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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케이팝을 가둔 딜레마[culture critic] 중국 앨범 공구 시장의 부상과 명암
윤광은 | 승인 2021.05.12 07:48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걸그룹 ITZY가 지난달 30일 새 노래 '마.피.아. In the morning'으로 컴백했다. 그리고 앨범 발매 후 일주일 간 판매 성적, 초동 판매량 20만 장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ITZY의 자체 최고 기록인 한편, 산업적으로 특정한 문맥 위에 있다.

초동 판매량 20만 장 이상은 케이팝 걸그룹 중 세 그룹만이 달성한 기록이다. 지금은 해체한 아이즈원이 작년 2월 정규 1집으로 35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처음으로 밟았고, 이어서 트와이스가 33만 장을 팔았고, 그해 10월 블랙핑크가 69만 장에 달하는 물량을 팔아 치웠다. 이전까지 걸그룹 초동 최고 기록은 몇 장이었을까? 재작년 9월 트와이스가 ‘feel special’로 기록한 15만 장이었다. 이것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두 배 이상 경신되었고, 1년 만에 69만 장으로 증폭된 것이다.

걸그룹 있지 새 앨범 '게스 후' 콘셉트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보이그룹 역시 상황은 같다. 글로벌 아이돌로서 입지와 앨범 판매량 등이 독보적인 방탄소년단을 논외 하더라도, 두 번째로 초동 앨범 판매량이 많은 그룹 세븐틴은 2018년에 27만 장, 2019년에 70만 장, 2020년엔 109만 장을 팔며 수직으로 비상했다. 케이팝 산업은 전례 없는 앨범 판매 인플레 시대에 서핑을 하고 있다.

2년 전 이맘때까지 걸그룹 초동 최고 기록은 14만 장이었다. 초동 10만 장을 넘는 그룹은 역시 트와이스, 블랙핑크, 아이즈원 세 그룹이었다. 작년 4월 (여자)아이들이 천장을 뚫으면서 초동 10만 장 대열에 합류했고, 이후 다른 몇몇 그룹 또한 10만 장 고지를 넘었다. 그리고 이제 ITZY가 20만 장을 팔았다. 초동 20만은 불과 이삼 년 전까진 팬덤이 강한 보이그룹의 전유물이었다. 아이즈원, 블랙핑크처럼 국내 팬덤과 해외 팬덤 파이를 압도적으로 차지한 그룹이 아니라도, 보이그룹보다 팬덤 세일즈 규모가 작은 걸그룹 산업에서도 이 수치가 보편화되며 산업 저변이 레벨업할 수 있다는 신호일까? 이것은 케이팝 산업 규모의 확장을 뜻하는가?

왜 이렇게 갑자기 앨범이 많이 팔리게 된 걸까? 코로나로 국내 오프라인 문화 활동, 해외 활동이 중단되면서 국내와 해외 시장을 막론하고 음반 구입 등 콘텐츠 소비에 더 많은 돈이 돌아간 측면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음반 판매 인플레는 코로나 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결국 해외 앨범 판매 시장이 성장한 것이고, 그중 중국 공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케이팝 팬덤은 나라마다 특성이 있다. 중국의 경우, 외교적으로 수교가 제한된 탓에 케이팝 그룹들이 현지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팬 활동은 앨범 공구로 집중되고 있다. 직수입되는 한국 앨범보다 현지화된 앨범 판매량이 더 큰 일본 시장과 대비되는 특성이다. 중국 팬덤은 멤버 개개인의 팬덤이 느슨한 형태로 그룹 팬덤을 구성하는 연합체에 가까우며 개인 팬덤 별로 앨범을 구입하는 공구 경쟁을 통해 그룹 전체 앨범 공구량을 키운다. 지난 2년 동안 이들이 구입하는 앨범 물량이 늘어났다.

