도 크게 빗나갔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방송사들이 그 이유를 몰라서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방송사들이 속보 경쟁이라는 강박감 혹은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데에도 한 원인이 있다고 본다.

선거 자체가 대표적인 복잡계(複雜系: complex system)다. 근본적으로 예측이 어렵다는 뜻이다. 더구나 전국이 하나의 선거구나 다름없는 대통령 선거와 달리 국회의원 총선은 선거구가 245개나 되고 후보도 1천명이 넘는다. 따라서 각 지역구 당선자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어렵게 되어있다.

빗나간 예측 보도, 언제까지 같은 잘못을 반복할 것인가?

미국 뉴멕시코 주도(州都)인 산타페에 복잡계 연구로 유명한 산타페연구소(Santa Fe Institute)가 있다. 이곳에서는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리학자, 철학자, 경제학자와 경영학자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복잡계에 관해 토론하고 연구하고 있다. 이른바 학문과 학문 사이의 통섭(consilience)을 통하지 않고 복잡계나 카오스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 MBC와 SBS의 18대 총선 예측조사 결과
물리학에서 출발한 복잡계 연구가 지금은 수많은 다른 복잡계나 '복잡한 현상' 연구로까지 확대, 발전하고 있다. 선거 말고 대표적인 복잡계가 날씨나 기후, 주식시장, 사람의 뇌 등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을 살펴보자.

첫째, 복합 선거구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4개의 군(郡)이 한 선거구가 되는 곳도 몇 개 있다. 그런 곳에서는 후보자의 출신지에 따라 정당이나 정책, 혹은 공약 대결이 아니라 '군 대항전'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18대 총선에서 대표적인 곳이 남해·하동 선거구다. 한나라당 공천으로 당선된 여상규 변호사는 하동군 출신이고, 16% 차이로 낙선한 무소속 김두관 후보는 남해군 출신이다. 그동안 이 지역구에서는 10대 국회 이래 무려 30년 동안 하동 출신들이 이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이 없고, 남해 출신들이 계속 당선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하동군 유권자들은 역시 남해출신인 박희태 국회부의장을 제치고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여상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온 군민이 총력전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하동군에 살고 있는 유권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하동군 출신들까지 나서서 여상규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덩달아 남해군 유권자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과 열기를 자극해 전국의 245개 선거구 가운데 이 지역 선거구가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이기도 했다. 전국 평균 투표율은 46.1%였고, 경남 지역 투표율이 48.3%였던데 비해 하동군 투표율은 무려 72%에 달했고 남해군 투표율도 69.8%나 되었다. 결국 승리는 '하동군민들의 숙원'을 등에 업은 여상규 변호사에게 돌아갔다.

▲ MBC와 YTN의 18대 총선 예측조사 결과
둘째,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도농(都農)선거구도 많다는 점이다. 지금은 도시 지역과 농촌 지역 주민들의 의식 수준의 차이가 거의 없어졌지만, 생업이나 생활 조건 차이 등으로 인해 유권자들의 성향이나 투표 행태가 다를 수 있다.

셋째, 동질성이 높은 대도시 선거구 안에서도 특정 후보자가 오랫동안 살아온 동(洞)에서 몰표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2000년 총선 당시 서울의 어느 선거구에서 한 후보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洞)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동에서 상대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했으나 자신이 살고 있는 동에서 몰표가 나오는 바람에 나머지 모든 지역에서 뒤진 표를 만회하고 선거에서 이긴 일도 있었다.

방송사, 조사 방법 더 정교하게 다듬고 표본도 대폭 늘려야

넷째, 대체적으로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출구 조사 때 응답하는 비율이 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정확도나 신뢰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섯째, 투표율에 따라 상대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가 유리한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더구나 이번처럼 총선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상황이 선거결과에 어떻게 나타났는지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단순히 출구조사 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오차 유발 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방송사들이 다양하고 민감한 요소에 의한 오차(범위)를 줄이고 정확도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조사 방법을 더 정교하게 다듬고 표본도 대폭 늘려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보다 몇 배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출구조사를 실시하지 않거나, 실시는 하되 결과 발표는 좀 더 신중하게 해야 한다.

비용 부담 때문에 유권자들을 상대로 직접 출구 조사를 하지 못하고 전화조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민영방송 보도국 관계자의 얘기는 시청자를 우롱하는 일이다. 매번 같은 잘못을 반복하면서, 선거 개표 방송에 여러차례 관여했다는 '국가기간방송' 관계자가 예측보도가 빗나간 것에 대해 잘못했다고 사과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선거에서 국민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는 식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말하는 것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방송사들은 출구조사 하려면 제대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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