[그래픽뉴스] 온라인 해외 직구 (5월 6일 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작년 6월 기준, 중국 공구 상위권에 있는 케이팝 가수들의 가온차트 앨범 판매량 대비 중국 공구 비중은 적게는 10% 후반에서 많게는 70%에 이르고 대체로 30%~50%로 추정된다.(기부 공구(不运回): 급이 다른 중국 팬클럽들의 팬덤 경쟁) 정규 1집으로 초동 69만 장을 기록한 블랙핑크의 경우, 중국 현지에서 나온 자료에 의하면 그중 중국 공구가 50만 장 규모다. ITZY의 경우 이번 앨범 판매량 중 어느 정도가 중국 공구 물량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ITZY의 초동 판매고 증가가 음판 인플레 현상 속에 있으며, 그 현상의 진원지가 중국이란 점을 주목할 수 있다.

팬데믹이 문화산업 전반을 덮치며 할퀴었지만, 2020년 음반 판매량은 오히려 크게 늘어났다. 케이팝은 해외 활동과 국내 오프 활동이 단절되는 위기를 맞았지만, 음반 판매 시장 확대가 그것을 일부분 만회해 주는 청신호가 되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수익 경로가 협소해지면서 음반 판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이건 곧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졌다는 뜻이다. 개별 그룹의 일본 직수입 앨범 판매량보다 중국 공구 판매량이 훨씬 커졌고 좀 더 많은 그룹이 고르게 수혜를 보는 경향이 있다. 미국 음반 수출액 역시 크게 성장했지만 이중 방탄소년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걸로 추정된다. 팬데믹이 언제 종식될지 알 수 없는 상태이므로 이 현상은 장기화될 수 있다.

국내 아이돌 팬덤 시장은 규모가 한정돼 있고 서브컬처화 되어 팬덤 유입이 많지 않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국내 아이돌 시장 소비자 유입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지만, 투표 조작 사태의 여파와 트로트 오디션의 흥행으로 화제성이 미미해졌다(최근 차트 역주행으로 인기를 얻은 브레이브 걸스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유입되던 잠재적 소비자 층을 일정 부분 승계받은 케이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걸그룹은 보이그룹보다 팬덤 시장이 작아서 국내 팬덤만으로 낼 수 있는 수익은 한계가 뚜렷하다. 압도적인 국내 팬덤 일인자였던 아이즈원의 경우를 보면 한국 팬덤만으로 팔 수 있는 음반 최대치는 20만 장 선인 것 같다. 반면, 국내에서 인지도는 높지만 코어 팬덤은 작은 블랙핑크는 중국 공구만으로 50만 장을 팔았다. 케이팝 시장은, 특히 걸그룹 시장은 이런 시대에 접어들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걸스 플래닛 999'(Girls Planet 999) [엠넷 제공]

팬데믹으로 인한 수익 활동 타격과 국내 아이돌 시장 고갈, 중국 팬덤의 부상. 이런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 최근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해외 지향적 포맷으로 구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엠넷에서 방영될 예정인 <걸스 플래닛 999>는 한중일 합작 오디션으로 기획되며 저 경향성을 심화한다.

문제는 중국 시장이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외교 정치적 이슈와 정권 교체 향배에 따라 한중 관계는 언제든 더 악화될 수 있다. 국내에선 반중 여론이 강해지며 팽창하는 중국의 영향력이 한국 문화산업에 드리우는 것에 극렬한 반감이 조성됐다. 이런 부류의 문제들로 최근 드라마 두 편이 포화를 맞으며 조기종영하거나 IPTV 서비스를 종료해야 했다. 중국은 중국대로 자국 내에서 케이팝 시장이 확산되는 것에 너그럽지 않다. 이제 중국 팬덤을 잡지 못하는 케이팝 그룹에겐 성장 동력이 적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튼튼한 동아줄인지 알 수 없다. 팬데믹 시대가 케이팝을 가둔 감옥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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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은  https://brunch.co.kr/@mcwann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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